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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존재에 대한 질문, 제 연주가 계속 젊었으면 좋겠어요!”

입력 2022-11-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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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제 연주 느낌 자체가 계속 젊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20세기, 동시대 음악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협주곡을 연습하고 베를린에서 거주하면서 동시대 음악의 중요성 느껴요. 유럽도, 오케스트라 레퍼토리도 현대음악, 20세기, 21세기로 확장 중이죠.”

제12회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 후 처음으로 기자들을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는 ‘젊은 연주’와 ‘동시대 음악’을 강조했다. 그는 “옛날에는 슈베르트, 브람스를 들을 때만 눈물이 났다면 이제는 현대음악을 들을 때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며 “현대음악과의 감정적 연결고리를 찾은 것 같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쓰는 느낌이고 (동시대 음악에 대한) 음악인으로서의 사명도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곤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제 곡을 만드는 것”이라며 “제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직접 연주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대신 곡을 잘 쓰고 싶다”고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매일 조금씩 작곡하고 있고 조언도 많이 듣고 있어요. 제 주변에는 작곡가 친구들이 많거든요. 대위법을 공부 중이죠. 고음 악기다 보니 바이올린은 바흐 곡이나 푸가를 연주할 때 다른 성부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대위법에서는 여러 성부를 어떻게 구성할 때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는지를 공부할 수 있죠.” 

 

양인모는 “알고 있는 음악은 많은데 오선지 앞에 앉으면 아무 것도 쓸 수 없어서 작곡가의 위대함이 느껴진다”며 “그러면서 제 음악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을 보탰다.

“(작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순전히 음악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악기를 하다보니 궁금한 게 너무 많고 작곡가들이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알고 싶었거든요.”

양인모는 작곡에 대해 “굉장히 많은 음악적 결정을 내리는 작업이다. 그래선지 작곡을 하면서 생각도 날카로워졌다”며 “이 같은 작업과정을 거치면서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아 좋다”고 털어놓았다.

“바이올린 레퍼토리가 아주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제가 꼭 거쳐가야할 관문은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내년은 리게티 죄르지(Ligeti Gyorgy) 100주년으로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어 양인모는 “내년 12월 타이페이에서 제 친구가 쓴 바이올린 콘체르토도 연주한다. 이처럼 현존하는 작곡가와의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면서 낭만주의나 고전주의 곡을 접할 때 새로운 영감을 받기도 한다”고 밝혔다.

“미니멀리즘 등의 음악에 관심이 많아요. 21세기를 살고 있는 음악가가 21세기 음악에 관심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음악은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음악을 들어야 할까 등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중이죠.”


◇지금 주변의 모든 소리들이 곧 현대음악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제가 지금까지 연주한 곡들 중 비교적 가장 어려운 곡 같아요. 이 곡을 연습하고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곡을 연주하면 쉽게 느껴지거든요. 제가 이곡에서 흥미롭게 생각하는 대목은 곡 형식자체는 클래시컬한 4악장이지만 고전적 측면과 모던한 측면이 공존하며 대화를 이루는 듯하다는 겁니다.”

양인모는 10일 지휘자 최수열이 이끄는 부산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할 진은숙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6월부터 하루 3시간씩 연습하고 있다”는 양인모는 “원래 이 곡에 관심이 많았다. 이 연주가 기획되기 2년 전 자필악보를 구했을 정도다. 그때부터 악보를 훑어보다가 연주기회를 얻게 됐다”고 덧붙였다. 

 

부산시향 양인모_포스터
양인모는 10일 지휘자 최수열이 이끄는 부산시립교향악단과 진은숙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을 협연한다(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대부분의 협주곡은 솔로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주장을 펼치며 싸우는데 이 곡은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새로운 악기를 만드는 듯한 느낌이에요. 오케스트라의 한 부분으로 솔리스트가 거의 쉬는 부분이 없어서 체력적으로도 힘들죠. 다른 협주곡에서 보기 힘든 음색을 가진 곡이기도 해요. 타악기만 27개로 현대음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스틸 드럼도 사용되거든요. 기계적인 것과 동시에 색채감, 음향감 등을 통해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곡이죠.”

이어 “저 스스로도 준비를 많이 했고 부산시향과 리허설도 4번 이상 예정돼 있다”며 “2001년 작곡돼 초연된 이후 연주가 많이 이뤄지지 않은 이 곡을 21년만에 다시 들으실 수 있다. 이 협주곡이 언제 또 연주될지 모르니 정말 드문 기회”라고 강조했다.

“저는 현대음악이 쉽다고 생각해요. 서울 어디든 돌아다니면서 들리는 소리가 현대음악 같거든요. 음이 높아지거나 낮아지고 빨라지거나 느려지고 기계음을 내기도 하는 등의 음악적 개연성은 베토벤, 브람스 음악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거든요. 몰라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곤 “이번 연주가 누구나 와서 즐기고 돌아갈 수 있는 놀이터가 되면 좋겠다”며 “스스로에게 와 닿는 것들을 충분히 즐기시면 된다”고 당부했다.

“큰 아이디어로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21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진은숙), 그 분의 음악을 듣는 건 21세기 사상을 접하는 거니 참석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가니니 이후 두 번째 콩쿠르 시벨리우스 “스스로에게 부여한 챌린지”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올해만큼 변화가 많은 시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마음을 가졌던 것 같거든요. 일단 변화가 필요했던 해였어요. 콩쿠르 참가를 지난해 12월에 결심했는데 갈 곳을 잃은 느낌이었어요.”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다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양인모는 “어떻게 활동을 이어갈까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며 “음악적으로 듣는 귀가 달라졌고 폭도 넓어졌다.” 그런 그가 커리어를 어떻게 이어갈까 고민하게 된 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의 습격이었다.

“팬데믹이 음악인들에게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게 하는 시기였던 건 분명해요. 연주자로서 제가 하는 일은 거의 연습뿐이에요. 1, 2%만 무대에 서고 나머지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죠. (무대에 서는) 그 1, 2%가 (팬데믹으로) 없어지니 ‘왜 연습을 해야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가피하게 내가 세상에 왜 필요한지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됐죠.” 

 

양인모 테라스 이미지컷 (2)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이에 “자극이 필요했고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잘 참으면 그 후로는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싶었다”는 양인모는 “저 자신에게 챌린지를 줘야 했던 시기였다”고 털어놓았다.

“콩쿠르는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해 인지도를 얻고 세상에 저를 알릴 기회라고 생각해요. 다만 누구나 해야할 필요는 없어요. 콩쿠르 준비를 위해 곡들에 매진하면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제 한계를 측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죠.”

양인모는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에 앞서 2015년 제54회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2008년 이후 9년만에 탄생한 우승자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미국에 머물고 있던 양인모는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으로 유럽의 명문 연주단체들과의 협연 등 많은 기회를 얻었다. 이에 대해 양인모는 “콩쿠르 자체는 굉장히 많은 기회를 줬고 그것만으로도 특전”이라면서도 “그때의 문제는 제가 다시 초대받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제가 유럽에 있지 않고 미국에 집중돼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을 했을 때는 다시는 콩쿠르를 안나가도 될 줄 알았어요.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겠구나, 안겨뤄도 되겠구나 했죠.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등 여러 가지 여건들로 활발한 활동을 위한 모티베이션이 필요했어요. 유럽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많은 연주를 하고 싶고 인지도도 쌓고 싶었죠. 그에 가장 빠른 방법이 콩쿠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시벨리우스 콩쿠르 참가를 결정하던) 그때 바라던 것과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는 “유럽의 연주자들 중에는 콩쿠르에 나가지 않고도 커리어를 쌓는 친구들도 많다. 모든 연주자들의 관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모티베이션, 자극은 된다고 생각한다”며 “콩쿠르는 내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고 내 해석이 다른 연주자들과 얼마나 다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밝혔다.

“콩쿠르에서 가장 값지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오라모 사카리(Sakari Oramo) 심사위원장의 멘토링 세션이었어요. 그 역시 바이올리니스트로 호텔방으로 불러서 시벨리우스의 새로운 에디션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어요. 그 정도 경력자 중 젊은 아티스트에 관심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조언 뿐 아니라 소소하게 음악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지휘자를 얻었죠.”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그는 “콩쿠르 우승 후 내가 어떤 사람과 일할 것이지, 어떤 사람을 주변에 두고 싶은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등을 꼭 고민해야 한다”며 “시간, 이미지 관리 등도 중요하고 연주하고 싶은 뮤지션, 악단, 지휘자들 등과 더불어 음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양인모에 따르면 “콩쿠르 이후 한달 동안 거의 매일 두세개씩의 (연주 및 공연) 제의가 들어왔다.” 이에 그는 “하루 한두 시간은 제의 이메일에 답장을 쓰는 데 보내야 했다.” 이미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인 마에스트로 오스모 벤스케가 이끄는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12월 8일) 등 그의 2022년과 2023년은 연주일정으로 빼곡하다.

“콩쿠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때부터가 시작인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터 생각해야할 게 너무 많거든요. 그 과정이 너무 재밌어요. 절로 이뤄지는 건 없어요. 커리어를 얻는 것보다 유지하고 생명력을 가지고 긴 커리어로 만들기가 더 어렵죠. 연주 연습은 물론 음악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솔직하게 음악을 대한다면 점진적으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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