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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그림책 매거진 ‘라키비움J’ 발행인 전은주 작가 “요물 ‘그림책’과 함께 아이도, 어른도 즐거운 덕후 놀이터 ”

[허미선 기자의 Culture-scape]

입력 2022-04-08 18:00 | 신문게재 2022-04-0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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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주 작가
전은주 작가이자 ‘라키비움J’ 발행인(사진=이철준 기자)

 

“교육 얘기도 아니고 그림책에 대한 잡지예요. 상근 기자 한명 없이 순수 독자들이 만들어가는 잡지로 그림책들이 가진 시각에 대해 이야기하죠. 그들을 다양하게 보고 즐기고 나누면서 그림책이 되게 재밌다는 걸 전달해요. ‘그림책으로 여전히 재밌게 노는 사람들이 여기 있어’ 그렇게 알리고 싶었죠. 아이마저도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줄글책으로 넘어가잖아요. 어른이든 아이든 그림책이 얼마나 재밌는지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1년에 두 번씩, 이제 5호를 발행한 그림책 전문 잡지 ‘라키비움J’의 발행인 전은주 제이그림책포럼 대표는 “독자들이 만들고 독자들이 사줘서 제작비를 충당하는 잡지”라며 “판매부수는 적지만 타깃팅이 확실한 잡지”라고 소개했다. 스스로를 ‘그림책 덕후’라고 표현한 전은주 대표는 “덕질의 즐거움을 통해 더 많은 ‘그림책 덕후’를 만들어내는 게 목표”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작가들한테는 당신들이 하는대로 다 받아주는 독자들이 있으니 ‘힘내’라고, 또 한편으로는 ‘그러니 잘해’라고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그림책 작가들은 독자들, 특히 어린이 독자들을 무서워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죠.”

제목인 라키비움(Larchiveum)은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의 합성어로 미래 도서관의 지향점을, ‘제이’(J)는 저널(Journal), 여행(Journey), 점프(Jump), 조이풀(Joyful) 그리고 제이(提耳, 귀에 속삭이며 가르치거나 타이름)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순수 독자들이 만들어가는 덕후 놀이터 ‘라키비움J’

전은주 작가6
전은주 작가이자 ‘라키비움J’ 발행인(사진=이철준 기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일러스트레이션 부문을 수상한) 이수지 작가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인터뷰를 했어요. 질문이 이랬어요. ‘서울대 서양학과를 나왔는데 잘 안됐나 봐요?’ ‘직접 그리신 거죠?’…그게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림책이고 그림책 작가죠. 저만해도 애를 낳고 직접 그림책을 읽어주기 전까지는 그랬으니까요.”

삼남매의 엄마로 아이들에게 직접 읽어주기 전까지는 스스로도 “그림책과 동화책 구분도 제대로 안됐다”는 그는 “아이를 낳기 전에 접한 프랑수아 플라스의 ‘마지막 거인’을 감명깊게 봤으면서도 그게 ‘그림책’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특이한 단편소설 정도로 생각했죠. 동화책은 그림의 역할이 이야기의 이해를 돕는 거라면 그림책은 그림들이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있어요. 그 서사들이 서로 이야기를 돕기도 하고 반대되기도 하죠. 그때의 저같은 사람들에게 그림책이 얼마나 재밌고 새로운 장르인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끼리 놀면서 그림책의 맛을 보여주고 싶어 창간했죠.”

그 스스로도 ‘웰컴 투 그림책 육아’ ‘영어 그림책의 기적’ ‘초간단 생활놀이’ ‘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 등의 작가이자 그림책협회 부회장이다. 지금은 1인 출판사로 잡지를 발행하는 제이그림책포럼과 그림책 및 단행본을 출간하는 블루밍제이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초창기에는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2018년 12월 19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첫호인 ‘라비키움J 레드’가 나왔어요. 처음엔 이걸 누가 살까 싶었어요. 800부를 찍었죠. 사재를 털어 제작비를 마련하면서 다 안팔리더라도 꾸준히 내보자 했어요. ‘얼마까지 손해가 나면 접겠다’ 정하고 그때까지는 판매 부수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결심했죠.”

엑셀도 ‘리키비움J’를 하면서 처음 접하고 배웠다. 그는 “포장박스 70개를 구비해두고 혼자서 수작업으로 싸서 발송할 생각이었는데 주문창을 열자마자 200부가 팔렸다”며 “크리스마스라 택배물량이 늘면서 포장박스 구하는 데도 애를 먹고 배송실수도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전은주 작가1
전은주 작가이자 ‘라키비움J’ 발행인(사진=이철준 기자)

 

“2호부터는 부수를 늘려 1500부, 4호는 2300부를 발행했어요. 3호부터는 포장과 배송을 전문 업체에 맡기고 최근호인 5호는 3쇄(3000부, 2000부, 2000부)까지 찍었죠.”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판매된 1~4호는 발행될 때마다 3, 4주만에 완판됐고 제작비를 훌쩍 뛰어넘는 매출을 올렸다. 급기야 인터넷서점에 입점한 지난해 겨울에는 ‘알라딘’의 ‘오늘의 책’ 후보에 오르기에 이르렀다.

“잡지가 ‘오늘의 책’ 후보가 된 건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큰 출판사나 대단한 개인이 발행하는 잡지도 아니잖아요. 저와 가정주부이자 그림책 덕후인 6명이 모여서 만든 잡지였으니까요. 알라딘 쪽에서도 ‘뭔데 간밤에 주문이 이렇게 들어왔지’ 했데요.”

전은주 대표를 필두로 초등학교 교사 1명과 전업주부 5명으로 꾸려진 필진들은 육아가 마무리는 되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모여 저마다의 전문 분야를 살린 기사를 기획하고 작성했다. 재능 넘치는 독자들이 내지는 물론 표지 일러스트까지 도맡는, 그야말로 “순수 독자들이 만들어가는 잡지”는 “3호부터 광고면을 딱 12면만 받고 있는데 24시간만에 다 찰” 정도로 이상한 힘을 발휘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그림책, 시대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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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주 작가이자 ‘라키비움J’ 발행인(사진=이철준 기자)
“전래동화는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왔어요. ‘신데렐라’와 ‘콩쥐팥쥐’ 이야기가 비슷하잖아요. 사회를 유지시켜가는 데 핵심 가치를 전달하는 이야기 형태의 학교죠.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들은 할배가 아닌, 일하러 나간 엄마아빠를 대신한 할매들이에요. 그렇게 지혜는 육아를 담당하며 밥을 ‘짓고’ 이야기를 ‘짓고’ 글을 ‘짓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 내려왔죠.”

전 대표는 “루브르박물관에 그리스로마신화랑 성경을 알고 들어가면 더 많이 보인다고 하듯 마더 구스(Mother Goose) 이야기를 알고 나면 달라지는 문화코드들이 많다”며 “험피덤피, 트위들디&트위들덤 등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캐릭터들은 전부 마더구스 주인공들이다. ‘앨리스’ 뿐 아니라 앤서니 브라운 등 많은 그림책들에 마더 구스 코드들이 담겼다”고 부연했다.

“한국어의 ‘짓다’처럼 영어에 ‘스핀’(Spin)을 쓰는 ‘물레 짓는 여자’라는 단어는 일을 하느라 결혼 못한 노처녀에 대한 멸칭으로 바뀌었어요. 이렇게 단어나 이야기 속에 든 가치관들과 그들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리텔링하고 싶어요.”

이렇게 바람을 전한 전은주 대표는 “귀족의 가치관을 담은 샤를 페로의 ‘빨간 모자’, 비스마르크시절 독일의 형태를 만드는 데 중요했던 그림형제의 ‘빨간 모자’ 등은 교육가이자 정치가인 사람들에 의해 사회에 필요한 가치관들을 전달하기 위해 이용돼 왔다”며 “그렇게 이용된 이야기들을 리텔링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고 전했다.

“그림책 이미지에는 등장한 시기의 사회 분위기, 시각들이 반영돼 있죠. 샤를 페로의 ‘빨간 모자’에서는 소녀가 늑대에 잡아먹히고 끝나지만 100년 후 그림형제 버전에서는 나무꾼이 와서 구해줘요. 그리고 그 100년 후에는 엄마의 심부름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여 늑대를 처치하죠.”

이어 전 대표는 “샤를 페로가 채록한 이야기들의 특징은 마지막에 교훈이 있다는 것”이라며 “ ‘가장 정중한 신사가 가장 위험한 늑대란 걸 네가 어떻게 알았으랴’ 식으로 낯선 사람들과 말을 섞지 말라고 가르치기 위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이미 계약을 마치고 출판을 준비 중인 ‘용은 왜 공주만 잡아갈까?’는 영국에서 용 이야기가 나오던 시대에 성립된 가부장제적 시각을 담고 있어요. 여자에게는 용같은 강인함, 공주같은 면 등 다양한 속성들을 가지고 있죠. ‘용이 공주를 잡아갔다’는 의미는 그 여러 가지 속성 중 여성스럽고 순종적인 ‘공주’의 속성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봉인시켰다는 거예요. ‘슈렉’에서 동키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라고 상자를 열었을 때 등장하는 붉은 용도 같은 맥락이죠.”


◇거절당해도 요물 ‘그림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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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주 작가이자 ‘라키비움J’ 발행인(사진=이철준 기자)

 

“그림책은 좀 요물이라서 사람을 굉장히 빨리 오픈시키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직관적으로 내밀한 감정들을 건드리죠. 그림책은 유난히 빈틈이 많아서 보는 사람에 따라 완전 다른 책이 되죠.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하게 되거든요.”

처음 ‘얼마까지 손해가 나면 접겠다’던 그의 목표는 “10호까지는 묻고 따지지 말고 내자”로 바뀌었다. 서너 군데 출판사에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거절만 당하는 책들을 내기 위해 만든 단행본 브랜드 블루밍제이의 첫 책인 루시아노 로사노의 ‘파리의 작은 인어’ 역시 순항 중이다.

“실제로 파리 퐁피두 광장에 있는 두개의 분수 중 하나에 있는 꼬마 인어가 한번도 가본적 없는 바다를 찾아가는 이야기예요. 튈르리 정원, 한니발 동상, 나폴레옹, 인공해변 플라주 등 실제 공간들과 인물들로 이어지는 이야기죠. 아이들은 꼬마 인어가 바다로 가는 여정이 재밌고 어른들은 ‘머메이드’가 아닌 ‘세이렌’, 퐁피두 광장의 혁명 등 숨은 사회, 의미 등을 찾는 재미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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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주 작가이자 ‘라키비움J’ 발행인(사진=이철준 기자)
그렇게 아이템 선정 기준은 철저하게 ‘재미’다. 그는 “잡지에 언급된 모든 책은 아이들이 읽어서도 재밌는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 안데르센 상을 탄 이수지, ‘연이와 버들도령’ 등의 백희나 등 해외에서 인정받는 우리 그림책 작가들은 한국에서도 잘 되고 어른과 아이들 모두가 좋아해요. 모든 그림책을 어린이 대상으로 쓸 필요는 없지만 좋은 그림책은 어린이도 좋아하죠. 그렇게 아이들이 읽어도 즐거운 그림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많이 팔리니까요. 그렇게 그림책 시장의 틀이 커지면 좋겠고 그에 ‘라키비움J’가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파리의 작은 인어’를 시작으로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담은 ‘용은 왜 공주만 잡아갈까?’를 비롯해 그림책 속 클래식 음악, 일상으로 들어온 윌리엄 모리스와 앤서니 브라운의 공통점 찾기, 그림책을 품은 그릇이야기 등 무궁무진한 아이템들이 잡지의 기획기사로, 단행본으로 준비되고 있다.

“우리 필진들 중에는 ‘쓸고퀄’이 많아요. ‘라키비움J’ 필진으로 음악교육 박사이자 전업주부가 있어요. 그 분이 극히 일부의 음표나 악보로 표현된 클래식 음악을 찾아내더라고요. 예를 들어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연주된 곡 등으로 연습을 하던 두더지가 전쟁까지 멈추게 한 바이올린 연주(데이비드 맥파일의 ‘Mole Music’)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라고 읽어내죠.”

더불어 “저희 필진 중에 그릇광이 있는데 그림책이 반영된 그릇들을 찾아냈다”며 “로얄 코펜하겐 생일접시의 문양은 그림책 원서다. 그림 전체가 아니라 일부를 반영하고 있다. 코렐의 스누피 에디션이나 질 바클렘 그림책들로 꾸려 최근 재론칭한 웨지우드 블램블리 헷지 시리즈 등이 그 예”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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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주 작가이자 ‘라키비움J’ 발행인(사진=이철준 기자)

 

“그릇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림책 소스가 일상에 있음을 발견하는 게 중요한 거죠. ‘라키비움J’ 기획기사와 단행본들로 그런 걸 샘플링해주고 싶어요. 스스로가 좋아하는 시선을 가지고 찾아보고 연결시켜 얘기하는 과정이요. 그런 걸 어떤 출판사가 책으로 내주겠어요. 남들이 안내주는 책들을 내고 싶어요. 사회 소수자성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책을 눈높이에 잘 맞춰서 많이 팔리는 책을 낼 거예요. 여성들에 삶에 포커싱하는 책이나 자기계발서 및 실용서 등이요.

 

‘라키비움J’에 대해서는 정확한 시기에 발행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려자 한다. 15명은 있어야 가능한 일을 해내는 우리 필진들 고생이 너무 많다. 그런 필진들의 원고료를 더 많이 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며 “우리 필진들이 그림책계에서 자신의 전문 영역에 맞는 역할을, 다방면으로 해주길 바란다”고 말을 보탰다.


“지금의 꿈은 편집장을 상근직으로 고용하는 것과 돈 주고 살만한 콘텐츠를 만드는 거예요. ‘라키비움J’만 발행하고 팔기 위해 회사를 차렸는데 이제는 어엿한 1인 출판사가 돼 버렸어요. 브랜드도 두 개나 되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첫 목표대로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가 그림책으로 즐거운 놀이터가 되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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