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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화사첨족(畵蛇添足)

입력 2024-09-30 14:14 | 신문게재 2024-10-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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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Gild the lily’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Gild는 ‘금박을 입히다’, ‘도금하다’라는 뜻으로, gild the lily는 ‘백합에 금박을 입힌다’라는 의미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온 구절로(To gild refined gold, to paint the lily,..) 줄여서 to gild the lily라고 사용한다. To paint the lily라고도 하고 gild the lily라고도 하는데, 두 표현 모두 비슷한 의미로 불필요한 행동을 할 때 종종 인용된다. 백합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아름다운 꽃인데 굳이 금박을 입혀서 괜히 아름다움에 불필요한 손상을 입힌다는 의미이다. 사자성어로 비유하자면 화사첨족(畵蛇添足)의 의미라고 하겠다.

화사첨족(畵蛇添足)은 뱀의 그림에 발을 붙여넣었다는 뜻으로, 고대 중국의 역사서 사기(史記)에 나오는 내용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초나라 회왕(懷王) 시절에 있었던 일로 전해진다. 어느 인색한 사람이 제사를 지낸 뒤, 하인들에게 달랑 술 한 잔을 내놓고 나누어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한 하인이 나누어 마시기 너무 적은 술이니 땅바닥에 뱀을 제일 먼저 그리는 사람이 혼자 다 마시기로 하자고 제안하였고 모두 찬성했다. 그리하여 바닥에 뱀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너무 빨리 그림을 그린 한 하인이 시간이 남아 뱀에게 발까지 멋지게 그려 넣었다. 그때 막 뱀을 그린 다른 이가 술잔을 재빨리 비우며, 발 달린 뱀이 없음을 지적하니, 발을 그려 넣은 사람은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후회했다고 한다. Gild the lily, 즉 백합에 금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한 것을 덧붙인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는 ‘조리에 옻칠한다’라는 말이 있다. 조리는 쌀을 일구는 도구로, 예전에 우리네 주방에서는 필수로 사용했던 것으로 쌀 속에 든 돌들을 골라내는 도구이다.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든 조리도구가 되었다. 옻칠이란 나무 재질의 물건에 윤을 내기 위해 옻나무의 수액을 바르는 것인데, 옻칠한 제기의 경우에는 아주 조금 틀어지거나 할 경우, 옻칠의 특성으로 인해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고 한다. 옻칠한 밥그릇에 음식을 담아두면 며칠은 상하지 않을뿐더러, 옻칠하면 옻나무의 수액이 목재 안으로는 스며들고 위로는 비닐처럼 얇은 막을 형성하여 코팅 효과를 내기 때문에 방수와 방습 효과도 매우 좋다. 그러나 옻나무의 수액은 구하기도 어렵지만 많은 시간과 기술 등의 노력이 필요한 힘든 과정이기에 옻칠은 주로 최상품의 가구나 공예품에만 사용되어왔다. 그런데 그저 물을 부어 쌀을 일궈낼 때 아침저녁으로 주방에서 사용하는 흔한 조리에 옻칠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필요하고 소용없는 일에 괜히 시간과 마음을 쓰고 수고를 하는 경우를 일컫는 표현이다.

영어에 ‘Good wine needs no bush’라는 말이 있다. ‘내용이 좋으면 겉치레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뜻이다. 과한 것보다 부족한 것이 낫다고 했다. 사족을 달지도 말고, 백합에 금칠도 하지 말고, 조리에 옻칠도 하지 말도록 하자.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숲이 필요하지 않듯이 형식에 지배당하지 말고 내실을 챙기며 살도록 하자. 형식도 중요한 경우가 있지만, 형식을 위한 형식, 내지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형식을 삼가도록 하자. 영원할 것만 같던 무더위도 지나고, 어느덧 올 한해도 저물어 가기 시작했다. 차분히 지난 여름을 떠올리며 꼭 필요한 것을 성실히 준비하는 가을이 되도록 하자.

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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