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여행

[비바100]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차재 예술감독 “배가 산으로 가는 게 잘못인가요?”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2-09-30 18:30 | 신문게재 2022-09-30 12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차재예술감독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차재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배가 산으로 가는 게 굳이 잘못이라고 해야 할까요?”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9월 29~11월 7일)의 차재 예술감독은 올해 주제인 ‘사공보다 많은 산’에 대해 이렇게 반문했다. 남해 스페이스 미조, 제주 베케, 춘천 오월학교, 서울 노들섬 등 지역재생 프로젝트 기획과 크리에이티브를 수행했던 그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건 맞다”며 “건축가로서 로컬 브랜딩, 도시 재생 등의 일을 하다 보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말씀을 하신다”고 말을 보탰다.

차재 감독은 “사공이 각자의 배를 탈 수 있게 하는 다양성의 문제”라며 “사공이 물이 좋아서 물에 있으면 응원해주고 산으로 가려고 해도 지지해주는 것이 저희 예술제가 취해야 하는 기본 태도”라고 부연했다.

“사공은 배를 타고 강과 바다, 물 위에 있는 사람들이죠. 그들이 산으로 간다는 건 범주를 확장한다는 의미이고 교류가 많아서 경계를 넘어서는 거잖아요. 예술제, 예술 그리고 일상까지 포함해서 지향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사공이 많은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 많은 사공을 한배에 태우려는 게 문제죠.”

 

차재예술감독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차재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다양성의 문제, 모두가 산이 되는!

“그래서 ‘사공 보다 많은 산’은 각자 가고 싶은 대로 가면 된다는 의미에요. 스스로가 산이고 각자가 그 산을 오르기도 하죠. ‘나는 산’ ‘우리는 산’이라는 메시지를 다 품을 수 있는 주제가 ‘사공 보다 많은 산’ 같아요.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가 저마다가 산이 되고 모두가 산이 되는 예술제가 됐으면 좋겠어요.”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는 강원도 주최, 평창군·강원문화재단·평창문화도시재단 주관으로 치러지는 ‘강원트리엔날레’의 첫해 행사다. ‘강원트리엔날레’는 2013년 격년제인 ‘평창비엔날레’로 시작해 2018년 올림픽특별전까지 치른 후 2019년부터 행사의 성격을 바꿔 진행해 왔다.

 

3년 단위로 강원도의 한 지역을 정해 첫해는 강원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참여하는 ‘강원작가트리엔날레’, 이듬해는 ‘키즈트리엔날레’ 그리고 3년째는 ‘국제트리엔날레’가 진행된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홍천에서 치러진 ‘강원트리엔날레’는 ‘예술의 고원, 평창’이라는 대주제로 올해부터 2024년까지 평창에서 진행된다. 올해의 ‘강원작가트리엔날레’를 시작으로 2023년에는 ‘키즈트리엔날레’, 2024년 ‘국제트리엔날레’가 열린다. 새로운 3년의 첫발인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에서는 강원도를 연고로 한 성인작가 134팀과 드로잉 공모로 선정된 30명의 청소년이 참여해 25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 작품들은 어린이 실내 낚시터, 게이트볼장, 종합공연체험장에 각각 꾸린 ‘풀’(Pool), ‘게이트’(Gate), ‘홀’(Hall) 그리고 진부 전통시장을 포함한 ‘타운’(Town), 파빌리온과 조각공원으로 구성된 ‘파크’(Park), 평창연구아카이빙·아트밭·체험프로그램으로 구성된 ‘밭’(Batt) 등 6개 공간에 나뉘어 전시된다.  

 

차재예술감독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차재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더불어 단풍절경으로 유명한 월정사에서는 그래피티 작가 제바(XEVA, 유승백)와 평창 진부중학교 2학년 재학생 100여명이 함께 작업한 작품을 만날 수 있고 파버카르텔, 러쉬코리아 등 잘 알려진 브랜드와 협업한 드로잉 체험, 발달장애 아티스트 지원 프로그램 등도 진행된다.

“트리엔날레라고 하면 거대담론, 예술적 담론의 성취는 무엇이냐고 묻곤 하세요. ‘강원작가트리엔날레’는 로컬 예술제예요. 강원 작가와 주민들이 강원도의 자연과 일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교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죠.”

차재 감독이 말하는 두 가지 시선 중 하나는 “강원의 자연과 일상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산을 쪼개고 쪼개면서 발견되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들은 흙, 나무, 돌, 강 등 각자의 고유성을 가지면서 산을 구성하는 것들이죠. 이들을 재발견하고 모아 교차시켜 전시하면 ‘강원의 이야기’이자 ‘강원의 지역성’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재예술감독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차재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강원의 재발견, 그 의지를 담은 전시장들

“외부에서 어떤 개념을 가져오기보다 내부의 것들을 발견하는 과정들의 연속이었어요. 그렇게 인문학적으로 지역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뽑아낸 키워드가 ‘밭’이에요. 논과는 다른, 땅의 기운이 더 느껴지고 토양의 이야기가 더 많기도 하죠.”

차재 감독이 꼽은 ‘밭’(BATT)은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가 펼쳐질 6개 공간 중 하나이자 평창의 지역색이 가장 잘 묻어나는 키워드다. 벼에 한정적인 논과 달리 밭은 “어떤 걸 가져다 심어도, 여러 품종을 한데 심어도 되는” 공간으로 ‘다양성’과 ‘지역성’을 내포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품에 지역이 동원되는 게 아니라 역전시킨, 지역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들도 있어요. ‘일상예술전’이 그렇고 진부역, 진부시장에서 진행되는 ‘오일장 프로젝트’가 그렇죠.”

최근 몇 년간 유휴공간이었던 평창송어축제장에는 차재 감독이 구축한 파빌리온과 조각공원이 들어선다. 이 공간에 대해 차재 감독은 “벽과 지붕이 있는 관이 있고 지붕만 있는 외부 공간, 전망대도 있다. 그들 사이에는 데크 공간과 크고 작은 마당들이 있다”며 “지역의 특징을 살려 활동하는 팀들, 진부농협 등과의 협업을 통해 평창의 특산물로 만든 지역 음료와 다과, 특산품, MD 등을 선보인다”고 설명했다.

“파빌리온은 지역의 시간적 연계, 행사장의 주요 공간을 잇는 앵커스페이스예요. ‘강원트리엔날레’ 기간에는 예술제 공간으로 활용되지만 그 이외에는 마을이나 지역 행사들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아 있을 거예요. 더불어 행사가 없을 때는 지역민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기능을 하죠. 이들이 충분히 끼어 들어갈 수 있게 다양한 개폐감 등을 고려했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주민들의 일상이 충분히 잘 담기고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꾸린 공간이죠.”

태백 미용실에서 모은 머리카락으로 작업하는 황재형 작가, 수묵화가 신철균 작가, 길종갑 작가, 박홍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주제전은 유휴공간이던 게이트볼장, 어린이를 위한 실내낚시터, 평창송어종합공연체험장 등을 새로 꾸린 전시장에서 열린다.

차재예술감독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차재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공간이 품고 있고 그들이 사용된 흔적들을 살려 꾸린 전시장들이에요. 도시재생의 가장 큰 문제는 새로 꾸려지는 대부분의 유휴공간이 ‘원래 뭐였는지’를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지역재생이 이뤄지는 풍경과 결과를 보면 좀비영화 혹은 드라마 ‘워킹데드’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는 간호사, 선생님, 경찰 등이었던 이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좀비처럼 보건소, 경찰서, 학교, 창고 등 각기 다른 기능을 하던 공간들이 도시재생으로 죄다 카페가 돼버리곤 하거든요.”

이어 차재 감독은 “원래 기억이나 사용 흔적 등과는 상관없이 기승전‘카페’가 돼버리는 도시재생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됐다”며 “죽은 걸 되살리기만 하면 된다 보다는 잠깐 쉬고 있는 공간을 재활시키는 게 도시재생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전시장들은 원래 기능을 일깨우는 재활 방식으로 꾸려진 유휴공간들이다.

“실내 낚시터는 25mX25m 크기의 정방향 공간에 가운데 12m 지름의 낚시터 풀장이 있는데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지는 공간이죠.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물결의 기운들에서 영감을 받아 전시장을 꾸렸는데 공중에 매달린 동그란 수조의 아우라고 되게 좋아요. 게이트볼장은 인공잔디가 깔려 있어 기존 미술관과는 다른 보행감을 줘요. 공들이 통과하면서 직선으로 오간 사용흔적을 그대로 살렸죠.”


◇지속가능성의 핵심 ‘지금의 나’

차재예술감독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차재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

 

“당장 건강하지 않더라도 멀리 나아갈 비전이 없더라도 그냥 지금의 나를 나로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차재 감독은 “모든 것의 지속가능성은 건강한 자아, 장기적 비전 등 보다 지금 당장의 스스로를 인정하는 용기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인정하고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고 서로를 인정하면서 지속된다”고 밝혔다.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의 주제인 ‘사공 보다 많은 산’과도 맞닿아 있는 그의 말은 4년차를 맞은 ‘강원트리엔날레’에도 적용된다.

“제가 물음표로 던지는 주제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지역을 두드려 먼지가 나게 하고 소리들이 좀더 풍성해질 수 있도록 기운을 만들어주는 게 첫해의 역할 같아요. 그렇게 지역을 두드릴 판을 깔고 먼지든 향이든 올라오면서 ‘키즈비엔날레’ ‘국제비엔날레’까지 지속되면 3년차에는 무르익을 겁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건 세부 지원보다는 서로에 대한 인정, 다양성의 확보죠. 쇠붙이만 붙으라고 자석을 가져다 대는 게 아니라 뭐든 그대로 흡착될 수 있는 끈끈이처럼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