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앙드레 역의 이해준(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
“회차는 적었지만 ‘모차르트!’로 첫 주연을 맡으면서 엄청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한테는 버거운 작품이었죠. 그 버거움을 견뎌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숙제처럼 넘어야할 관문이었죠. 그렇게 ‘모차르트!’를 겪고 나니 저도 모르게 어느 정도는 강해져 있더라고요. 경미하지만 부상에도 끝까지 해냈다는 자신감도 생겼죠.”
그렇게 ‘모차르트!’로 첫 대극장 주연작을 마무리한 이해준은 ‘마리 앙투아네트’ 악셀 폰 페르젠 백작, 10주년을 맞은 ‘프랑켄슈타인’ 앙리 뒤프레·괴물 그리고 신작 ‘베르사유의 장미’(La Rose de Versailles, 10월 13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의 앙드레 그랑디에(이해준·고은성·김성식, 이하 관람배우·가나다 순)로 연달아 무대에 서고 있다.
7, 8월은 ‘베르사유의 장미’ 개막이 미뤄지면서 ‘프랑켄슈타인’과 맞물려 분주했던 그는 뮤지컬 ‘렌트’(Rent)의 극작가 조너선 라슨의 이야기를 다룬 ‘틱틱붐’(Tick, Tick...Boom! 11월 16~2025년 2월 2일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을 차기작으로 확정한 상태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앙드레 역의 이해준(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
“사실 진짜 어려웠던 시기는 ‘마리 앙투아네트’ 공연을 할 때였어요. ‘마리 앙투아네트’ 공연에 ‘프랑켄슈타인’ ‘베르사유의 장미’ 연습까지 겹쳤었거든요. 괴물을 위해 생전 처음으로 몸도 만들어야 했죠. 너무 행복한데도 과부하가 걸리면서 다 감당할 수 있을까 부담감이 컸어요.”
이어 이해준은 “너무 외롭고 춥거나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잘 안돼 슬프고 우울한 캐릭터를 쉼없이 연달아 하다 보니 리프레시할 수 있는 시간이 좀 부족했던 건 사실”이라며 “그걸 작품 안에 최대한 녹여내려고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어요. 결국 수능 입시생처럼 일 관련을 제외하고는 외부와 단절하고 운동과 레슨에 집중했죠. 이런 기회가 앞으로도 다시는 없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잡생각도, 스트레스도 사라진 것 같아요.”
◇오스칼과 앙드레, 사랑을 넘어 느티나무처럼!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앙드레 역의 이해준(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
작품 개발과정 중 콘서트부터 앙드레로 분했던 그는 “6개월 넘게 되게 장기공연을 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그래선지 첫 공연은 떨리곤 하는데 ‘베르사유의 장미’는 무언의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캐릭터에 대한 사랑이랄까요. 앙드레가 이미 오스칼을 사랑하고 있다는 관계성과 서사가 이미 전개된 상태로 극이 시작해요. 귀족인 오스칼과의 신분 차이가 컸으니 사람 혹은 친구로서 오스칼을 존경하고 동경하고 사랑할 수는 있지만 선을 넘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늘 바라만 보는 존재였던 것 같아요.”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이케다 리요코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프랑켄슈타인’ ‘벤허’ ‘삼총사’ ‘영웅본색’ ‘신데렐라’ ‘잭더리퍼’ ‘조로’ 등으로 호흡을 맞춘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작곡·음악감독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그간 제가 했던 캐릭터들이 그랬어요. ‘베토벤’의 카스파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페르젠도 형 혹은 마리를 위해 헌신하는 캐릭터였죠. 그게 쌓이다 보니 앙드레의 서사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대대로 프랑스 왕실 근위대를 이끌어온 자르제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아들로 키워져 근위대장이 된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김지우·옥주현·정유지)의 이야기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앙드레 역의 이해준(왼쪽)과 오스칼 옥주현(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소꿉친구 앙드레 그랑디에에 대한 사랑 그리고 오스칼·앙드레와 더불어 반쪽짜리 귀족으로 부조리한 세상에 혁명을 부르짖는 신문기자 베르날 샤틀레(박민성·노윤·서영택), 마리 앙투아네트를 조정하는 폴리냑(리사·박해미·서지영) 부인의 버려진 딸로 길러준 엄마의 복수를 꿈꾸는 로자리 라 모리엘(유소리·장혜린) 등이 꿈꾸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행복과 인생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걸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죠. 하지만 그게 사랑을 뛰어넘는 어떤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철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오스칼이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앙드레)가 그(오스칼)의 곁을 지켜줬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내 곁을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사랑을 넘어서는 감정으로 발전했던 것 같아요.”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앙드레 역의 이해준(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
이에 이해준은 앙드레를 표현할 수 있는 넘버로 ‘너라면’을 꼽았다. 그는 “오스칼이 더 큰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걸 느끼면서 더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넘버”라며 “그 가사들이 오스칼을, 제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제(앙드레) 마음이 오스칼에게 직접 들리지 않아서 진짜 슬프더라고요. 이 작품의 메시지를 잘 담은 넘버는 마지막의 ‘나를 감싼 바람은 내게만 불었나’ 같아요. 연출님께서 둘이 사랑하는 사이로 보이는 걸 철저히 배제하기를 바라셨어요. 넘을 수 없는 선 안에서 지켜주고 바라봐주는 게 오히려 진정한 사랑임을 보여주고자 다가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앙드레 역의 이해준(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
그럼에도 “결국 이 작품의 메시지는 시대를 관통하는 사랑이다. 사랑이 없었다면 이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겉으로는 되게 화려해 보이지만 그 안에 따뜻하고 인간적인, 시대를 뛰어넘는 사랑이 있어서 모든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을 보탰다.
“앙드레로서 오스칼에게 느티나무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반려견처럼 연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늘 곁에 있는, 오스칼의 마음의 안식처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5년 같은 2년 “천천히, 오래오래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앙드레 역의 이해준(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
‘엘리자벳’을 시작으로 ‘베토벤’ ‘모차르트!’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켄슈타인’ ‘베르사유의 장미’까지 쉴 새도 없이 달려온 그는 5년 같은 2년을 보내며 “어쩌면 진짜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만끽하는 중이다.
“중소극장에서 강한 캐릭터나 섹시한 역할 등을 하면서 배우로서 행복했어요. ‘엘리자벳’의 토드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등을 연기하는 데 밑거름이 되기도 했죠. 반면 대극장에서는 진짜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것 같아요. 다가가기 어려운 첫 인상과는 달리 수다쟁이에 사람을 좋아하는 제 성격을 앙드레나 앙리를 통해 보여줄 수 있었거든요.”
EMK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면서 받은 “EMK뮤지컬컴퍼니 작품만 출연한다는 오해를 털어내고 싶다”는 그는 “정당하게 오디션 기회를 얻어서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이거나 노래와 대본이 좋으면 언제든 도전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아직은 대사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있어 서사가 부족하거나 연기적으로 디테일이 없으면 많이 티가 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사량이 진짜 너무 많아서 정신을 못차릴 정도인 연극을 해보고 싶어요. 배우로서 꼭 스타가 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 직업을 천천히, 오래오래 하는 게 목표죠.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으면 그 목표도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만 이 직업을 오래, 행복하게 할 수 있겠다 싶거든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