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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느끼는 능력

입력 2022-03-07 14:31 | 신문게재 2022-03-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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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소년 범죄를 다룬 넷플릭스 시리즈물 ‘소년심판’이 화제다. 극중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들을 위탁받아 돌보는 시설의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상처가 많은 아이들은 더 이상 크지 못하고 그 안에 갇혀서 그냥 시간만 흐른다’고. 그렇게 성인이 돼도 내면엔 여전히 치료되지 않은 상처를 지닌 채 남아있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종종 잘 이해되지 않는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우리를 당황시키곤 한다. 

 

SBS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주인공 국연수가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장면이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그토록 소중한 남자친구를 아무런 말도 없이 ‘버린다’. 실은 가난이라는 자신의 지난한 고통을 도저히 같이 공유할 수 없어서 내린 마음 아픈 결정이다. 하지만 가난이라는 경험 자체가 이별의 진짜 이유는 아니다. 이는 국연수 내면에 있는 아이의 아픔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어떤 현실은 지독하게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것이 비극으로 방점 찍히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살면서 겪게 되는 아픔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려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느끼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자연스러운 능력이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다.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다. 이들에게 느낌이나 감정을 물으면 대부분은 생각이나 의견을 말한다. “그건 아니라고 느꼈다” “부모님은 평범하고 성실한 분이다”라는 식이다. 모든 느낌을 좋다 싫다는 두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고 심지어 아무 느낌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느끼는 게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기도 한다. 전문직 고학력자라고 다를 바 없다.

 

느끼는 능력을 상실해가는 데는 이를 단순히 감상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편견이 작용한다. 객관성과 타당성, 논리적 명쾌함이 강조되는 요즘 사회에서 모호하고 미묘한 느낌이나 감정을 언급하는 것은 논리적이며 유치한 것으로 간주돼 억눌리거나 배제되기 일쑤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내밀지 않게 되는 법이라서 속상함, 억울함을 들어주지 않으면 이를 견디기 위해 자기 느낌들을 마비시키게 된다. 드라마 속 정연수나 비행에 연루된 청소년처럼 이들의 태연한 행동은 실제로는 너무 두려워서 회피하려는 무의식적인 선택일 경우가 많다.

 

자신의 느낌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는 편향된 생각과도 관련이 있다. 부모님이 무섭지만  부모님을 나쁘게 말하는 거라는 생각에 머뭇거리고 그럼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엄격한 분”으로 바꿔버린다. 자상한 남편이어도 나는 그런 자상함이 귀찮을 수 있고 동생이 버릇없이 굴어도 나는 마냥 귀여울 수 있다. 느낌은 맞고 틀림이 없다. 좋은 사람도 내 맘이 안동하면 별로인 거고 음식이 식었어도 잘 먹었으면 맛있는 거다. 좋은 사람은 싫어하면 안 되고 식은 음식을 맛있어 한다고 틀린 게 아니다. 느낌이 어떠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이다.

 

살면서 좋은 것만 느끼며 지낼 수 있을까. 가능하지 않은 것에 손을 뻗는 것, 그것이 비극이지 고통은 비극이 아니다. 눈 앞의 고통과 두려움에 겁먹지 않으면 좋겠다. 불행이라고 속지 않으면 좋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스스로의 느낌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며 집중하면 좋겠다. 상처는 아픔을 느껴야 치료할 수 있다. 아플 수 있는 자만이 온전한 자신이 되어 진정한 봄의 향기도 누릴 수 있다.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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