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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나무를 깎는 순간, 나는 OOO이 되었다!

[이희승 기자의 수확행] 우드 카빙에 빠지며 느끼는 힐링

입력 2021-11-23 18:30 | 신문게재 2021-11-2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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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제품 옆 면에 각인을 새기는 것도 직접 만든 기쁨이다. 나는 이니셜과 연도를 기록했다.(사진=티암트리제공)

 

인간은 원래 자신이 하지못하거나 소유하지 못하는 것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모양이다. 우연히 알게 된 카빙(Carving)의 세계가 그랬다. 

과일을 화려하게 깎아 잔치날 올리는 것으로 처음 만난 카빙의 세계는 역시나 사람이 할 짓(?)이 못됐다. 약 7년 전 시아버지의 칠순상에 올리려고 알아본 수박 카빙은 사람 머리통 만한 과일보다 스무 배는 더 비쌌다. 하지만 두꺼운 초록색 껍데기 사이로 붉은 과육이 장수를 기원하는 한자 ‘수’로 그려진 수박을 본 사람이라면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그래도 결국 주문하지는 못했다. 나에겐 독일 여행길에서 사온 작고 날카로운 과도가 있었고 한글로 ‘축 생일’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치기어림도 있었다. 그렇게 도전했다가 실패한 다섯 통의 수박을 화채로 만든 후 손만 깊게 베인 채 잔치를 치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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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스케치를 하는 것만으로 자연과 한 몸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 건, 그간 너무 스트레스에 시달려서 인 걸로. (사진=이희승기자

 

그 이후 눈과 귀를 닫았던 카빙의 세계는 발리에서 펼쳐졌다. 알고 보니 인도네시아 티크 나무는 습기에 강하고 단단해 가구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손재주가 남다른 주민들은 탁자와 의자 심지어 그릇에까지 섬세한 그림을 새겼고 이 가구들은 미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과거 1980년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좀 산다하는 집에서나 티테이블에 포도나 꽃이 깊게 새겨진 가구를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카빙이 된 가구가 사치품으로 통용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엔 그보다 더 손재주가 넘쳐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장인들이 만든 이 가구들은 장미목이나 오동나무 등에 손으로 하나하나 부귀영화를 비는 공작새, 모란, 학, 소나무 등을 새긴 것이 공통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빌트인으로 지어진 집들이 많아지면서 ‘부피만 크고 무거워 처치곤란인 가구’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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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과 엇결을 표시한 나무. (사진=이희승기자)

 

하지만 테이블 웨어나 일상적인 가구 조각에 쓰이는 우드 카빙(Wood Carving)의 세계는 다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되던 지난 해부터 불타오르기 시작한 우드 카빙의  원데이 클라스는 예약 없이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 두번 배우고는 나무의 매력에 빠져 정규반을 등록하고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면 집에서 나무를 만지며 힐링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다. 

 

나무 공방과 목공을 전문으로 하는 티암트리의 대표는 “단순히 조각도 구입에 끝나지 않고 집에서 즐기기 위해 작업대와 고정쇠인 클램프 등을 구매하는 분들도 제법 된다”고 전했다. 손으로 조각하는 ‘맛’에 빠지면 하루종일 나무만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게 우드 카빙 입문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처음엔 초급자에 해당하는 버터 나이프나 도마를 만들다가 캠핑의자와 다도 테이블까지 넘어가면 헤어나올 수 없는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처음으로 만든 콩접시는 손바닥 만한 크기로 우연히 보게 된 한장의 사진에서 시작됐다. 도토리 모양을 한 접시에 일일이 새겨진 문양이 마음을 흔들었던 것. 누가 봐도 투박하지만 당장이라도 나무를 깎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수업 시간 15분 전 도착하자 내가 고른 호두나무 원목이 앙증맞게 놓여있었다. 고작 해봐야 가로세로 20㎝ 정도. 실망스러운 크기였다. 분명 수업시간은 3시간이라고 들었는데 30분이면 끝날 것 같았다. 내 옆의 수강생은 체리목으로 숟가락을 만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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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으로 완성한 나무를 잘라주는 건 스승님의 몫. 무슨 취미든 안전이 최우선이니 베테랑에게 맡기고 욕심내지 말 것. (사진=이희승기자)

 

선생님은 나에게 만들고 싶은 모양을 직접 나무에 그려보라고 했다. 정사각형 나무에 연필을 갖다 대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 졌다. 긴 시간 건조와 잘려짐의 시간을 견딘 나무에 흑연이 닿는 느낌은 애초에 만나야 할 운명이 서로 만난 듯 익숙했다. 조각도가 닿으면 그림이 지워지기 때문에 밑그림은 최대한 진하게 그리는 게 관건이다. 

완성했으면 안쪽에 2㎜ 정도의 선을 추가해 그려놓는다. 접시를 만들려면 안쪽을 하나하나 파야 하는데 안쪽 선은 내용물이 넘치지 않게 하는 ‘벽’ 같은 존재다. 부부싸움으로 치자면 결코 열지 말아야 할 ‘과거의 애인’ 혹은 ‘너네 집안…’으로 시작되는 상처되는 말이 가득 찬 판도라의 상자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모양이 잡히면 순결(칼로 잘 깎이는 방향)과 엇결(나뭇결이 일어나는 방향)을 체크해야 한다. 결의 모양을 보면 금방 감이 오는데 만약 문양이 세로로 되어 있다면 그 방향이 순결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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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건 단순히 칼만 있는게 아님을 우드카빙을 하며 알았다. 송곳과 끌,작두 수준의 톱까지 다양한 도구가 사용된다.(사진=이희승기자)

 

당연한 이야기지만 순결 방향으로 클램프를 고정해 깎는데 속도가 더 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절대 손목을 사용하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수업 전까지만 해도 팔 근육 대부분을 스트레칭하며 준비를 했는데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 알고 보니 카빙은 손보다 ‘몸’을 사용해야 하는 예술이었다. 조각도의 몸 부분을 새끼 손가락에 깍지끼워 세운 뒤 손은 그저 거들 뿐 몸의 힘을 사용해 밀어주는 게 관건이다. 결론만 먼저 말하자면 나는 이 수업 후 꼬박 이틀을 앓아 누웠다. 평소 안 쓰는 근육을 사용하기도 했거니와 선생님이 ‘어깨에 대고 하면 편하다’라는 말에 계속 그 부분에 조각도를 대고 있었더니 보라색 멍이 진하게 들 정도였다.

어쨌거나 1시간이면 끝날 법한 카빙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처음엔 나무결을 깎는 거였지만 점차 더 파고들어야 모양이 나왔으므로 엇결로 방향을 틀어 작업을 하자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하지만 힘을 줘 밀어냈을 때 둥글게 말려 나오는 나무의 느낌은 그 찝찝함을 개운함으로 덮었다. 내가 선택한 호두목은 깎으면 깎을수록 점점 단단해졌지만 그 문양만큼은 경이로웠다. 

나중에 선생님이 방향을 잡아주기 위해 조각도를 몇번 시도하시더니 “이 나무의 단단함은 초보자가 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 그 말은 오일만 잘 바르면 뒤틀림이나 습기에 강하다는 말이기도 하니 기뻐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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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오일을 듬뿍 바른 후 키친 타월로 잘 닦으면 완성. 직사광선만 피하면 오래 쓸 수 있다. (사진=이희승기자)

 

도토리 문양인 만큼 아래는 조각도의 문양을 그대로 살리고 윗 부분은 매끈하게 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어느 정도 파임이 생기면 네모진 부분을 잘라준다. 그 다음의 단계는 사포질이다. 기계와 손을 번갈아 가며 거친 부분을 갈고 천연 오일을 발라 건조시킨다. 원하는 사람은 각인도 가능한데 얇은 인두로 나만의 이니셜을 직접 새기는 방식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나무 수급이 쉽지 않아 목수들 사이에서도 질 좋은 나무를 확보하는 것이 또다른 능력이라고 한다. 브라질, 칠레, 뉴질랜드를 비롯한 원목 강국들이 수출하던 나무의 양이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도리어 일상소품과 가구, 더 나아가 건축과 인테리어 마감재 등 전 분야에까지 나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상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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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에 걸쳐 완성한 나의 첫 콩접시.(사진=티암트리제공)

  

국내에도 질 좋은 나무가 많이 나오지만 그만큼 가격이 올랐고 환경적인 이슈가 더해져 원활한 유통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의 첫 작품이 주는 기쁨은 크다. 호두나무로 태어나 앞으로 도토리 문양으로 살아갈 이 접시를 고이 모실 생각은 없다. 손이 많이 닿아 반질반질 윤이 날 때까지 쓰려고 가장 많이 들고나는 키 지갑을 올려놨다. 다음번엔 뭘 만들까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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