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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칼럼] 초언풍종(草偃風從)

입력 2021-04-11 15:14 | 신문게재 2021-04-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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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설립자

오늘은 공자의 말씀으로 글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공자는 논어 이인(里仁)편에서 “군자는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잘 알고, 소인은 어떤 것이 이익인지 잘 안다. 군자는 어찌하면 훌륭한 덕을 갖출까를 생각하고, 소인은 어찌하면 편히 살 것인가를 생각한다”는 말로 군자와 소인을 정의했다. 위령공편에서는 “잘못을 했을 경우 자신을 탓하여 자신에게서 잘못의 원인을 찾는 군자와는 달리, 소인은 다른 사람을 탓하며 다른 사람에게서 잘못의 원인을 찾는다”고도 했다.

 

논어 안연(顔淵)편에서는 “풀은 바람을 따라 눕는다”는 초언풍종(草偃風從)을 설파한다. 노(魯)나라의 실력자인 계강자가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느냐”고 공자에게 묻는다. “무도한 자를 죽이고, 백성들을 도의 길로 나아가게 하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대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 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쓰려고 하는가? 그대가 만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생각한다면 백성들도 또한 함께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백성들의 덕은 풀과 같아서, 풀은 바람에 따라 눕는 것이다.”

 

공자가 정의하는 군자와 소인 또 그 둘의 관계를 현대의 정치 체계에 맞춰 재해석해 보면 선거로 뽑히는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 군수 등 ‘선출직 공무원’과 자신의 이해관계에 터 잡아 투표하는 ‘유권자’의 관계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논어에는 인용하지 않았으나 시경에 나오는 “바람 속의 풀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아느냐”라는 초언풍종에 대한 댓귀를 보면 ‘선출직 공무원’과 ‘유권자’의 관계가 더 명확해진다.

 

이번 보궐선거 개표 결과는 ‘바람 속의 풀이 다시 일어난다’는 공자님 말씀에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음이리라. ‘정치 지도자들은 자칫 선거 그 자체에 매몰되는 우를 범한다. 선거를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승리와 패배의 갈림길로만 본다. 국민은 이들을 가르쳐 도의 길로 나아가게 가르쳐야 하는 풀과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바람 앞에 눕는 풀’로만 알았던 유권자들이 ‘바람을 이기고’ 다시 일어난 것이다.

 

미국의 전 대통령 아이젠하워(1890~1969)의 리더십에 대한 유명한 예화가 있다. 어느날 친구가 찾아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리더십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실 한 올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당겨보라고 했다. 친구가 당기자 실은 팽팽해지며 끌려왔다. 아이젠하워는 이번에는 뒤에서 밀어보라고 했다. 친구가 열심히 밀어 보았지만 실은 밀리지 않았다. 이에 아이젠하워는 “리더는 뒤에서 밀지 않는다네. 다만 앞에서 당길 뿐이지”라고 말했다. 보스는 “가라!”고 뒤에서 명령하지만, 리더는 앞에서 “가자!”고 솔선수범한다. 뒤에서 바람을 몰아치면 풀은 눕는 척 할 뿐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은 작고하기 몇 해 전에 발표한 대표적 작품 <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중략)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새삼 공자가 말씀하는 군자 같은 지도자를 그려본다. 유권자, 즉 국민은 바람이 불면 눕지만 그 바람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풀 같다는 것을 아는.

 

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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