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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교환방정식 새로 쓰기와 새 통화이론의 모색

입력 2021-03-0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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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택
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가덕도 28兆에 지원금 20兆, 광주·제주 5兆씩, 온통 빚내서 잔치” 한 일간지의 사설제목이다.

문재인정부와 민주당 대권후보들의 정부지출 무서워하지 않는 행태가 대담해졌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이들이 귀동냥한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 ‘주술 경제학’이라고 주류 경제학들이 비아냥거리는 대상, 이하 MMT)의 영향도 있을 듯 하다. 미국 민주당 좌파의 젊은 기수 알렉산드리아(AOC) 하원의원도 자신이 제안한 ‘그린뉴딜플랜’의 재원은 MMT가 보장해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체계적으로 정립된 MMT모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MMT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중심 아이디어는 첫째는 자국통화를 발행하는 국가의 정부가 자국통화로 빌린 빚 때문에 파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며, 둘째는 총수요관리와 고용확대를 위한 정부지출은 세수입에만 의존하지 말고 통화팽창을 통해 하면 된다는 것이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귀가 솔깃해질 주장이다.

이같이 황당한 주장이 경제이론의 간판을 걸고 정치권에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지난 30년간 진행되어온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무력화와 이를 방관한 채 새로운 설명과 정책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주류 경제학의 책임도 크다.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 30년 동안 물가수준의 하방 압력으로부터 일본 경제를 지키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통화정책수단을 동원해 봤지만 결국 무위로 끝나지 않았던가.

이는 일본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지구상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2%내외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설정하고 통화정책을 운영했지만 성공한 나라가 몇이나 되는지. 통화정책의 실패는 정책의 기초가 되어온 화폐수량이론의, 보다 구체적으로는 교환방정식의 이해와 해석의 오류에 기인한다. 화폐수량이론은 처음 제시된 이래 반 천년동안 꾸준히 재해석 되어 왔으나 지난 30여 년 동안에는 반복된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이론 재해석의 시도도 없었고, 결과는 이론으로서의 예측능력을 상실해 정책 수단으로서의 기능도 상실한 것이다.


◇ 화폐수량설이 이론이 되기까지

대부분의 중상주의자들은 화폐의 수량과 물가수준간의 직접적 관계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당시 서유럽이 경험하고 있던 물가상승의 원인을 중남미로부터의 귀금속 유입으로 보았다. 또 산출을 제약하는 독점정책과 소비자들의 사치재에 대한 수요 증가도 물가상승의 원인으로 생각했지만 무엇보다도 금과 은의 유입을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화폐이론이기 보다는 단순히 특정 재화의 공급이 급격히 증가하면 그 가격이 하락한다는 일반론에 근거한 , 화폐량 증가에 비례한 모든 재화 가격의 상승을 말하는 것이었다.

화폐로 사용되는 상품, 금과 은의 공급이 늘어 그 가치가 떨어진다는 수요-공급의 법칙을 말하는 것이 아닌, 통용되는 화폐 수량의 증가와 유통속도의 가속이 어떻게 개별 상품들의 가격에 영향을 미쳐 전체 가격수준을 상승시키는지와 더 나가서는 경제활동 및 재분배효과까지도 설명하는 본격적인 화폐수량이론은 18세기 중반 출판된 깐띠용의 저술에 담겨있다.


제2부 6장 국가의 화폐량 증감에 관하여

‘만일 어떤 나라에 금광이나 은광이 발견되어 상당한 양이 채굴된다면, 광산주, 사업가와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부와 버는 이윤에 비례해 지출을 늘릴 것이다. 그들이 필요 이상으로 갖게 된 돈은 빌려주고 이자를 받을 것이다. 이 모든 돈은 빌려주든 써버리든 유통될 것이며 지나가는 경로에서 상품과 재화의 가격은 오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로크는 재화의 수량과 통화량 사이의 비율이 시장가격의 결정자라는 것을 기본명제로 규정하고 있다. 나는 앞장에서 그의 아이디어를 명료하게 밝히려 했지만, 그는 화폐의 풍부함이 모든 것을 비싸게 만든다는 거는 분명하게 했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 이 문제의 어려움은 화폐의 증가가 어떤 식으로 또 어떤 비율로 물건들의 가격을 올리는가를 알아내는데 있다.

나는 교환에서 화폐유통의 속도 혹은 가속이, 어느 정도는, 실제 화폐의 증가와 같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 따라서 비록 정확하고 세밀하게 설명하지는 못할지라도, 이 문제에 관해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만일 경화의 증가가 금과 은 광산에서 연유한다면, 광산주, 기업가, 제련사, 정제공, 그리고 많은 노동자들이 늘어난 소득에 비례하여 지출을 늘릴 것이다. 그들은 집에서 고기, 포도주 또는 맥주를 이전보다 더 많이 소비할 것이다. 보다 좋은 의복을 입고, 고급 린넨 제품을 갖고, 잘 꾸민 집과 다른 원하는 것들을 갖는데 익숙해질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이전에는 별 볼일이 없던 기계공에게 일자리가 생기고, 이들 또한 같은 이유로 지출을 늘리게 될 것이다. 고기, 포도주, 양모 등에서 이런 지출이 늘어나면, 광산의 부의 창출에 처음부터 관련되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의 몫은 어쩔 수 없이 줄어들게 된다. 평상시보다 훨씬 늘어난 고기, 포도주, 양모에 대한 수요 때문에 시장의 흥정과정에서 이들의 가격은 반드시 오르게 된다.

오른 가격은 농부들로 하여금 이듬해에는 이들 작물 생산에 더 많은 농지를 사용하게 만들고, 이들 농민들도 가격 상승으로 이득을 얻을 것이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지출을 늘리게 된다. 가격이 오르고 소비가 늘어남으로써 고통을 받게 되는 사람들은, 우선은 계약기간에 묶인 지주와 그에게 고용된 하인과 일꾼들, 그리고 고정된 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노동자들이다.’

이어서 그는 통화량 증가에 따른 가격상승은 새 화폐소지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다는 점 그리고 가격상승이 상대가격의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에 경제에 실질적 영향 (깐띠용효과)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제2부 7장 국가의 화폐량 증감에 관하여 더

‘국가의 화폐량을 두 배로 늘린다고 해서 모든 작물과 상품의 가격이 두 배로 오르지는 않는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한 국가에서 화폐량의 증가로 야기되는 상대가격 변화는 소비와 유통에 화폐가 얼마나 사용되느냐에 달려있다. 돈은 그것을 획득한 사람의 판단에 따라, 특정 작물이나 상품에 더 많이 또는 덜 몰리게 된다. 돈이 아무리 풍부하다 하더라도, 어떤 상품의 시장가격은 다른 상품보다 더 많이 오를 것이다.’


◇ 교환방정식은 항등식이다

화폐수량이론의 수리적 형식화 시도는 교환방정식이라는 항등식에서 출발한다. 화폐경제에서 일정기간 동안 거래된 재화와 서비스의 총금액(PT)은 그 거래에 지불수단으로 사용된 화폐의 총량(MV)과 같다는 MV=PT 이다. 항등식인 교환방정식이 이론이 되는 것은 각 변수에 대한 가정과 변수들 간의 관계설정에 의해서이다.

Fisher 교환방정식으로도 불리는 이 거래기준 교환방정식의 특징은 거래량(T)은 재화와 서비스 뿐 아니라 토지, 주택, 증권 등 기존의 자산의 거래도 포함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교환방정식은 소득기준 교환방정식MV=PY 이다. 지금 주류경제학의 원론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버전이다.

여기서 Y는 GDP이기 때문에 중간재를 제외한 최종재 거래의 교환방정식이다. 세 번째는 케임브리지 현금잔고 방정식M=kPY 이다. 이 방정식의 M은 화폐공급이 아니라 현금수요이다. 케인스가 유동성선호 방정식이라고 부른, 화폐의 자산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진 방정식이다. 케인스는 불완전 고용상황에서는, 화폐유통속도 V의 역수인 k가 매우 불안정하며, 통화량이나 명목소득의 변화에 k가 수동적으로 적응하여 등식이 유지된다고 보았다. 그가 화폐수량이론을 예측목적이나 정책수단으로 유용성이 없다고 본 이유이다.

반면 유럽의 1920년대와 1940년대 하이퍼인플레이션 연구로 화페수량이론 부활에 크게 기여한 케이건(P. Cagan)의 논문은 이 방정식의 k를 상수가 아니라 기대인플레이션의 감소함수로 설정해 통계 검증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네 번째 교환방정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부가 축적되고, 소득이 늘었고, 세계화되고, 새로운 기술이 삶의 방식도 바꾸었고, 수명이 늘고 인구구조도 바뀌었다. 그리고 경제주체들의 행태도 바꾸어놓았다. 이 모든 변화가 반영된 새로운 교환방정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 교환방정식 새로 쓰기

앞에서 깐띠용의 장황한 설명을 인용한 것은 그 것이 교환방정식을 새로 쓰는데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광산에서의 금, 은 생산증가로 시작된 경화의 증가 대신 Fed가 세계의 기축통화이자 미국의 법정화폐의 공급을 늘리는데서 사고 실험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비상시국이 아니라면 공개시장을 통해 새 달러화는 뉴욕의 은행산업으로 흘러갈 것이다.

은행수중의 이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부터 21세기와 지난세기와의 차이가 나타난다. 지난 세기에는 이 돈을 제조업 분야의 대기업을 포함한 수많은 기업들이 공장 짓고 새 기계 만드는데 쓰려고 빌려갔지만 , 21세기에는 시장가치 상위기업들은 자신들의 유보금도 넘쳐나 차입의 필요가 없고, 첨단산업분야에서는 신규 창업기업들도 은행차입보다는 벤처자본의 지분투자에 의존하기 때문에 비 금융권 향 은행대출이 크게 줄어들었다.

은행수중의 나머지 돈은 금융권에서 레버리지 투자하는 헷지펀드나 대체자산 투자에 쓰인다. 새 달러화의 유통과정에서 수혜자가 되는 금융 산업의 기업과 종사자들이 그 이윤과 소득을 어디에 쓰는지는 깐띠용의 사례에서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큰 부와 높은 소득 때문에 이들의 한계소비성향은 매우 낮고 저축의 비중이 크다.

그러나 깡띠용이 썼듯이 “이 모든 돈은 빌려주든 써버리든 유통될 것이며 지나가는 경로에서 상품과 재화의 가격은 오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축의 비중이 크니, 돈의 유통경로에서 가격이 오르는 상품과 재화는 금융상품과 자산이다. 반면 그가 언급한 다른 분야의 일자리가 생기고 지출이 증대되는 파급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소득기준 교환방정식은 이미 폐기됐어야 한다.

새 교환방정식은 자산거래를 포함하는 거래기준 교환방정식과 자산으로서의 화폐에 초점을 맞춘 케임브리지 방정식의 조합에서 찾아야 할 듯이 보인다. 그러자면 ‘거래기준’이 ‘소득기준’으로 바뀐 원인으로 지목되는 거래단위와 가격지수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하고 아울러 통화정책에서 조절 목표가 통화량에서 이자율로 대체된 이유인 화폐 정의의 모호성도 해소되어 할 것이다.

끝으로 새로 쓰는 교환방정식의 변수들과 이들 간의 관계는 가치의 근본법칙들로부터 나와야 하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학파 , 특히 미제스의 영향을 받은 경제학자들이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이 넓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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