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최고 질서 파괴자’로 불릴 정도로 ‘파격’ 자체다. 그가 다시 화려하게 공화당 후보로 부활한 것을 저자는 ‘신의 개입(Divine Intervention)’이라고 표현했다. 온갖 곤경과 시련, 모욕에도 오히려 더 강인해지는 그에게서 설명하기 힘든 ‘신의 역사’를 떠올린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트럼프가 내년 1월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된다면, 혁명적 변화가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의 재림을 ‘악몽’이 아닌 ‘축복’으로 만들 방안을 일러준다. 카멜라 해리스라는 강력한 변수가 돌출된 상황에서 향후 미 대선의 향방이 주목된다.
신의 개입|송의달|나남 |
◇ 인간 트럼프
저자는 트럼프 2기를 한국이 주도하려면 트럼프 개인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학습이 필수라고 말한다. 감당 못할 예측 불가능성, 의도성 있는 잦은 실수와 변화무쌍함, 야비하고 잔인한 이미지의 이면에 있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반드시 이기려는 무한한 열정과 의지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정치를 포함한 일상사에서 ‘공포’라는 인간의 취약한 심리를 최대한 활용한다. 진정한 힘이 공포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얼마나 진지한 노력과 훈련, 그리고 철저한 사전검토와 준비를 해 왔는지 여러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대단히 돌발적일 것이라 여겨지지만, 치밀한 준비와 전략이라는 얘기다.
그는 균형감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3시간의 독서와 묵상을 한다면서,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69세 나이에 생애 첫 대통령 도전을 결행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저자는 아베 전 일본 총리의 성공담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베는 식사와 골프비로만 4억 달러 넘게 지출했다. 트럼프팀을 만들어 치밀하게 그를 연구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관리했다. 무엇보다 끈기 있게 상대했다. 저자는 “아베가 부드러움과 겸손함으로 트럼프의 강함과 독단을 4년 가까이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다스렸다”고 말했다.
◇ 진짜 트럼프의 모습
트럼프 후보가 피격 직후 계속 연설을 강행하려는 모습. 스트롱맨의 이미지를 다시한번 각인시켜 주었다. (AP=연합) |
트럼프는 ‘위험천만의 정치인’으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2023년 7월에 ‘최근 40년 동안 가장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대통령’을 묻는 설문에서 그는 19%의 지지를 얻어 오바마(32%), 레이건(23%)에 이어 당당히 3위에 올랐다. 2020년 12월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미국인 남성’ 1위에 올랐다. 지식인 엘리트 층의 냉소와는 다른 결과다.
트럼프는 자신의 승리가 먼저다. 싸우면 무조건 이겨 살아남아야 한다. 늘 거칠고 상스러운 막말을 달고 산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힘을 발휘한다고 경험적으로 확신한다. 자신의 패를 잘 보여주지 않고 상대방에게 초조와 공포심을 유발케 해 뒤흔든다. 그는 “거짓말조차도 비밀스런 소스”라고 말한다.
저자는 대중이 트럼프에 열광하는 것은 그가 ‘금수저’가 아니라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초호화 이미지지만 블루칼라 노동자와 중산층 시민과 잘 어울리고 그들을 대변하는 발언들이 그를 추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평범한 미국인들과의 친숙함이 그의 정치적 밑거름이라는 평가다.
◇ ‘트럼피즘’이 낳은 미국 사회구조의 변화
미국 우선주의를 기초로 ‘매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를 내건 트럼피즘은 21세기 미국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하지만 저자는 트럼프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약화시키고 고립주의로 회귀하려 한다는 평가는 잘못된 것이라고 단언한다. 트럼프는 미국의 ‘실익’을 극대화하려 외교정책을 재조정하고 재협상했으며, 적과 동맹을 구분하지 않고 압박할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미 반 세계화는 대세이며, 미국 역시 세계화보다 자국의 이익을 훨씬 더 중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30여 년 동안 지속된 세계화의 후유증으로 미국은 이제 세계에 대한 관심과 개입을 줄이고 있다. 미국의 이익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이런 달라진 세계관이 트럼피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백인의 나라로 만들려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2024년 대선은 민주당 대 공화당 싸움이 아니라 흑백 인종 간의 싸움, 우파와 좌파의 첨예한 갈등이 되고 있다. 수세에 처한 백인들이 트럼프를 중심으로 뭉치고, 흑인들이 반격하는 모양새다. 해리스 부통령의 만주당 대선 후보 낙점 이후 이런 갈등은 더욱 첨예화하는 모양새다.
◇ 트럼프 2기의 정책 구상과 비전
카멜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현재 여론조사 결과는 박빙이다. (AP=연합) |
트럼프는 재집권 시 가장 먼저 손을 볼 집단으로 글로벌리스트와 딥스테이터(자기 이익을 위해 비밀 활동을 하는 조직의 일원)을 꼽는다. 그는 미국이 직면한 최대 위협은 ‘내부의 파벌과 혼란’이라며 말썽 많은 고위관료에 대한 대통령의 해임권을 보장하고, 예산 억제를 위한 지출 거부권 부여 및 공무원 해고 활성화 등을 적극 추진할 심산이다.
중국 경제 의존도를 대폭 낮출 방안도 찾고 있다. 최혜국 대우를 폐지하고 중국에 대한 관세를 60%대로 높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최대 200%까지 부과하겠다는 지침도 만지고 있다.
상대국과 동일한 비율의 관세 부과를 골자로 하는 ‘트럼프 상호무역법’ 제정도 계획하고 있다. 대신 미국 노동자와 기업에는 세금을 대폭 깎아줄 요량이다. 바이든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은 폐지하고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개발에 다시 나서고, 원전을 풀 가동해 풍부하고 값싼 에너지를 미국 기업들에게 대량 공급해 주겠다고 공언한다.
트럼프는 특히 ‘힘을 통한 평화’ 전략을 더욱 공공히 할 방침이다. ‘환상적인’ 차세대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강력한 미국 군대’라는 전통을 복원하겠다고 벼른다. 그 차원에서 한반도는 물론 대만에도 방어 비용을 청구해, 중국 견제를 위한 전방위 포석을 완성하겠다는 생각이다.
◇ 트럼프 2기 한반도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베트남 회담에서 처음 악수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트럼프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고, 새로운 핵무기 개발 동결을 대가로 제재 완화와 경제·재정적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김정은과의 직접 담판으로 성사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10% 보편적 기본관세 부과, 탈 중국화 강화, 인플레이션감축법 등 친환경 정책 축소도 예견되는 정책들이다.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10%의 보편적 기본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연간 152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산 중간재 수입 추정치가 연간 47억~67억 달러 수준이니, 전체적으로 한국의 대미 수출액 감소규모가 연간 200억 달러 안팎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이 북한을 상대로 재래식 방어를 주도케 할 것이란 전망도 점쳐진다. 군축 협상 등 미국과 북한의 직접 대화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심지어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허용 가능성까지 부상하고 있다. 한미, 한일 동맹을 넘어 한미일 3국 협력체제 구축이 강조될 것이 확실시된다.
◇ 해답은 자주국방과 안미경미(安美經美)?
우리의 주한미군 분담금은 2023년 기준 1조 3000억 원 안팎이다. 우리 정부 총예산의 0.2% 수준이다. 저자는 분담금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미국을 상대로 매년 최대 60조 원의 무역흑자를 내는 한국이 1억~2억 달러의 분담금 중액을 망설이다 소탐대실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재임 때 이미 “주한미군 철수를 두 번째 임기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고 공언했던 점도 상기시킨다. 한반도 방어의 책임을 우리에게 넘기려는 마당에, 안보는 물론 경제도 미국에 더 의존하는 ‘안미경미’ 전략이 우리 중장기 이익에 더 부합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설픈 양다리 전략은 대단히 위험하다며, 오히려 중국의 강점과 약점을 더 깊이 연구하고 확실한 우위 요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독자적 핵무장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의 핵은 미국의 핵 억제 부담을 덜어주고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개발 로드맵 등을 미리 준비하고, 일본과의 군사협력 및 공동 핵개발, 핵 프로그램 분업 같은 카드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저자는 끝으로 세 가지를 각별히 강조했다. 첫째, 트럼프가 파괴적이고 예측불허의 위험한 인물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그의 많은 행동과 언사가 고도로 계산된 행위이거나 최소한 오랫동안 벼려온 신념과 계획 임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는, 설사 트럼프가 낙선한다 해도 트럼피즘을 계승한 후보들이 계속 껄끄럽고 사나운 청구서를 들이밀 것이란 것이다. 세 번째는, 누구든 그는 미국편에 설 것을 요구할 것이라는 얘기다. 해리스가 당선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에 비관하지 않고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을 벌여갈 때, 트럼프 2기는 우리에게 축복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들도 과거에 매몰되어 후진적 퇴행을 거듭하지 말고, 한국우선주의(Korea First)를 당당하고 논리 있게 설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