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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바히아 세하브 교수가 전하는 지금 시대 키워드 “너그러움과 친절함 그리고 유연한 정체성”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2-05-26 18:35 | 신문게재 2022-05-2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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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히아 세하브 교수
바히아 세하브 교수(사진=이철준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해 문화가 잘 보존돼 있는 걸 봤어요. 인상 깊었고 많은 영감을 받았죠. 정부가 아름다운 건물을 제공하고 전시 디자이너가 선사시대부터의 정보를 제공하는 곳에서 아이들과 부모,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었거든요. 특히 엄마와 함께 관람하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정부, 지역사회, 가정, 시민 등 국가와 사적 영역이 함께 모여 문화를 보존하고 경험한다는 게 놀라웠죠. 이것이 선진국임을 보여주는 큰 지표라고 생각해요. 학교 등 교육기관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박물관을 방문한다는 것 또한 그렇죠.”

올해로 11회를 맞는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29일까지 블루스퀘어, 마로니에공원, 유네스코회관 등) 개막행사인 국제심포지엄 발제자로 내한한 바히아 세하브(Bahia Shehab) 카이로 아메리칸 사립대학교 디자인과 교수는 한국에 대한 첫인상을 이렇게 전했다. 

 

바히아 세하브 교수
바히아 세하브 교수(사진=이철준 기자)
바히아 세하브는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A Thousand Times NO’, 나라별 철탑을 탐구한 결과물인 ‘Landscape/Soundscape: 20 Minarets from the Arab World’,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의 인용구를 이용한 글로벌 스트리트 인터벤션 캠페인(Global Street Interventions Campaign) ‘나의 백성’, 여성과 사회를 다룬 ‘Chronicles of Flowers’ 등을 선보인 예술가이자 교육가다.

“이집트 혁명 기간 동안 죽을 것 같은 느낌에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집에 앉아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죠. 의사들이 환자를 돕고 변호사들이 감옥에서 사람들을 꺼내올 때 저는 예술가로서 길거리에 섰습니다. 그렇게라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트리트 아트를 시작했죠.”

그렇게 문화예술을 통해 폭력, 자유, 독재, 여성의 인권, 혁명, 토지·사람·정체성의 식민화, 현대의 아랍정치 등 사회 문제에 중요한 담론을 형성하고 목소리를 내온 사회활동가이기도 하다.

‘A Thousand Times NO: Visual History of Lam-Alif’(Khatt 2010), ‘At The Corner of a Dream’(Gingko Library 2019), 공동 저서 ‘A History of Arab Graphic Design’(AUC Press 2020) 등을 출간한 저술가이기도 한 바히아 세하브 교수는 2016년 아랍 여성으로는 최초로 아랍문화에 대한 유네스코 샤르자(Sharjah)상을 수상했으며 영국 BBC의 ‘BBC 100 Women list’(2013), TED 시니어 펠로십(Senior Fellowship, 2016) 등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3년여의 팬데믹, 인간과 연대 그리고 공감

바히아 세하브 교수
제11회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 개막 국제심포지엄에 발제자로 참여한 바히아 세하브 교수(사진=허미선 기자)

‘포스트 코로나 시대 문화예술교육, 회복과 전환’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11회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 국제포럼에서 그는 ‘위기 시대의 교육: 타이프랩 케이스 스터디’(Education in Times of Crisis : TypeLab as a Case Study) 발제자로 나섰다.

이 포럼에 대해 그는 “세명의 패널들이 동일한 문제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테마는 ‘친절함’(Kindness)이라고 느꼈다. 위에서 아래로의 교육이 아니라 혜택 받지 못한 이들의 문화와 요구, 방법 등을 존중하는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 발제에서 캘리그래피와 로고 등의 위조 사건으로 담론을 형성해 커뮤니티로 진화한 아랍문자 연구프로젝트 ‘타이프랩’(TypeLab)을 통해 ‘너그로움’(관용, Generousity)을 강조하기도 했다.

 

바히아 세하브 교수
바히아 세하브 교수(사진=이철준 기자)

“지난 3년의 팬데믹 시간 동안 제 교육 모듈을 다시 돌아보게 됐어요. 결국 핵심은 공감 그리고 사람으로서 학생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겁니다.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피고 돌봐야 하죠. 이전까지는 교육자로서 학생들이 어떻게 교육 내용을 수행하고 성취하는지에 신경썼다면 팬데믹 이후에는 좀더 공감하는 교육자로서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이제는 학생들에게 보다 친밀하게 다가가고 공감하고자 노력하죠.” 

 

이어 “마치 기계처럼 정보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으로 어떤지를 돌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중요한 것은 학생들과의 공감대 형성”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의 ‘공감능력’은 벽화 작업을 하는 그를 연행하려는 정보기관, 정부 등에서 파견된 이들, 작품을 훼손하고 스프레이를 가져간 사람들과 논쟁하는 데서도 발휘됐다. 공감을 통해 상대의 변화를 끌어낸 과정은 꽤 흥미롭다.

“대화의 핵심은 공감이에요. 당시 저를 연행하려던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는 정부 산하 소속으로 보상과 처벌 시스템만을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 그를 이해하고 그의 두려움에 공감하며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서 벽화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위해, 당신의 어머니를 위해, 우리를 위해 이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공감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서서 그를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었죠. 그는 결국 저를 이해하게 됐어요.”

이어 “두려움은 눈을 멀게 하고 소통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상대방에 공감하면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기술이 빠르게 진화했고 최첨단화됐다. 그는 이 같은 시대일수록 “인간과 연대 그리고 공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계, 디지털 미디어 등은 우리를 통제할 수 없어요. 소통의 도구일 뿐이죠. 그들은 우리의 연결을 돈독히 하기 위한 도구임을 인식해야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주하는 과정을 비판한 프로젝트인 ‘Those who have no land, have no sea’가 그 예죠. 인공위성, 선박 등 (자유를 찾아 물에 뛰어들어) 익사하는 난민들을 구할 도구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구하지 않아요. 우선순위가 인간이 아니라 이익이 되는 것이 문제죠.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기술과 매체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예술을 위한 예술은 없다, 우리 모두가 예술가
 

바히아 세하브 교수
바히아 세하브 교수(사진=이철준 기자)

 

“저에게 예술은 생존 방식입니다. 예술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기제와도 같아서 해야만 하죠. 모든 인간은 창의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그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억압할 때 문제가 발생하죠.”

그는 문화 부흥기였던 르네상스 시대를 예로 들며 “저마다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도록 할 때 시너지가 발생한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너는 과학자’ ‘너는 수학자’라고 인간을 한정하고 단정짓는다”고 토로했다.  

 

바히아 세하브 교수
바히아 세하브 교수(사진=이철준 기자)
“하지만 더 이상 예술을 위한 예술(Arts for Art’s Sake)은 필요하지 않아요. 예술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 좋은 수단이죠. 예술을 통해 현실을 이해하고 정체성을 받아들이면서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고 자랑스러워하게 돼요. 사회를 반영해 그런 힘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것, 그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예술은 나에 대한 것도, 영웅적인 아티스트에 대한 것도 아닌 우리에 대한 것이죠. 우리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것이 예술이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술가입니다.”

그는 “흥미롭게도 지난 12년 동안 저는 여성 큐레이터들과만 작업했다”며 “이 여성들은 실제 큐레이터가 아니라 나와 같은 관점으로 예술과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일반적인 큐레이터처럼 작가에게 돈을 주거나 비엔날레를 가기 위해 전시를 기획하는 게 아니라 어젠다를 설정하는 것이 우리의 작업방식”이라고 털어놓았다.

“영국 링컨에서는 무슬림 여성, YMCA 등 지역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초대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작업도 했어요. 우리는 어떤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아요. 커뮤니티가 서로 연결되고 포용하며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죠. 그래서 지금 저의 관심사는 인간이 인간 자체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모델을 만드는 겁니다.”

단정지어 틀에 가두는 교육이 아니라 저마다가 ‘진짜 나로 살기’에 집중할 수 있는 교육모델을 고민 중이라는 그는 ‘정체성’ ‘글로벌시민’을 강조한다. 그는 “정체성은 제 모든 활동의 우산”이라 표현하며 “제가 아랍 글자에 집중하는 이유도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두가 연결된 시대의 핵심 키워드 ‘유연한 정체성’

바히아 세하브 교수
바히아 세하브 교수(사진=이철준 기자)

 

“언어, 배경, 역사, 국가 등은 다르지만 지금의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어요.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모두가 글로벌 시민이 됐죠. 그렇게 지금의 우리에겐 두 가지 정체성이 있어요. 국가 및 민족을 기반으로 한 근원적 정체성과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죠. ‘내가 너 보다 낫다’는 식민지적 사고방식은 이제 의미가 없어요.”

이어 “지금까지는 비엔날레, 올림픽, 월드컵 등 기관과 정부에 의해 기획된 이벤트들로 각각의 문화를 보여주고 글로벌 어젠다를 형성했다면 지금은 소셜미디어, 디지털 플랫폼이 저마다의 문화와 세계를 투영해 보여준다”며 “기관과 정부가 아닌 저마다가 스스로를 세계에 보여주고 자신의 정체성에 편안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바히아 세하브 교수
바히아 세하브 교수(사진=이철준 기자)

 

“제 본래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민으로서 동등하게 이 세계에 존재하기 위한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저마다가 가진 본래의 정체성과 어떻게 연결해 힘을 부여할 것인지,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은 제 작업의 핵심이기도 하죠. 그리고 그런 우리를 연결하는 건 인간성, 인류애예요.”

이에 바히아 세하브 교수는 “유연한 정체성”(Flexible Identity)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지리학적, 성적, 물리적으로 정체성의 경계를 짓는 지도를 그려왔다. 문화적 정체성은 그 동안 등한시됐다”며 “지리학적, 생물학적으로 사람들의 정체성을 한정짓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늘 연사 중 한명이 저에게 물었어요. ‘이집트인인지, 레바논인인지’. 저는 둘 다라고 답했지만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죠. 그래서 다시 말했어요. ‘저는 모로코부터 이라크까지의 아랍 지역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예를 들어 저는 한국을 처음 방문했지만 굉장히 편안함을 느껴요. 동양철학, 특히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철학에 굉장히 친숙하고 편안하거든요. 그렇게 동양과 제가 얼마나 연결돼 있는지를 깨달아요. 이처럼 지리적이기 보다는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정체성이 중요한 시대죠.”


◇변화에 발맞추는 교육, 너그러움의 제도화

바히아 세하브 교수
바히아 세하브 교수(사진=이철준 기자)
“틱톡,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플랫폼으로 소통하는 아이들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교육 모듈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 딸은 캐나다, 하와이 등 세계 곳곳에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 세대들에게는 국경 개념이 없죠. 온라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도, 가상현실도 아니에요. 다가올 세대의 실제 사고방식이죠. 그런 세대들에게 현재의 교육은 구시대적이에요. 그들만큼 빠르고 발전된 교육 모듈이 필요한 때입니다.”

변화에 발맞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히아 세하브 교수는 “문화의 중요성”과 “친절함의 제도화”를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멈췄을 때 인류는 문화예술이 있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러시아 오페라 하우스는 무료 스트리밍을 제공했고 세계 곳곳에서 무료로 책, 음악 등을 공유했죠. 너그러움과 친절함이 넘치는 사회를 우리는 살아내고 있었던 거예요. 팬데믹이 문화예술이 인간의 생존 기제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죠.”

이에 현재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그 친절함의 제도화다. 그는 “친절함을 어떻게 모든 커리큘럼과 기관들의 한 부분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공감 능력을 높일 수 있을까, 어떻게 제도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가 지금 저의 헤드라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많은 이들이 함께 노력하고 의식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몇백년간 보존된 인도의 아름다운 우물 이야기가 그 예죠. 한 남성에게 물었어요.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동안 우물을 깨끗하고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는지. 그가 답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돌봤기 때문’이라고. 결국 친철함의 제도화는 모든 이들이 항상 관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가능해져요.”


◇우리와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동등한 세상을 꿈꾸며

바히아 세하브 교수
바히아 세하브 교수(사진=이철준 기자)

 

“아랍 여성 디자이너에 대한 책을 저를 비롯한 세 연구자와 함께 작업 중이에요. 오래 전에 아랍 그래픽 다자인 책을 낸 적이 있어요. 그 책에 수록된 80명의 디자이너 중 5명 만이 여성 아티스트였어요. 대부분의 책, 연구 등은 남성, 특히 백인 남성 중심이죠. 이 프로젝트는 2000년에 마무리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스타 디자이너 대부분은 여성이었어요. 이처럼 적히지 않은 역사, 뒤로 밀려난 여성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요.”

바히아 세히브 교수는 아랍 여성 디자이너 책을 비롯해 “자본주의의 시작에 관심을 가지고 이집트 광고 역사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한국과 이집트 카이로 문화예술인과의 교류를 제안하며 안타깝게도 일어나지 않을 현실임을 알지만 꿈꾸는 세상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모두 동등한 세계가 왔으면 좋겠어요. 인간 뿐 아니라 우리와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동등한 그런 세상이요. 꿈은 때론 비현실적이어야 할 필요도 있지 않나 싶어요. 더불어 우리의 문화를 공유하고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다리가 더 많은 세상을 꿈꿔요. 결국 맞는 안경을 끼는 것이 중요하죠.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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