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문화 > Book

[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과학에 더 가까이, 탐험> 제니 오스먼

오지와 미지를 향한 위대한 탐험과 도전의 역사

입력 2021-04-30 20:0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탐험. 듣기만 해도 설레고 흥분되는 단어다. 이 책은 누구도 쉽게 접근하기 힘든 오지에서부터 우주 미지의 세계까지 인류의 위대한 탐험  80개 실화를 생생하게 소개한다. 특히 과학의 진보에 이바지한 탐험들을 중심으로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경이로운 도전의 역사를 담았다.  

 

 

 

* 생명체 분류법을 만든 ‘린나이우스’ - 종-속-과-목-강-문-계. 학창시절에 한번은 들었을 법한 ‘린네의 생명체 분류체계’다. 린네는 젊은 식물학자 카롤루스 린나이우스(1707~1778)가 귀족 작위를 받은 후에 얻은 이름이다. 라틴어에 능통했던 그는 모든 생물과 식물에 그 속명과 종명으로 이뤄진 이중의 라틴어 이름을 붙이는 이명(二名) 체계를 만들었다. 그는 불과 25세 나이에 스톡홀름 북쪽부터 시작한 ‘라플란드 원정대’를 이끌면서 현대 생물자원 탐사 및 과학사에서 혁신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이 분류법이 없었다면 찰스 다윈의 ‘생명의 나무’도 나올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의 업적을 기려 스웨덴은 100크로네 지폐에 그의 얼굴을 새겨 주었다.

 

* 대영박물관을 설립한 ‘슬로언’ - 내과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한스 슬로언(1660~1753)은 영국 왕실의 식민지였던 자메이카의 총독을 따라 현지에 파견되어 현지 동식물 등에 관한 소중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 린나이우스의 <식물의 종>도 슬로안의 메모와 그림에서 영향받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그는 노예선을 통해 수많은 수집품을 수집한 것으로 후대에 더 기여했다. 그의 집에는 박제된 동물과 식물들, 보석, 인간의 피부로 만든 신발, 중국산 귀 간지럼 도구 같은 특이한 물건들이 넘쳐났다. 슬로언은 유언으로 자신의 어마어마한 수집품들은 보관할 박물관을 요청했다. 이것이 훗날 세계 최초의 공립 박물관인 대영박물관이 되었다.

 

* 등산을 스포츠로 탄생시킨 몽블랑 등정 - 스물 다섯의 자크 발마(1762~1834)는 제네바에 사는 한 과학자가 낸 “몽블랑 정상에 오르면 상금을 주겠다”는 공고를 접하곤 곧바로 도전에 나선다.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이 등정을 그는 의사인 미셸 가브리엘 파르카와 함께 1786년 8월 8일에 마침내 이뤄냈다. 공고를 낸 오라스 베네딕트 소쉬르는 인류 역사에 ‘등산’이라는 스포츠를 탄생시킨 공로자로 기록된다. 직접 몽블랑 정상에 오르려다 실패한 후 상금을 걸어 다른 사람들에게 등정을 권했다. 이듬해 발마의 도움으로 몽블랑 정상에 서게 된 그가 측정한 수치를 근거로 몽블랑은 유럽 최고봉임을 인정받았다.

 

* 최초의 환경주의자 ‘폰 훔볼트’ - 독일의 모험가이자 박물학자였던 폰 훔볼트(1769~1859)는 기압계와 온도계 같은 여러 도구로 과학적인 실험을 많이 했다. 그는 5년에 걸쳐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페루, 멕시코, 쿠바와 미국을 원정 탐험을 하면서 환경보호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지역의 기후가 생물과 땅, 바다 사이의 복잡한 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을 최초로 알아 냈다. 숲이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지구를 차갑게 유지하는데 핵심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식물을 분류학이 아닌 기후대에 따라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같은 온도를 연결하는 ‘등온선’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해 낸 것도 그였다. 덕분에 후대 과학자들은 그를 ‘과학계의 셰익스피어’로 추앙하고 있다.

 

* 다윈을 분발시킨 ‘러셀 윌리스’ - 박물학자인 엘프리드 러셀 윌리스(1823~1913)는 동인도 탐험 때 발리와 롬복 섬 사이의 해협을 여행하다가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같은 새 들이 한때 이 해협의 양 쪽 두 섬에 모두 존재했다가 해협이라는 자연적 장애물 때문에 각기 다른 종으로 진화되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이것이 매우 오래 전 지구 표면에 일어난 변화 때문이었을 수 있다고 추론했다. 나중에 ‘대륙이동설’의 모태가 된 발견이었다. 그는 챨스 다윈에게 편지를 보내 각기 다른 종들이 어떻게 진화하는 지에 관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했고, 이것이 다윈의 ‘자연선택설’의 중대한 모티브가 된다. 정작 본인은 그런 엄청난 업적에 공헌했다는 점에 만족했다고 한다.

 

* 파스퇴르의 저온살균 ‘파스퇴르법’ -  미생물학자 겸 화학자였던 루이 파스퇴르(1822~1895)는 2000m 정도의 고도에서는 세균이 거의 없으며, 액체를 미리 끓이면 그 안의 미생물이 죽을 것이라는 이론을 세워 실험으로 입증했다. 오늘날 대부분 우유는 해로운 박테리아를 제거하기 위해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을 거친다. 그는 섭씨 55도로 운송하면 와인을 상하게 하는 미생물을 죽을 수 있음을 밝혀내 프랑스 와인업계를 살리기도 했다. 또 누에의 감염이 기생충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알아냄으로써 프랑스 실크업계도 구했다. 탄저병과 광견병 등 다른 질병에 대한 백신을 계속 개발해 인류에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 현대 극지 탐험의 아버지 ‘난센’ - 노르웨이인 프리드쇼프 난센(1861~1930)은 1888년 동토의 그린란드를 두 달 동안 횡단하는 위대한 도전에 성공했다. 영하 45도의 혹독한 기후와 해발 2700m의 험준한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그는 빙하기의 특성과 원인에 관해 중요한 식견을 얻었다. 몸을 따뜻하게 하려면 두껍고 큰 모피 대신 옷을 여러 벌 겹쳐 입는 개념도 처음 알아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거리를 가는 방법도 고안했다. 스키 돛이라고 해 강한 바람을 이용해 텐트를 이동하는 기발한 방법도 개발해 미래의 많은 극지원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난센을 현대 극지 탐험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이유다. 그는 북극 얼음을 실어가는 해류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 지구를 움직인 남자 ‘베게너’ - 알프레드 베게너(1880~1930)는 그린란드 원정으로 대륙이동성을 증명하려 했다. 그는 남아프리카의 카루암석층이 브라질의 산타카타리나 암석층과 똑같고, 열대 기후 지역의 양치식물 화석이 북극 스피츠베르겐 화석과 같음을 알아냈다. 이 지역들이 한 때 연결되어 있다가 대륙이 쪼개져 움직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들이었다. 1915년에 그는 <대륙과 대양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약 2억5000만년 전에 커다란 하나의 대륙괴(우어콘티넨트, Urkontinent)가 갈라져 오늘날의 대륙을 형성했다”며 대륙이동설의 물리적 증거를 처음 제시했다. 처음에는 유사과학으로 치부되다가 1960년대에야 대양저 확장에 대한 증거로 인정받게 된다. 

 

* 우주선(宇宙線)을 발견한 ‘빅토르 헤스’ -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방사선이 지구의 암석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었다. 빅토르 헤스(1883~1964)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1912년 8월7일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 결과 고도에 따라 방사선 수치가 다음을 발견했다. 특히 5300m 상공에서는 해발 높이의 무려 세배에 달하는 방사선이 검출됨을 확인하고는, 방사선이 우주에서 온다는 것을 증명했다. 특히 방사선이 일식 때 줄어들지 않는 것을 보고 이것이 태양도 아니고 먼 외우주에서 온 게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주선(cosmic rays)’을 발견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우주선이 멀리 있는 별들이 폭발하면서 나오는 것일 수 있다고 추론한다.

 

* 지구 마지막 미 탐험지 ‘다리엔 갭’ - 알래스카부터 남아메리카 케이프 혼까지 4만 8000km 길이의 세계 최장 도로 ‘팬마메리칸하이위이’. 그런데 딱 한 군데 지역이 끊겨 있다. 파나마와 콜롬비아 사이의 ‘다리엔 갭’이다. 엘 타폰(마개)라고 불리는 이 곳은 좌우 100km, 상하 160km의 엄청난 정글이다. 2000여 명의 원주민 외에는 누구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위험지역이다. 덕분에 이곳은 지구상에서 과학적으로 가장 탐색이 덜 된 지역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저자는 이곳을 “발견되지 않은 동식물이 가득한 보물 금고이자 질병과 싸울 치료약을 가진 것”이라고 평가한다. 북미와 남미를 중간에 잘라놓음으로써 삼림벌채와 질병 확산을 예방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 가장 버티기 힘든 극지탐험 ‘겨울 남극 횡단’ - 탐험가들은 한 겨울에 남극을 건너는 것이 ‘마지막 남은 진정한 극지 탐험’이라고 말한다. 거의 끝없는 어둠 속에서 영하 90도까지 떨어지는 길을 3200km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 이상으로 팀원들끼리 감당해야 할 ‘정신적 고립감’이라고 한다. 탐험가들 대부분이 얼음사막을 가로질러 다 건너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최근에 과학계는 고립된 환경에서의 인간의 몸과 정신 모두를 연구한다. 예를 들어 화성 탐사를 준비 중인 ‘화성 500 프로젝트’팀은 6명의 참가자를 모스크바의 창문 없는 집에 500일 동안 거두어 생활하게 하고, 화성의 지형과 유사한 곳에 화성사막연구기지를 만들어 고립된 생활을 체험케 한다.

 

* ‘익스트림 에베레스트’ - 2007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익스트림 에베레스트 탐사대가 구성되었다. 첫 탐사에는 무려 200명이 동원되었다. 저산소 상태에서 특별히 잘 버티는 사람들의 특성을 알아내는 것이 한 과제였다. 두 차례 탐사 결과 저산소증은 혈중 산소량보다 혈중 산화질소(NO)와 관련 있음이 밝혀졌다. 등반을 도운 셰르파의 혈액에 NO 수치가 훨씬 높았고 그들의 심장은 더 빠르게 박동했다. 그들의 적혈구 숫자도 평균적인 저지대인보다 더 적었는데 그럼에도 더 많은 산소를 운반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후 제약사들은 저산소증을 치료하는 새로운 약을 개발하기 위해 익스트림 에베레스트 연구원들과 협력 중이다.

 

* 탐사불가능한 세계 최대 수정동굴 - 멕시코 북서부 치와와 지역에 위치한 수정동굴은 2층 높이에 축구 경기장 크기를 자랑한다. 1m너비에 높이는 15m에 달하는 거대한 석고 기둥 대부분이 수정이다. 페뇰레스라는 이 지역 광산업체가 이 동굴을 1910년에 처음 발견하기 전까지 누구도 몰랐던 숨겨진 보고였다. 지금도 이곳 탐사는 불가능하다. 섭씨 60도의 고온과 90%가 넘는 습도 때문에 지구상에서 가장 버티기 힘든 곳 중의 하나다. 특별제작한 슈트와 얼음을 가득 채운 배낭도 아주 잠깐 유효할 뿐이다. 회사 측은 이곳이 극단적인 환경과 접근하기 어려운 지형 탓에 관광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이 동굴을 그대로 천혜의 자연지역으로 조용히 놔두고 있다.

 

*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하고 입증한 사람들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지구가 평평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했다.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그러했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 보다는 “신이 세상을 구형으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직감이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과학적 근거를 처음 제시한 사람은 아리스토렐레스였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밤하늘 별자리가 달라진다는 사실, 월식 때 달에 비치는 지구 그림자가 원형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둥근 지구’를 주장했다. 훨씬 후에 포루투갈의 항해사 마젤란(1480~1521)이 향신료를 얻기 위해 서해 경로를 찾는다는 목적으로 1519년 270명의 선원과 함께 대서양 횡단에 나섰다가 자신은 도중에 사망했지만 결국 세상이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 헛수고로 끝난 ‘플랭클린의 자북극 탐험’ - 존 프랭클린(1786~1847)은 북극을 통해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 북서해로를 찾으려 북극 원정에 나섰다. 지구 자기장이 항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알아내려 자북(磁北)에 도착해 자기효과를 9개월 동안 관측하는 임무도 맡았다. 하지만 탐사는 비극으로 끝났다. 배의 잔해와 시체를 먹은 흔적들이 수십 년 후에 발견되었다. 연구소의 증거가 함께 발견된 덕에 프랭클린이 자북을 찾아내 자기 효과를 분석하는 과학적 임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생명을 바친 그의 연구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얄궂게도 이제는 지구의 자심이 무작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항해에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된 것이다.

 

* ‘챌린저’ 이름을 탄생시킨 최초의 해양학 탐사 - 스코틀랜드 해양 동물학자 찰스 와이빌 톰슨(1830~1882)은 여러 깊이의 바다를 조사하기 위한 세계일주 탐사에 나섰다. 표면에서부터 해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양 생물체 표본을 모으고 견본을 분석해 세계 최초의 해양탐사 역사로 기록된 의미있는 항해였다. 그들이 1872년 타고 떠난 배가 챌린저호였다. 1000일 동안 이뤄진 그 항해 이후 많은 새로운 도전에 챌린저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한다. 북극 아래로 잠수하는 기구에 글로마챌린저호라는 이름이 붙었고, 우주 왕복선 이름도 챌린저호로 정해졌다. 인류의 무한한 도전을 상징하는 이름이 된 것이다.

 

* ‘가장 깊은 바다 속으로’ 잠수구의 발전사 - 1934년 8월15일에 윌리엄 비브(1877~1962)는 오티스 바턴(1899~1992)와 함께 너비 1.4m의 철제 공 모양 잠수구에 몸을 실었다. 3.8cm 두께의 벽에 7.5cm 두께의 창문을 둔 용융 석면체 구(球)였다. 배 표면에는 케이블이 고정되어 이 줄을 통해 깊이를 조절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날 해수면에서 923m 아래 수면까지 내려갔다. 역사상 가장 깊은 바다로 내려간 것이다. 이제까지 최대 기록은 800여 m였다. 비록 몇 분 밖에 머무르지 못했지만 그들은 한상적인 심해 생명체 무리들을 생생하게 묘사해 수면의 과학자들에게 알려주었다. 비브는 이날 목격한 사실을 <반 마일 아래>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 해양 탐사에 큰 도움을 주었다. 

 

*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 - 1957년 10월5일은 ‘우주 시대’가 시작된 날이다. 소련이 쏘아올린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지구 궤도에 도달한 것이다. 당시 미국도 익스플러로 1호를 개발 중이었지만 소련보다 늦어 1958년 1월31일에 발사되었다. 이에 자극받은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국항공우주법에 서명했고, 이것이 뒷날 NASA를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소련의 이런 성과는 로켓 공학자 세르게이 코롤료프(1907~1966)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설계한 혁신적인 R-7 ICBMs는 이후 ‘소유즈 로켓’으로 발전해 오늘날까지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비행사들을 국제우주정거장까지 실어나르는데 사용되고 있다. 그는 생전에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유명하다. 워낙에 소련 우주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이었기에 그의 존재를 외부에는 철저히 감춘 것이다. 

 

* 우주인들이 존경하는 우주인 ‘유리 가가린’ - 1961년 4월 12일. 러시아가 쏘아올린 보스토크 R-7 로켓 꼭대기의 캡슐에 탑승한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마침내 우주에 나가는 인류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항공학도로 1959년 소련 공군 대위 신분으로 우주비행사로 차출된 그는 지구 궤도를 완전히 한 바퀴 돌며 108분 동안 우주를 경험하고는 6100m 상공에서 우주선을 탈출해 낙하선을 타고 자구로 귀환했다. 이후 소련의 영웅이 된 그는 1968년 3월27일 정기 훈련비행에서 전투기 충돌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만다. 4월 12일은 국제유인우주비행의 날로 추모된다. 지금도 가가린의 로켓이 발사되었던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로 미국과 러시아 우주비행사들이 찾는다. 가가린이 비행 전 했던, 차에서 내려 오른쪽 뒷바퀴에 소변을 보는 행동도 따라하며 그를 기린다.

 

* 영광과 비운의 역사 ‘우주왕복선’ - 우주왕복선은 인류의 첫 번째 재사용 가능 로켓이다. 유리 가가린이 최초의 우주인이 된 지 20년만인 1981년 4월12일에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첫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우주를 향해 발사되었다. 55시간 동안 36번이나 지구 궤도를 돌고 에드워즈 공군기지에 무사히 착륙함으로써 바야흐로 우주왕복선의 시대가 열렸다. 우주왕복선에는 컬럼비아호 챌린저호 디스커버리호 아틀란티스호 인데버호 등 5대 기체가 사용되었다. 첫 발사가 컬럼비아호였고 아틀란티스호가 2011년 7월21일 마지막이었다. 왕복선은 목성과 금성 연구 등 다양하고 가치있는 우주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하지만 1986년 1월28일 챌린저호가 발사 73초만에 허공에서 폭발한데 이어 2003년 2월1일에는 컬럼비아호가 지구궤도로 재진입하는 과정에서 폭발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비운도 있었다.

 

* 인류의 꿈 화성 탐사 - 인류가 달 다음으로 개척하려는 대상이 화성이다. 하지만 화성은 바위 투성이에다 건조하고 엄청나게 춥기까지 하다. 온도 차가 커 섭씨 30도에서 영하 140도 까지 오르내린다. 거대한 먼지폭풍이 행성 전체를 휘감기도 해 탐사 자체가 어려운 곳이다. 이곳을 탐사하기 위해 발사된 것이 큐리오시티 로버다. 자동차 크기에 시속 144km까지 움직일 수 있으며 무게는 899kg에 수많은 카메라와 특수 분석 장치들을 장착했다. 화성에 물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토양 분석, 한 때는 산소가 더 많았을 것이란 연구결과 등이 이제까지의 수확이다. 최근에는 탐사 착륙선 인사이트호가 화성의 깊은 안쪽을 조사하고 있다. 조만간 화성 유인탐사 임무도 시행되어 생명체를 찾아낼 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기대한다. 

 

* 태양의 비밀을 벗겨라 - 태양은 뜨거운 기체 덩어리다. 그런데 태양을 둘러싼 수수께기가 둘 있다. 하나는 태양의 대기인 코로나의 온도가 섭씨 300만 도로 오히려 태양 표면(겨우 섭씨 6000도) 보다 월등히 뜨겁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태양 표면의 폭발이 어떻게 일어나느냐는 것이다. 이것을 알려면 태양애 가보는 수 밖에 없다. 2018년에 발사된 NASA의 태양 탐사선 ‘파커’는 뜨거운 온도를 견딜 수 있도록 특수설계되었다. 외부 온도가 1377도에 이르러라도 내부는 섭씨 21도가 유지되도록 만들어졌다, 파커의 임무가 성공한다면 태양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은 물론 태양으로부터 발생하는 여러 재난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달에 우주정거장을 만들어라 - 유럽우주국의 요한 디트리히 뵈르너 국장은 전 세계 우주국에서 전문가들을 모아 달에 영구적인 국제우주정거장을 만들려 한다. 인류가 달에 큰 가치를 두는 첫 번째 이유는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달의 반대편은 우주의 더 깊은 것을 관찰할 수 있도록 망원경을 설치하기에 더 없이 좋다. 결정적인 이유는 달이 화성으로 가는 유인탐사 임무를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자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달에 발을 내딛었던 사람은 12명에 불과하다. 저자는 “앞으로 10년 만에 인간이 다시 달 표면에서 인류에게 커다란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참고로 중국도 2019년 1월에 창어4호 탐사선을 지구 반대편 달로 보내 각종 데이터를 수집해갔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