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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新자녀사용설명서

입력 2022-05-12 14:27 | 신문게재 2022-05-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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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교수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가정의 달이다. 때 마침 떠오르는 건 자식농사 걱정이다. 그만큼 힘든 건 없어서다. 남녀·빈부 무관한 부모 공통의 공감대다. 최소한 자식농사에선 평등한 것이다.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 듯하다. 시대변화가 자식농사의 결정방식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달라진 시대변화의 이해가 먼저다. ‘교육→취업→결혼→내집→승진’의 모범적인 생애경로는 궤도이탈에 고전한다. 당장 저성장으로 취업난이 심하니 공부를 잘해도 좋은 일자리는 찾기 어렵다.


당사자인 자녀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부모가 걸어왔던 인생궤적은 거부된다. 힘들기도 하거니와 따라간들 미래불안은 똑같다는 투다. 대놓고 엄마·아빠처럼 살지 않겠다는 속내마저 손쉽게 표출된다. 인생 별 것 없다는 자조적 현실인식이 적잖다. 이른바 ‘청년득도(得道)론’의 제기다. 조로(早老) 사회가 양산한 늙어버린 청년의 등장이다. 좌절조차 극복보다 적응으로 받아들이는 신인류의 탄생이다. 그러니 향상심은 별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인내보다 눈앞의 즐거운 생활에 집중한다.

달라진 자녀사용설명서가 절실한 때다. 자녀는 달라졌고 훈수는 튕겨진다. 그럼에도 예전방식의 성공스토리를 고집하면 관계만 악화된다. 건국이후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해질 게 확정적인 세대는 노력만큼 돌려 받은 기성세대와 다른 셈법에 익숙하다. ‘열심히’와 ‘넉넉히’는 공존하기 힘든 인과관계란 걸 일찍부터 깨달았다. 한국사회의 내로남불형 공정·정의·평등의 속살마저 봤기에 ‘선배세대=표리부동’의 인식마저 확대된다. 사회보험 등 세대부조형 제도조차 교묘히 숨겨진 착취체계로 힐난한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은 설 땅을 잃었다. 투입에 비례한 성과라는 상식과 계층 상승은 없다. 돈과 권력·명예를 원세트로 가졌던 성공모델도 사실상 끝났다. 부모만 굳건한 신화로 맹신하지 자녀는 허망한 주술로 이해한다. 고집스레 ‘열심히’만 내뱉는 부모일수록 자녀와의 거리·간극만 벌릴 뿐이다. 헬조선이라 느끼는 자녀가 분노·체념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먼저 살아봤다고 가르치려 들면 곤란하다. 다른 길인데 안내한들 먹히지 않는다.

자연스레 졸업·취업과 결혼·출산의 연결고리는 수정된다. 달라진 자녀는 새로운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취업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는 인생게임에 한 표를 던진다. 좋은 일자리 기준조차 바꿔버린다. ‘고연봉·야근 vs 저연봉·칼퇴’의 선택지를 물었더니 MZ세대의 절대다수가 후자를 택했다는 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지켜보는 부모로선 속 탈 노릇이나, 자녀에겐 당연한 결과다. 인내는 쓰나 열매가 달다면 아예 안 참고 안 먹겠다는 부류다. 미래보다 현실이듯 가족보다 본인이 먼저인 경향과 연결된다. 하물며 취업하라, 결혼하라 강조한들 꼰대지수만 높아질 따름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부모역할은 뭘까. 역시 기본은 공감과 응원이다. 시대가 변해도 안 바뀌는 건 영원한 안전장치로서 부모자녀의 애정관계다. 자녀가 걸어갈 길이 뭐든 인정하고 도와주는 무한한 확신·지지가 절실하다. 더 이상 표준·모범인생은 없다. 대신 다양성의 인생모델이 시나브로 안착된다. 성숙사회의 선진국처럼 밥벌이·일자리의 다양성이 새로운 생애궤도로 선택된다. 부모라면 달라진 시대의 새로운 호구지책부터 이해·수용하는 게 먼저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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