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나자 정치권에는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첫발도 못 뗀 국민연금 개혁의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하는 것도 초미의 과제다. 청년·미래 세대를 위한 빅스텝이라며 특위를 구성하자는 여당,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하자는 야당 의견을 확인한 것 외에는 없다. 변변한 논의 기구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다.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2%’ 등을 담은 정부안에 대해 온도차만 드러낸 것이 전부다.
같은 사안을 두고 한쪽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다른 한쪽은 ‘국민 갈라치기를 하는 나쁜 방안’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서부터 난항을 예고한다. 그래도 정부안은 논의의 출발점이다. 논의 주체를 국회 연금특위로 해서 각 부처의 입장을 종합해 다루는 방식이 합리적일 수 있다. 지난 국회 연금특위에서 성과가 없었다 해서 충분한 협의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연금개혁 협상에서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의도를 누그러뜨려야 통합적 대화는 시작된다.
급여 수준에는 접점이 없는 게 아니다. 소득대체율에 관해서도 여당이 미는 정부 안(42%)과 민주당 안(45%) 사이에는 절충할 지점이 있다. 연금 삭감 장치라는 비판을 받는 자동조정장치 방안과 관련해서도 당리당략을 내려놓고 숙의해야 한다. 빠른 저출생 고령화 속도로 실질 연금가치가 줄어든다는 우려까지 담아내고 노인빈곤 예방 장치로서의 기능도 살리면서 청년과 중장년세대 갈라치기가 아님을 입증해낼 필요가 있다. 노후 보장성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기초·퇴직·개인연금을 동시에 놓고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모수 개혁을 넘어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절박하다.
연금 지급액이 지금 추세로 늘어난다면 정부 재정추계로는 2056년에 기금이 고갈된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고갈 시기로 잡은 2053년과는 3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소득 보장론과 재정안정론은 둘 다 중요하다. 쉽지 않은 만큼 집중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초반이 아닌 데다 국정지지도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비유하자면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혁신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로 꼽은 ‘강력한 적과 미온적인 동지’에 둘러싸인 형국이다. 어떤 유형의 개혁이든 만만치 않다.
여야 공감대 속에 협치하지 않으면 연금 개혁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할 게 뻔한 상황이다. 특위 구성과 소관 상임위 샅바 싸움을 빨리 끝내기 바란다. 여야가 심도 있는 논의를 시작할 단계를 지나고 있다. 소득 없는 탐색전은 그만하고 진통이 예상되더라도 본경기를 벌여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