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내한 개인전을 준비 중인 애니 모리스(사진=허미선 기자) |
“회화든, 조각이든 제가 직접 색깔을 만들어요. 이번 전시회 역시 전제적인 색상의 조화를 위해 색을 직접 만들었죠. 이 전시회 자체가 하나의 설치작품이랄까요.”
스택(Stack) 시리즈로 유명한 아티스트 애니 모리스(Annie Morris)는 한국 첫 개인전(9월 30~11월 2일 더페이지갤러리 WEST관)을 “하나의 설치작”이라고 표현했다.
첫 내한 개인전을 준비 중인 애니 모리스의 대표작인 스택 시리즈(사진=허미선 기자) |
그의 작품은 루이비통 재단, 미국 뉴욕 티쉬(Tisch) 컬렉션, 콜로라도 대학(University of Colorado) 미술관, 마이애미 페레즈 미술관(Perez Art Museum), 상하이 포선 재단 및 롱 미술관, 서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등에서 소장 중이기도 하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굉장히 바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혼잡한 도시라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실제로 와서 보니 거리에 사람들도 그다지 붐비지 않는 것 같아요. 굉장히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느낌인 동시에 매우 활기찬 기운도 느껴지죠.”
28일 더페이지갤러리에서 만난 애니 모리스는 전시 준비와 더불어 시간을 쪼개 서울의 다양한 갤러리를 방문하느라 분주했다. “빙수와 프라이드 치킨이 너무 맛있다”고 전한 그는 “이틀 전에 도착했는데 그 사이 굉장히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며 웃었다.
“분위기도 좋고 한국 분들도 굉장히 친절하고 친근하게 대해주셨죠. 태피스트리 작품들, 구찌갤러리 등 한국의 아트 신도 좀 구경했어요. 있는 동안 롯데뮤지엄, 피노컬렉션 등도 방문할 예정이죠. 굉장히 다채로운 일들이 진행되고 있어 흥미진진합니다.”
◇트라우마와 슬픈 기억에서 출발한 스택 시리즈와 ‘꽃 여인’
애니 모리스 첫 내한 개인전 전경. 스택 시리즈와 ‘꽃 여인’(사진=허미선 기자) |
이번 개인전에는 2014년부터 선보인 대표작 스택 시리즈를 비롯해 국내에서는 최초로 선보이는 ‘꽃 여인’(Flower Woman) 그리고 다양한 태피스트리(Tapestry, 여러 가지 색실로 짠 직물)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애니 모리스 작품들은 스스로의 경험 혹은 기억에서 출발한다.
스택 시리즈는 유산의 아픔을, ‘꽃 여인’과 태피스트리는 엄마 그리고 유년시절의 기억을 담고 있다. 이에 스택 시리즈를 비롯해 ‘꽃 여인’ 등 그의 작품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제 작품들에 제 경험을 녹여내려고 했어요. 스택 시리즈의 출발점은 유산으로 인한 트라우마였어요. 만삭이던 때 유산으로 아이를 잃게 되면서 느낀 슬픔과 상실감 등 당시 감정 그리고 체형이 바뀌는 것까지 표현하려고 있죠.”
첫 내한 개인전을 준비 중인 애니 모리스의 스택 시리즈와 태피르스티 작품(사진=허미선 기자) |
그의 말처럼 만삭인 여성의 배 혹은 난자, 태아 형태로 쌓아 올리면서 시작된 스택 시리즈는 이후 10여년 간 “새롭게 태어난 제 아이들과의 관계, 어머니와의 유대 등을 담는” 시도로 진화했다.
언뜻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스택 시리즈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 색깔들로 잃어버린 아이 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 작가 자신, 어머니 등을 투영한 작품이다.
“어머니에서 비롯된 ‘꽃 여인’은 부모님이 이혼하시기 전 어린 시절 기억이 담겼어요. 그 시절 어머니는 젊으셨지만 이제는 나이가 드셨죠. 꽃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 버리잖아요. 게다가 꽃은 예쁘게 피어나는 순간이 굉장히 짧죠. 어떻게 보면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이 이혼하시기 전 아버지가 어머니께 꽃을 주던 잔상도 담겨 있습니다.”
‘꽃 여인’ 역시 스택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부모의 이혼이라는 슬픈 기억에 의존해 만들어졌지만 작품으로 형상화하면서 위안과 희망이 자리 잡았다.
“제 작품에서는 질감이 굉장히 중요해요. 스택 시리즈는 안료가 다 마른 느낌이 아니에요. 안료가 그대로 촉촉하게 살아 있는 신선한 느낌을 주기 위해 수년 간의 고심 끝에 표현해낼 수 있었죠. 생생하게 그대로 살아 있는 안료는 금방이라도 굳을 것 같잖아요. 일시적인 순간, 찰나의 느낌을 주죠. 파편처럼 부서질 것 같은, 어쩌면 슬픔이요.”
◇새롭게 선보이는 태피스트리, 매일 매일 한땀 한땀
첫 내한 개인전을 준비 중인 애니 모리스의 스택 시리즈와 태피르스티 작품(사진=허미선 기자) |
“태피스트리 작품은 굉장히 즉흥적으로 빠르게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매일매일 직접 혹은 기계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만들고 있죠.”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태피스트리 작품들 또한 부모가 이혼하기 전 어린 시절 기억에 의존한다. 애니 모리스에 따르면 “매일 연습하듯 기억을 떠올리며 그려 완성한 작품들이다.”
“사실 그래서 태피스트리 작품을 완성시키는 데는 시간이 괘 걸립니다. 되게 스피디한, 속도감을 주지만 실제로는 정교하게 작업해야 하는 독특한 창작품이죠.”
첫 내한 개인전을 준비 중인 애니 모리스(사진=허미선 기자) |
“어릴 때는 어떤 상상이든 굉장히 자유롭게, 거리낌 없이 만들면서 즐거운 창작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겪는 삶의 아픔이나 슬픔도 생겨나죠. 어린 시절 혹은 성인이 되고 나서 겪는 그 어떤 감정이든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삶의 걸림돌이 디딤돌이 돼 위안을!
“제 작품들은 사실 제 트라우마에서 기인했지만 동시에 많은 위안을 주기도 했습니다. 관객분들 역시 제 작품을 보면서 굉장히 즐거워하시죠. 그들 역시 저와 비슷한 혹은 저마다의 슬프거나 아픈 경험을 떠올리시며 위안을 받으시는 것 같아요. 제가 슬픈 기억에서 출발해 굉장히 찰나의 순간을 잡으려는 창작을 통해 내면의 불안감을 해소하며 기쁨을 느끼듯이요.”
이어 그는 “불안한 감정을 느낄 때 그림을 그리면서 차분해지곤 한다”며 “예술은 제가 살아가는 수단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삶의 걸림돌을 창작 작업을 통해 ‘위안’ 받는 디딤돌로 전환시켜온 그는 “그림을 그려야만 살 수 있는” 창작자다.
“이런 작업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들을 해소하고 보는 분들께도 큰 즐거움과 힐링을 선사해드릴 수 있는 것 같아요. 한국 관객분들도 제가 느꼈을 내면의 감정에 공감하시면서 위안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