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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시니어] 만학도의 꿈

입력 2022-07-07 15:26 | 신문게재 2022-07-0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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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량 명예기자
임병량 명예기자

 

며칠 전 K 친구가 보낸 사진 넉 장을 받았다. 사진은 편지 두 장과 봉투 앞뒷면이다. 3년의 군 생활 중 제대 몇 개월 남겨두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다. 모범 용사 이야기가 들어 있는 걸 보니 그때가 72년으로 기억된다. 50여 년간 편지를 보관한 K의 마음을 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의 젊음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정신력은 더욱 강해졌다.

3년의 군 생활이 마무리될 시기는 병아리가 자라서 수탉이 된 느낌이다. 병아리는 편지 쓸 시간조차 부족하지만, 수탉이 되면 여유가 있다. 고향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편지쓰기를 했다. 편지가 유일한 예절이고 인격이며, 존재감을 알리는 통로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사랑과 정을 나눈 그릇은 편지만 한 게 없다. 글쓰기는 뇌활용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도움 된다. 뇌는 사용할수록 발전하지만, 방치하면 녹슨 기계가 되어 우울증이나 치매 원인이 된다. 핸드폰이 보급되면서 가족 전화번호까지 잊어버린 뇌를 탓하고만 있을 일은 아니다. 편지쓰기가 부활하여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는 그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2021년 7월 여름 소래포구에서 우리의 만남은 새로운 출발점이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했으니 어린이가 자라서 반백이 되었다. 얼굴은 그 모습이지만, 형상은 유명 화가의 그림이 오랜 세월 비바람으로 퇴색된 진품이다. 우리가 오래된 추억을 나눌 수 있는 끈이 편지였다.

K는 편지 받던 그 시절이 가장 힘들었던 때라고 말하면서 눈가가 붉어졌다. 그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자꾸만 콧물이 나왔다. 눈물을 참으면 콧물로 변하는가 보다. 생각 없이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다 비웠다. 친구의 입장은 헤아리지 못하고 답장만을 기다렸던 소견이 미안하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서울의 중심부 은행에서 근무한 자랑스러운 아들이 보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 날 영업장을 쳐다보니 아버지가 계셨다.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오셨을까? 만감이 교차하면서 복받친 감정을 꾹 참고, 아버지께 인사드리며 손을 잡고 영업장을 빠져나왔다. 천릿길을 찾아온 아버지는 ”나를 보고 싶었다“고 했다. 엄마를 일찍 보낸 아빠 심정, 어렵게 자란 막내아들 자랑스러운 모습, 뒷바라지 못해 준 아빠의 심정, 한눈에 읽었다. 풍성한 효도 못 한 자식은 지금도 후회스럽다”고 하면서 울컥한 심정을 털어놨다.

고향과 학교는 잊을 수 없는 보금자리다. 우리는 아름다운 추억을 글로 보관하기 위해 글쓰기에 입문했다. 국보 수필 문학 대학원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 매주 목요일 오후 4시, 길동 교육장에서 글쓰기 공부는 새로운 행복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늙지만, 아름답고 품위 있는 늙음은 선택사항이다. 노후의 삶이 향기 나고, 품위 있는 삶의 길은 글쓰기와 독서, 그리고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품위 있는 노후 밭에서 씨앗을 심고 있다. 글쓰기는 장수 시대에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조건이다. 소통은 말로 하면 쉬우나 글로 하면 어렵다. 글쓰기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고 듣는 생활이 일상이었지만, 글쓰기는 소홀했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선택된 사람의 영역이라고 여겨왔지만, 시대는 변했다. K와 함께 글쓰기 밭에서 이랑을 만들고 잡초를 뽑아내며 우량 품종을 선별해서 심고 있다.

 

임병량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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