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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스케이프]춘천국제인형극학교 명예교장 루씰 보송 “마리오네트는 ‘놀라움’이자 ‘발명’이죠!”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2-06-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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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실 보송
춘천국제인형극학교 루씰 보송 명예교장(사진=허미선 기자)

 

“프랑스에서 ‘마리오네트’(Marionette)라는 건 인형, 인형극, 인형 아티스트 등 인형에 관한 모든 것을 응축하고 있는 단어죠. ‘마리오네트’라는 단어의 어원은 ‘작은 성모 마리아’까지 올라가지만 그 기원은 ‘축소된 제일 작은 단위의 어떤 것’이에요. 아주 작게 축소되고 응축된 생명체죠. ‘마리오네트’라는 그 단어 자체로 장르적·예술적 의미 그리고 공연까지를 모두 포함합니다.” 

8월 개교를 앞둔 아시아 최초의 인형극전문학교 ‘춘천국제인형극학교’(Chuncheon International School of Puppetry)의 명예교장인 루씰 보송(Lucile BODSON)은 ‘마리오네트’에 대해 “놀라움(Surprise)이자 발명(Invention)”이라고 정의했다.

“마리오네트는 늘 놀라워요. 그리고 에디슨이 그랬듯 늘 새로운 것을 발명하죠. 새로운 게 나올까 싶은데 또 새로운 것이 나오거든요.”  

 

루씰 보송
춘천국제인형극학교 루씰 보송 명예교장(사진=허미선 기자)

문화 프로젝트 개발 및 교육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루씰 보송은 파리 유일의 인형극 전용극장이자 연구센터인 무페타르 극장(Le Mouffetard) 대표이자 국제인형극연맹(UNIMA, Union Internationale de la Marionnette)과 세계인형극우호도시연합(AVIAMA) 집행위원이다.


2003년~2014년 프랑스 국제인형극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De La Marionnette) 소장 및 국립인형극학교(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Arts de la Marionnette) 교장을 역임하는 등 ‘인형극’ 외길을 걸어온 그는 프랑스 예술문화 훈장(Arts and Letters Officer-French National Order of Merit Officer) 수훈자이기도 하다.

그의 말처럼 인형극은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동명의 애니메이션 혹은 베스트셀러를 온전히 무대 위에 재현한 뮤지컬 ‘라이온 킹’이나 ‘북 오브 더스트’ 등이 그렇다. 더불어 2020년 루씰 보송이 대표로 있는 무페타르 극장에서 공연된 ‘헨’(Hen) 등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에 가깝다. 그렇게 마리오네트는 “저게 가능하다고?”라는 놀라움도 잠시 “그럼 이것도 가능할까?”라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

“그게 마리오네트가 가진 힘이죠. 일종의 은유랄까요. 그 표현 언어들, 도구들이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그리고 그 중심에 마리오네트가 있어요. 그 마리오네트가 펼쳐 보이는 세계는 너무도 다양해서 무한대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지경이죠. 연극, 무용극 등도 경이로운 경험을 제공하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해요.”

이어 루씰 보송 교장은 “사람이 표현하는 너무 사적인 이야기, 무대 위 그들만의 세계나 민감할 수 있는 사안들은 보는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기도 한다”며 “이런 경우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형이라는 매개체가 있을 때는 또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그 간극의 힘은 엄청나요. 인형이 저한테 말을 걸어온다고 할까요. 제가 가진 생각, 한계 등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자유로움을 주죠. ‘무엇은 무엇’이라는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등은 사라지고 그 간극이 은유하는 것들을 깨닫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죠.”


◇인형극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 넘는다


루씰 보송
춘천국제인형극학교 루씰 보송 명예교장(사진=허미선 기자)

 

“제가 ‘마리오네트’에 매료된 건 1989년이었어요. 네덜란드에서 열렸던 공연예술축제에서 인형사 헨크 보어윈켈과 아내 안스(Henk·Ans Boerwinkel)가 만든 극단 트라이엔젤(Triangel)의 ‘12 쇼츠 액츠’(Twenty Short Acts, 1991년 ‘Metamorphoses’로 제목을 바꿔 1995년까지 무대에 올렸던 작품)라는 인형극을 봤어요. 1970년대부터 토탈시어터 작업을 하던 팀의 비언어극이자 비주얼 시어터였는데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느낌이었죠. ‘실화야?’ ‘이게 가능하다고?’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매료됐어요.”

공연이 끝나고도 그 여운은 이어져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던” 당시를 루씰 보송 교장은 “저 역시도 다른 사람들처럼 가지고 있던 ‘인형극은 아이들을 위한 콘텐츠’라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그는 ‘마리오네트’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그때 ‘마리오네트’에서 느꼈던 놀라움은 지금까지도 똑같아요. 제가 교장으로 몸 담았던 국립인형극학교의 교육위원으로 지금도 학생들의 작업 과정들을 지켜보곤 하는데 그들은 늘 저를 놀래키거든요. 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상상력을 구현해 내죠.”

1980년대 그가 가지고 있던 ‘인형극은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은 한국을 비롯한 어디에나 있다. 그는 “인형극에 대한 그 시선들은 한국 뿐 아니라 좀 오래 전의 일이지만 유럽에도, 프랑스에도 이미 있었다”며 “그 편견이 변해가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형극은 굉장히 많은 시간과 인내심 그리고 장인정신을 필요로 하죠. 좀 느리지만 그 변화의 과정은 프랑스에서, 스페인에서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이미 검증이 됐어요. 춘천국제인형극축제도, 춘천국제인형극학교도 다양한 환경에서 다른 시선으로 창작하고 작업했던 전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잖아요. 아티스트들은 그런 사람들, 작업들과의 만남에서 영감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변화하죠. 저는 그것을 목도했고 믿습니다. 춘천도 그럴 것이라고 믿어요.”


루씰 보송
춘천국제인형극학교 루씰 보송 명예교장(사진제공=춘천국제인형극학교)

◇편견을 넘을 사건, 춘천국제인형극학교


“춘천에 국제인형극전문학교가 생기는 자체로도 하나의 경이로운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곳의 명예교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이 자리에 있죠. 인형극학교가 독립체로서 시작한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죠. 더구나 그 출발점이 한 도시의 행정적 움직임잖아요. 시 차원에서 인형극 예술을 지원·후원한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죠.”

춘천국제인형극학교 개교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더한 루씰 보송 교장은 “그 의미 있는 사건의 시작을 함께 하며 앞으로의 과정들을 계속 볼 수 있다는 게 영광”이라며 “인형극의 중심인 유럽에 한국의 춘천에 인형극학교가 세워졌다는 걸 알릴 필요가 있다. 그 역할을 제가 담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형극이 가진 전통의 전수는 가계 안에서 가업으로 혹은 극단 내에서 도제식으로 이뤄져 왔어요. 이같은 전수의 과정은 전통 방식의 재현 정도에 그친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죠. 물론 전통의 전수도 중요하지만 동시대 창작예술로서 현대 인형극으로 넘어오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학교입니다. 서로 다른 예술 언어들, 표현방식 등을 가진 세계의 젊은이들이 학교에 모여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으며 스며들면서 제3지대로 나아가죠. 그렇게 유럽의 인형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동시대에 맞춘 공연예술 장르로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춘천국제인형극학교는 책임교수로 위촉된 윤정섭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태용 극단 수레무대 대표 및 연출, 프랑스 국립인형극학교 교수인 끌레르 헤겐(Claire Heggen), 러시아와 핀란드에서 인형극학과 창설을 주도하고 인형극축제 감독을 역임한 안나 이바노바(Anna IVANOVA-BRASHINKAYA) 등이 인형극 창작 및 제작에 최적화된 커리큘럼에 투입된다.

 

“다양한 차원에서 인형극에 접근하는 이 분들이 모인 학교라는 시작점 자체가 변화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학교는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곳이 아니에요. 교육에서는 과정이 중요하죠. 그 과정 동안 학생들은 자기 성찰을 하고 끊임없는 탐험과 실험을 통해 스스로 어떤 표현 방식, 예술 도구를 가지고 나아갈 것인지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루씰 보송
춘천국제인형극학교 루씰 보송 명예교장(사진=허미선 기자)

 

춘천국제인형극학교가 유럽의 인형극이 현대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따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에 루씰 보송 교장은 “이미 시작됐다”고 단언했다.

“춘천국제인형극학교에 모신 글로벌 마스터 7분의 면면이 그걸 증명해요. 그 중 끌레르 헤겐 선생님은 이 학교가 다양한 차원에서 인형극을 볼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증거죠. 이분은 몸으로 표현하는 마임으로 시작하신 분이에요. 75세가 되는 지금까지 평생을 무대에 오르고 몸과 오브제, 공간 안에서의 상관관계를 학술적으로 연구하셨던 분이에요.”

이어 “인형극의 기초적 훈련, 몸으로 표현하는 것들을 마리오네트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알려주실 것”이라며 “생명이 없는 인형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생명체인 내 몸의 역할을 모르면 생명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 분이 교수진으로 초대된 걸 보고 이 학교는 이미 편견이 깨져 있다고 확신했죠. 그렇게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춘천국제인형극학교가 절로 생겨난 게 아니에요. 제가 처음 한국을 찾은 건 프랑스 국립인형극학교의 교장이자 국제인형극연구소장이었던 10여년 전이었어요. 춘천국제인형극축제에 초청 받아서 왔을 때 이미 인형극 전문 인력 양성·연구·교육기관을 세우고 싶다고 하셨죠. 그 수가 얼만큼이든 학교에 대한 필요성과 당위성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렇게 10년을 넘게 흘려보내고서야 춘천국제인형극학교가 만들어졌죠.”



◇지금을 사는 우리 모두가 마리오네티스트!
 

루씰 보송
춘천국제인형극학교 루씰 보송 명예교장(사진=허미선 기자)

“이제 제일 중요한 건 학생들입니다. 배우고자 하는 그들이 결국 미래 예술을 지켜갈 사람들이거든요. 그리고 그들로부터 이 학교가 나아갈 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은 배우고자 하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강조한 루씰 보송 교장은 “극예술, 조형 미술, 영상 등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리오네티스트가 될 수 있다”며 “특히 요즘은 마리오네트에 관심을 보이면 좋겠는 이들이 너무 많다”고 전했다.

“마리오네트가 미래적인 장르로 부각되고 있는 시점이고 요즘 젊은이들은 어디서 배우지 않아도 이미 다원적인 기능과 창작력을 가지고 있죠. 지금은 이미 테크놀로지의 시대고 그 시대를 사는 젊은 세대들은 누구나 마리오네트의 요소를 가지고 있어요. 게임, 아바타, 메타버스, AI 로봇 등으로 다양한 이야기와 삶이 어우러지는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마리오네트는 대면 무대에서의 공연예술에 한정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미래로 이어지죠.”

이어 “더불어 프로페셔널한 마리오네티스트들의 지원과 관심도 필요하다”며 “학생들은 학교에서는 어마어마한 것들을 배웠다고 생각할 테고 당장 현장에 나가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열정도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학교에서 현장으로 나갈 때 필요한 것이 선배 마리오네티스트들이에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극단 운영과 공동작업은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관객과 마주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학교가 아니거든요.”


◇인형극 대모의 따뜻한 말 한마디 “실수해도 괜찮아요!”

 

루씰 보송
춘천국제인형극학교 루씰 보송 명예교장(사진=허미선 기자)

 

최근 칸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송강호·강동원·아이유·배두나 등의 ‘브로커’를 비롯해 이정재의 ‘오징어게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윤여정의 ‘미나리’, BTS(RM·진·슈가·제이홉·지민·뷔·정국)를 비롯한 K팝 등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K콘텐츠 열풍에 한국 인형극이 합류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루씰 보송 교장은 “확신했다.”

 

“10여년 전 한국을 찾았을 때 이미 그 잠재력을 발견했어요. 아이들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말을 걸고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당시 프랑스나 유럽에서는 없었던 시도들이, 무대 방식이 굉장히 흥미로웠거든요. 이것이 한국만의 가능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만의 그 가능성과 잠재력이 세계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해오던 일과 더불어 글쓰기를 하고 싶다”며 지금은 모던 인형극과 컨템포러리 인형극의 구분이 좀 필요한 시기 같다. 유럽에서는 현대 인형극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그에 관한 책을 쓰고자 한다”고 귀띔했다.  

 

춘천국제인형극학교에서는 ‘대모’ 역할을 하고 싶어요. 두려워하지 않고 실수할 수 있는 곳이 학교예요. 실제 사회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유일하게 학교에 몸담고 있는 시간에만 가능한 일이죠. ‘여유와 시간을 가지고 끊임없이 탐험하고 충분히 실험하라’고, ‘실수도 두려워 말라’고, ‘괜찮다’고 모두에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모두의 ‘대모’처럼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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