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의 땅’ ‘67번째 천산갑’의 천쓰홍 작가(사진제공=민음사) |
“성 소수자로서 많이 고통스럽고 슬펐고 죽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성장하면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독자들을 만나면 이제는 큰소리로 ‘저는 대만에서 온 게이’라고 밝히죠. 사람들이 즐겁게 자기 자신이 되기를, 자신만의 모습으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9년 대만에서 출간돼 한국어를 비롯한 12개 언어로 번역된 ‘귀신들의 땅’(鬼地方) 그리고 한국에서 최근작 ‘67번째 천산갑’(第六十七隻穿山甲)을 출간한 천쓰홍(陳思宏) 작가는 이렇게 밝혔다. 지난 6일 개막한 서울국제작가축제(9월 11일까지 JCC아트센터) 초청으로 내한해 9일 한국기자들을 만난 그는 “소설은 충돌하는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천쓰홍 작가의 ‘귀신들의 땅’(사진제공=민음사) |
누나 7명과 한명의 형을 가진 스스로를 대입시켜 7남매의 막내 천텐동이라는 주인공을 내세운 ‘귀신들의 땅’은 대가족을 통해 대만의 근대 역사를 아우른다면 지난해 10월 출간한 ‘67번째 천산갑’은 개인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출판사에서는 ‘귀신들의 땅’ 흥행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어요. 하지만 놀랍게도 잘 돼서 미국에도, 폴란드에도 갔고 한국에도 올 수 있었죠. SNS를 통해 한국 독자들, 성소수자들의 피드백을 볼 수 있었는데요. 대만 소설이고 대만의 농촌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그 속에 담겨 있는 고통이 사실 나의 고통이었음을 느꼈다는 평이 많았죠.”
이어 그는 “이 소설은 실패자에 대한 이야기”라며 “한국과 비교해 동성혼이 법제화된 대만은 좀 나을 거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여전히 도시 외 지역에서 성소수자들의 생존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중국어로 ‘귀신들의 땅’은 환경이 열악한 지역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아주 작은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대학을 타이베이로 가고 싶었는데 집에서,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타이베이는 충분히 멀지 않았어요. 훨씬 더 먼 곳으로 도망을 가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겠다 싶었고 베를린에 기자로 가게 됐죠.”
그렇게 처음 발 디딘 베를린에서 그는 “정말 철저하게 혼자가 됐음을 느꼈고 자유로웠다”며 “그 외로움이 너무 좋다”고 고백했다.
‘귀신들의 땅’ ‘67번째 천산갑’의 천쓰홍 작가(사진제공=민음사) |
“사실 저는 실패한 작가이고 실패한 소설을 썼어요.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문과이고 대기업에 취직한 사람도 아니니까요. 그걸 실패한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어요.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조금 더 자유롭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67번째 천상갑’은 어린 시절의 인연으로 잠동무가 된 게이인 그와 헤테로인 그녀의 이야기다. 중국어 표현으로 그와 그녀는 표기(他, 她)만 다를 뿐 발음도, 성조도 같은, 어쩌면 최근 한국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성인지, 성평등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연인을 잃고 파리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던 게이인 그와 유명 정치인의 아내로 편안한 삶을 영위 중이지만 어쩐지 잠을 잘 수 없는 그녀가 어린 시절 동반 출연한 영화가 4K로 복원돼 낭트 영화제에 초대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프랑스 낭트로 가는 과정은 실제로 작가가 프랑스 낭트로 여행 중 사고를 당했던 상황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이야기다.
천쓰홍 작가의 신작 ‘67번째 천산갑’(사진제공=민음사) |
천쓰홍은 “대만의 천산갑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으로 많이 보내졌는데 나 역시 대만에서 도망가고 싶었다”며 “너무나 큰 욕망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역시 개들의 공격에 웅크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천산갑과도 같던 때가 있었다.
“어려서는 자살충동을 느끼기도 했어요. 수학 책에 시를 쓴 적이 있는데 그걸 친구가 발견했어요.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에게 ‘천쓰홍은 게이’라고 공개하면서 공격을 많이 받았죠. 그 후로 생존을 위해 많은 에너지를 써서 제 모습이 부각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숨겨야 했습니다. 그게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저는 저만의 색도 많은 편이고 목소리도 높이는 편이거든요. 그걸 감추는 게 되게 어려웠죠.”
그렇게 혼자 세계문학을 읽으면서 그는 “다른 세상의 존재”를 깨달았고 영화를 좋아하는 누나의 손을 잡고 자주 가던 영화관의 스크린을 보면서 “각양각색의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다른 세계로 가는 창문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제4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거머쥔 이안 감독의 ‘결혼피로연’을 보며 베를린을 동경하던 그는 그렇게 대만을 떠나 독일의 베를린에 터를 잡고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귀신들의 땅’ ‘67번째 천산갑’의 천쓰홍 작가(사진제공=민음사) |
세월이 흘러 베를린영화제 통역을 하면서 그 영화 속에서 사이먼을 연기했던 배우 자오원쉬안(趙文瑄)을 만났던 그는 무작정 “사이먼 고마워요”라고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그렇게 제 청춘의 시기에 구원을 줬던 사이먼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당시의 기쁨을 전했다.
“보수적인 사회일수록 영화나 문학은 확실히 청춘을 구원하죠. 사실 ‘67번째 천산갑’은 되게 슬픈, 슬픔에 대한 소설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기쁜 상황을 맞아 웃는 모습을 인터넷상에 많이 공유하죠. 울거나 슬퍼하는 모습은 올리지 않아요. 그런 모습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에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눈물과 슬픔의 힘을 믿어요. 울고 싶으면 크게 울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울음은 되게 중요해요.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울고 싶으면 크게 울라’고 말하는 소설이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