정운일 명예기자 |
고구려·백제·신라·고려시대에는 불교를 숭상하고 유교를 중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소원을 빌 곳이 없어 저항했다. 유학자 정도전은 불교를 비판하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등 도덕적 덕목을 중시하는 유교를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른 상례와 제례에 의한 유교 의식을 따르도록 하는 등 일련의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이처럼 전통적으로 지내오던 제사를 형제들은 서로 모시지 않겠다 하고 여자들도 음식 준비에 힘들다며 가족간에 다툼이 벌어지고 있어 안타깝다. 그래서 성균관에서 밝힌 간소한 제례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설문조사 결과 남성의 84%, 여성의 대부분은 자신의 사후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시대가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는 특권 계층만 4대조까지 제사를 모시고 일반백성은 4대를 모시고 싶어도 모실 수 없었다. 신분 상승 욕구가 분출하면서 너도나도 4대조 제사를 모시고 제사 횟수를 늘리는 것이 신분 상승을 위한 경쟁이었다. 조선은 양반이 특권 계층 시대라 양반 아닌 사람이 양반 흉내 내기 위해 제사를 중요시하게 됐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사라져가는 제사 문화를 살리기 위해 제사에 관한 전통 제례 보존 및 현대화 방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에 따르면 가정에서 모시는 제사음식을 대폭 간소화하고, 음식을 마련도 가족이 다 같이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기제는 과일 3종과 밥·국·술에 떡, 나물, 나박김치, 젓갈, 식혜, 포, 탕, 간장 등이고, 묘제는 술, 떡, 포, 적, 과일, 간장을 올리면 된다. 제기가 없으면 일반 그릇에 음식을 차리고, 돌아가신 분이 좋아하시던 음식을 올려도 좋다.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이라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
제사 절차는 제주가 향을 피우고 모사기에 술을 세 번 나눠 부으면 참가자 다 함께 두 차례 절을 하고, 술을 한번 올린 뒤 축문을 읽고 묵념하고, 이후 참가자들이 두 번 절하고 상을 정리하며 축문을 태우고 마친다.
제사 시간은 돌아가신 날의 첫 새벽(23시∼01시)에 지내야 하지만 가족과 합의해 돌아가신 날의 초저녁(18∼20시)에 지내도 된다.
축문을 한문이 아닌 한글로 써도 되고 신위는 사진 혹은 지방 어느 것을 이용해도 된다고 했다. 제사는 조상을 추모하고 가족 간의 화목을 위하는 경사스러운 일인데 제사로 불화가 생긴다면 조상으로부터 저주를 받을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고 남겨준 가풍을 생각하는 날이라 외국인도 좋은 문화라고 칭찬한다. 그런데 지나친 형식에 집착해 본질을 잃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성균관이 제시한 간소한 방법도 실천하지 못한다면 자손의 도리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운일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