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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이탈리아 패키지여행, ‘정찬’ 한번 못먹은 저급한 식사에 ‘우울감’

미식의 나라에서 밋밋한 파스타에 말라빠진 샐러드 … 보는 것에만 만족해야 후회없어

입력 2017-08-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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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저가 패키지여행은 볼만한 명소는 많되 제공되는 음식이 형편없어 아예 이를 포기하고 선택해야만 한다. 사진은 이탈리아 로마 판테온(만신전)의 거대한 석조기둥

그동안 부모님과 국내여행은 숱하게 같이 다녔고 중국·동남아·홍콩도 보내줬으나 아직 미국이나 유럽을 다녀온 적은 없어 팔순 노모를 위해 이달초 O여행사의 이탈리아 6박8일 패키지여행을 신청해 다녀왔다.


패지키여행은 저렴한 비용으로 단기간에 많은 명소를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나 무리한 일정, 바가지 쇼핑 코스 유도, 옵션 여행의 강제화 등이 문제라는 점을 기사와 풍문으로 익히 들어 당초 큰 기대는 안했다. 준비기간이 촉박하고, 신경쓸 겨를도 없고, 비용도 빠듯해 부득이 패키지여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일백번 고쳐 생각해도 이번 여행에서 느낀 씁쓸함과 우울감은 오래도록 잊혀질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도 고객을 인간적인 객체라기보다는 돈을 벌어주는 수단쯤으로만 여기는 것 같아 유감스러웠다. 혹자는 필자더러 ‘브랜드 없는 여행사를 택해서 홀대를 당했다’, ‘100만원 정도 더 비싼 럭셔리 패키지여행을 택하면 대접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패키지여행의 본질이 그런 것인데 수원수구해서 뭣하느냐’고 질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가 유럽 패키지여행을 구입한 원죄가 있고, 이를 통해 겪은 수모스러움을 알리는 게 너무 사적이거나 창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선택으로 후회하는 다른 여행소비자가 적잖을 듯하여 진상을 적어본다.


우선 먹는 게 너무 박했다. 세계 3대 미식(美食) 국가하면 프랑스 중국에 이어 이탈리아(혹자는 일본)를 꼽는데 이탈리아 현지 정찬이라고는 구경도 못했다. 가이드는 마지막날 예정된 이탈리아 석식마저도 숙소에서 거리가 멀고 내일 한국으로 출국하므로 가까운 한국 식당에서 해결하자고 했다. “만찬이라 해도 그동안 낮에 먹은 이탈리아 점심 수준(밋밋한 파스타나 미트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니 한국식이 낫다”고 설득했고 여행객들은 가이들의 말에 순치된 듯 동조해줬다. 여행 내내 기대할 게 없었으므로 항의할 의지조차 상실한 모습이었다.


가이드는 조식을 빵과 주스가 든 종이봉다리를 아침 도시락이라고 제공하면서 “원래 이탈리아 사람들은 빵 몇 조각으로 아침을 때운다. 한국 사람처럼 거나하게 먹지 않는다”고 둘러댔다. 또 피자에 곁들여나온 샐러드는 말라 비틀어진 채소에 불과했는데 가이드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피자를 먹을 때 소스를 친 샐러드를 제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피자 그 자체만의 맛을 즐긴다”고 말했다.


현지식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자 일부 여행객은 내 돈으로 먹을 테니 여행비 중 식사비만이라도 돌려주거나 괜찮은 식당을 안내해달라고 했으나 가이드는 인원 통솔이 안되고 규정상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여행 코스가 로마·피렌체·밀라노를 들른다고 하지만 숙소는 한결 같이 도심에서 차로 1시간가량(40㎞이상) 떨어져 있었다. 더욱이 첫날 로마나 셋째날 밀라노의 숙소는 인근에 식당가가 전혀 없는 음산한 지역이어서 귀양살이를 온 것 같은 고립감마저 들었다. 마지막 3일간 묵은 로마 교외의 숙소는 식당가를 안고 있으나 이탈리아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없는 그저 인스턴트푸드 수준의 바(Bar)이거나 호텔에 부속된 너무 비싸거나 품질을 검증할 자신이 없는 레스토랑들이었다.


그렇게 최저가 수준의 졸박한 음식을 제공하면서도 가이드는 총 310유로에 달하는 선택관광 5종 세트를 끈질기게도 강권했다. 그 중 오르비에또 시티투어나 베니스 곤돌라 탑승 같은 것은 굳이 해야 할 매력을 느끼진 못했다.
다리가 불편한 노모를 위해 가이드가 폼페이유적과 바티칸교황청박물관 관람을 극구 말렸지만 자신이 편하려고 그랬는지, 비싼 입장료를 절감하려 했는지 저의가 의심스럽다. 


가이드는 피렌체에서 이름도 생소한 중저가 브랜드를 소개하며 쇼핑을 권유했으나 우리 일행들이 그런 걸 구입할 정도로 수준이 낮지 않았다. 이후엔 쇼핑에 낭비하는 시간이 줄어 다행이었다. 다만 살 만한 물건이 많은 브랜드 아울렛에선 귀국 직전 고작 70분 남짓한 시간을 배정해 벼락구매를 해야 했다.


여행에서 먹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려고 애썼던 필자는 이번 여행에서 먹는 것도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됐다. 효도한답시고 어머니를 미식의 나라인 이탈리아로 모셨으나 정작 어머니는 졸박한 식사에 불평도 못하고 꾹 참은 듯하다. 나이들수록 오히려 미식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다고 한다. 노모도 인간일진대 그런 면을 헤아리지 못한 게 서글프다. 노모를 잘못 모신 죄스러움이 갔다온 지 1주일이 넘어감에도 사그러들지 않는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이탈리아 와인 한잔 마시려던 필자의 소망은 여기에 더해 뭐하겠는가.



정종호 기자 healtho@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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