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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불안해서 죽어라 내빼는 사람

입력 2024-08-11 14:07 | 신문게재 2024-08-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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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철인 3종 경기를 치르듯 살아온 여자가 10년 만에 초주검이 되어 나타났다. 이보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 팍팍한 사회현실을 잘 견뎌내며 자신의 커리어를 하나하나 쌓아가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자다가 ‘꼴까닥’하면 딱 좋겠단다. 결혼해서 애 키우기도, 나이 드신 부모 부양도, 직장 승진시험 준비도 다 ‘잘 할 수는 있지만’ 부담스럽고 힘들게 느껴지고 사는 일 자체가 그만두고 싶을 만큼 너무 버겁단다. 단정하고 예의 바른 태도와 배려심 있고 성실한 모습은 예전 그대로인데 정작 마음이 다 무너져내린 것이다.

부모의 노후 책임도 그를 두렵게 만드는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성실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아직 건강한 편이며 거주할 집과 연금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딸은 들여다보지 못했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그냥 자신이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중해 혼자 막중한 책임감에 끙끙 앓고 있었다.

그는 늘 세상이 자신에게 완벽하고도 무한한 책임을 요구한다고 인지했고 그 끝없는 요구들로 힘겨워했다. 주어진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해 좋은 성과를 이뤘지만 정작 자신은 쉬지 못했다. 쉬게 되면 곧바로 불안해졌고 우울감을 느꼈다. 

 

이런 불편감을 감당하려 스스로를 가만 두질 않았다. 불안감에 휘둘리지 않으려 끊임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수행속도를 높였고 달성해야 할 과업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갔다. 그렇게 불안할 틈을 갖지 않으려 했지만 정해놓은 목표를 이루고 좀 쉴 틈이 생기면 다시금 더 심한 불안이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그는 계속 소진돼갔다.

사회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면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이나 대상을 인식하면서 두려움을 피해 달아나는 내면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처럼 성공적인 회피를 위해 자신을 혹사하며 사는 것이다. 자신의 불안과 걱정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막연한지 알지 못한 채 세상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여긴다. 그 역시 구체적인 상황들을 하나씩 들여다보자 자신의 불안이 근거 없이 과도했음을 알아차리며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지고 안심이 됐다.

불안하기 싫어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괜찮다. 안전한 세팅을 구축하는 것도 나름 좋은 방법이다. 불안은 내 맘대로 어찌하기에는 꽤 끈질긴 감정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지니고 있으니 이를 잘 관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다만 이런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길 기대하며 달아나는 것은 역효과가 크다. 그러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만 키울 뿐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불안을 적당히 수용하며 압도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게 낫다. 불안을 견딜 수 있도록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고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들은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며 극복해내는 것이 마음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불안은 우리가 속기 쉬운, 실체가 없는 감정이다. 꼼짝없이 당하지 않으려면 도망치지 말아야 한다. 무서워도 똑바로 힘주고 서서 두려움의 실체가 뭔지 들여다봐야 한다. 내 안의 두려움을 확인하지 않은 채 불안해서 끊임없이 내뺀다면 두려움은 계속 커질 뿐이다. 정말 불안해할 만한 일인지 살펴보고 이를 어떻게 다루고 대처할 것인지를 탐색하는 것은 어렵긴 해도 스스로의 선택이 가능하다. 반대로 불안에만 빠져 있다면 그 역시 무의식적이어도 자신의 선택이다.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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