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
더이상 서울의 가을은 편지를 쓰는 계절이 아닌 미술의 향연이다. 2002년부터 시작한 키아프(KIAF)는 우리 미술계의 가장 큰 행사다. 2021년부터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Frieze)와 협업 중이다. 콜라보 3년차에 접어든 키아프와 프리즈는 천생연분일까? 아니면 불편한 동거일까?
올해 키아프에는 22개국 206개(해외 74개) 갤러리가, 프리즈에는 32개국 112개(국내 31개) 갤러리가 참가했다. 각각 350여개, 330여개가 참여했던 2022년, 2023년 상황과 비교할 때 갤러리 숫자는 확연하게 줄었다. 양 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가운데 두 페어의 협업은 티켓 공동화에서 확인된다. 행사기간 내내 프리즈와 키아프를 모두 관람하는 티켓은 25만원, 1일 관람권은 4∼8만원에 판매됐다.
아트페어는 방문객들에게 수많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고가의 작품을 구매할 경제력이 없어도 아트페어를 찾는 이유는 눈요기에 있다. 하지만 박람회를 뜻하는 페어(Fair)는 기본적으로 상업성을 추구한다. 전시에 방점을 두는 비엔날레(Biennale)와 매매를 추구하는 경매(Auction)의 중간쯤으로 볼 수도 있지만 매출이 없으면 페어(Fair)는 그야말로 Farewell(안녕)일 뿐이다. 키아프는 출범 이후 매년 양적으로 성장하며 한국에서의 미술 대중화에 큰 공헌을 했지만 막상 손에 쥔 손익계산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미술장터 프리즈와 손잡은 키아프는 소수 컬렉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해외 큰손 구매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프리즈를 찾는 해외 컬렉터들이 키아프까지 찾아주기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올해 역시 프리즈에만 사람들이 몰리고 키아프는 비교적 한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키아프가 여러 측면에서 프리즈를 벤치마킹한 흔적이 보인다. 프리즈가 자랑하는 ‘프리즈 마스터즈’를 본따 ‘정통성을 자랑하는 국내외 모던명작을 집결’하는 ‘마스터피스’ 전을 그랜드불룸에서 선보였다. 나아가 참가국적 및 공간·장르적 확장을 키워드로 삼았다. 해외 갤러리에 문호를 더 개방하고 전시 면적을 넓혀 기존의 회화, 조각 위주의 틀에서 벗어나 미디어·디지털·퍼포먼스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프리즈 역시 최근 문화예술 분야에서 가장 핫하게 떠오르는 한국으로 영향력을 키우면서 빅샷 아트페어들에 앞서 아시아 영역을 선점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프리즈 참가 갤러리 중 63%가 아시아권이며 아시아 색채와 조화를 강조하며 21개 한국 갤러리들에게 첫 참가를 허락했다.
그럼에도 키아프도, 프리즈도 서로 원하는 만큼의 시너지를 얻지 못한 듯하다.환상의 콤비는 서로의 약점을 덮고 강점을 돋보이게 한다. 한지붕 두 가족이 적과의 동침이 될지 잉꼬커플이 될지 역시 서로의 강점을 얼마나 돋보이게 하는지에 달렸다. 해외 명품과 신토불이의 콜라보가 성공하려면 각자의 개성을 더 살려야 한다. 이에 프리즈의 아시아화는 다소 아쉽다.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의 협업 계약은 5년이며 양 페어의 대표는 5년 이후에도 함께 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매출 성적표가 이들의 동행을 보증하지 못할 가능성도 다분해 보인다. 관람객, 관심의 증가만으로는 이산가족이 될지도 모른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