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
모든 건 변한다. 특히 한국의 제반변화는 남다르다. 압축·고도성장을 이끌어낸 ‘빨리빨리’가 한 몫 했다. 무에서 유를 불러낸 원동력은 혁신이라 불리는 시대변화에의 발 빠르고 동물적인 적응DNA 덕이다. 잠깐만 쳐져도 못 따라갈 정도다. 개중 하나가 가족관이다. 갈수록 가족을 본능적 애정관계에서 경제적 편익상대로 보는 트렌드가 확산세다.
가족도 변한다. 어제의 가족과 오늘의 가족은 사뭇 구분된다. 가족본연의 본질·가치마저 변할까만은 뜯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오늘의 MZ세대는 가족의 쓸모를 다양한 잣대로 비교·검토한다. 해서 0.72명(2023년)의 출산률을 보건대 본능조차 포기되는 사회답게 가족을 둘러싼 상식수정은 자연스럽다. 이대로면 ‘가족은 없다’에 후속세대의 몰표가 쏠릴 터다. 세계를 놀래킨 무지막지한 속도·범위와 함께다. 그렇다면 상식·모범이란 수식어가 붙던 표준가족의 운영질서는 옅어진다. 가령 부모자녀의 4인형 평균모델이 기준점인 조세·복지·행정 등 제반제도도 바뀌는 게 맞다.
유행을 선도하는 패턴은 1인화다. 벌써 절반에 가까운 42%가 싱글세대다. 30대와 60대 이후가 주력집단이다. 환갑이후 늙음에 비례한 1인화는 그나마 일반적이다. 이혼·사별 등 인생 후반전일수록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포인트는 젊은 1인화다. X세대에서 보였던 나혼자의 낌새가 MZ로 넘어오며 확산한 게 30대 단신거주 트렌드로 이어진 듯하다. 앞으로의 1인화는 이례적인 모델이 아닌 주류적인 스타일로 흡수될 전망이다.
가족의 쓸모는 분해된다. 평생 영향을 미치는 게 가족이니 그 부재·포기는 뚜렷한 이유 없이는 설명되기 어렵다. 바통터치처럼 이뤄지던 ‘자녀부양→현역자립→부모봉양’이 없는 신생활을 뜻해서다. 먼저 1인화는 분화단계에 진입한 MZ의 가족포기로 나타난다. 결혼·출산이란 생애이벤트에 맞서 나홀로가 낙점된 경우다. 1차 가족과의 해체 후 2차 가족에의 분화 없는 생활형태를 뜻한다. 0.72명의 출산율로 귀결된 원인인자와 맞물린다. 최소한 자녀양육의 경제학적 가성비가 낮다(편익<비용)는 뜻이다. 덧대면 자녀미래의 불확실성도 예비부모의 의사결정을 압박한다. 요컨대 노예인생은 본인으로 끝이란 투의 슬픈 자각이 그렇다.
부양의 쓸모가 청년그룹의 주도변화라면 봉양의 쓸모는 전체세대를 아우른다. 노년부모뿐 아니라 중년자녀 및 청년손주까지 쓸모변화의 영향권에 들어선다. 비유하면 ‘마처세대’가 떠오른다.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지만, 자녀로부터 정작 부양을 못 받는 처음이란 의미다. 이로써 자녀효도를 통한 부모노후의 안전장치라는 봉양구조는 급격히 붕괴된다. 자녀편익 중 보험기능의 상실이다. 실제 MZ세대의 결혼조건 중 선순위가 부모자립형 노후준비란 점에서 봉양실종은 구체화된다. 결국 1인화를 택한 청년인구의 노년복지는 철저히 각자도생 혹은 정부위탁일 수밖에 없다. 가족이 없으니 당연지사다. 관계단절 속 고독사의 공포를 보완·대체할 움직임이 거세지는 배경이다. 이런 점에서 봉양의 쓸모를 둘러싼 재구성은 좀더 씁쓸하고 긴박하게 쪼개진다.
이제 핵개인의 쓸모만 남는다. 가족의 퇴색된 쓸모만큼 개인의 강화된 역할이 중시되는 시대다. 어쩌면 인류역사가 축적·강화시켜온 가족분화형 인생행복의 값어치가 2024년 한국사회에서 최초로 거세게 거부되는 게 아닌가 싶다. 본능에 맞서 DNA를 바꿔가며 가장 잘 살아내는 인생모델로 한국청년이 택한 게 1인화일지 몰라서다. 가족의 쓸모가 의심받고 수정된다면 심상찮은 일이다. 십분 양보해 자연스런 진화경로일지언정 변화가 불러올 충격최소를 위한 연착륙은 필수불가결하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