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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천병규 파스칼 신부 "단 한번의 봉사활동이 인생 바꿨다"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그리스도회 천병규 신부

입력 2017-02-06 07:00 | 신문게재 2017-02-0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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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봉사활동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그리스도회 소속 천병규 파스칼 신부(59)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천 신부는 인생의 절반이 넘는 약 30여 년의 시간을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에 힘 쏟았다. 지금은 천주교 소속의 신부가 됐지만, 그의 인생을 바꾸는 데는 한 번의 봉사활동이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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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규 파스칼 신부의 모습 (사진제공=천병규 신부)

35년 전, 24살의 대학생이었던 천 신부는 군 제대를 마치고 복학을 준비하던 중 뜻깊은 시간을 마련하고자 부산의 대표적 달동네 아미동을 찾았다. 


부산 아미동은 형편이 어려운 서민은 물론 고아, 결손가정 아이들, 독거노인 등이 대거 거주했던 곳으로 가정마다 화장실이 없어 주민들이 마을 한복판에 마련된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했던 열악한 곳이다. 천 신부는 이곳 아미동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사건을 맞이했다.

한 달간 고아, 결손가정 아이들을 돌보던 그는 집에 돌아갈 날이 다가오자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지내온 정에 도저히 이들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후 천 신부는 남은 인생을 모두 소외받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단순하게 봉사활동을 위해 갔던 곳에서 크게 행복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봉사란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것으로만 알았던 내게 아미동에서의 경험은 인생을 모두 바꿔 놓는 대사건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경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봉사를 생업으로 삼고 살겠다는 아들에 대한 집안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는 “얼마나 반대가 심했으면 가족들이 이웃집에 창피스럽다며 집에 오는 날이면 낮에 오지 말고 늦은 밤에 오라고 했었다”며 “지금은 가족들이 그 누구보다도 나를 응원해주지만 봉사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했던 그 당시는 정말 힘들고 속상했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천 신부는 그 후 38살이 될 무렵까지 무려 14년을 봉사활동을 위해 살아왔다. 지체·발달·정신장애인들이 몰려사는 부산 아미동 성모의 마을을 시작으로 소외계층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젊은 시절을 아낌없이 헌신했다.

특히 그는 1990년대 초 강원도 철원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독거노인과 루게릭·간질 등을 앓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소공동체 봉사활동도 했다. 이런 공로로 김영삼 정권 당시 최형우 내무부장관으로부터 사회공헌과 관련한 표창도 받은 바 있다.

봉사활동에 대한 뜨거운 그의 열정은 신부라는 새로운 꿈으로까지 이어졌다. 38살 무렵 봉사활동을 계기로 신부라는 성직자의 꿈을 꾸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가톨릭 신학교는 평균 만 29세라는 나이제한이 있었다.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그에게 도움을 준 이 역시 바로 봉사활동에서 만난 한 외국인 수녀님이었다. 그는 이후 이탈리아·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난 뒤 50살에 늦은 나이로 스페인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신부가 됐다. 그의 인생이 봉사활동으로 인해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다.

 

천 신부는 “지금 돌아보면 봉사활동이 신부라는 꿈을 꾸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며 “봉사를 시작한 24살 그날 이후 내 인생을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고 오히려 내 도움이 필요로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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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규 파스칼 신부의 모습 (사진=김진호 기자)

 

천 신부는 진정한 나를 찾아볼 수 있는 방법으로도 봉사활동을 추천한다. 외형적으로는 참 풍요로운 시대이지만 내면적으로 굉장히 공허한 상태인 현대인들에게 자기계발과 마음의 충만함을 위한 봉사활동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그는 “세상에 사람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특히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것을 알고 있다면 남 역시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반대로 나 역시 언젠가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봉사활동의 경우 비록 몸은 고될지라도 삶이 풍족해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 신부는 봉사활동을 하며 언제 가장 큰 행복을 느꼈냐는 질문에 “내가 도와주고 키웠던 고아들이 지금 30~40대로 장성한 것을 보면 정말 뿌듯한 감정을 느낀다”며 “얼마 전 이 아이들과 함께 캠프를 가서 밥 먹고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봉사활동은 어렵고 힘든 영웅적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소소하지만 위대한 행동이다”며 “나 혼자만 행복한 세상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이도 함께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봉사에 대한 천 신부의 뜨거운 열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그는 다음 달 멕시코의 한 지역으로 가 무의탁노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센터 설립을 진행할 예정이다.

치안 등의 문제로 젊은 신부들조차 기피하는 멕시코를 선뜻 간다고 이야기하는 그에게 ‘무섭다고 생각해보신 적 없나요’라고 묻자 그는 “봉사에 대한 열정이 있으므로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과 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가겠다”고 밝게 웃어 보였다.

김진호 기자 elma@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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