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오피니언 > 브릿지칼럼

[브릿지 칼럼] 통제불능 인생

입력 2022-11-17 14:02 | 신문게재 2022-11-17 19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김시래
김시래 동서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객원교수, 롯데자이언츠 마케팅자문위원

퇴임의 유탄이 후배의 노년을 관통했다. 밀려오면 밀려나야 하는게 나이 든 자의 숙명이다. 나도 그랬고 누구도 그랬다. 시간이 만든 상처니 시간이 약이 될 것이다. 당분간 측은지심인지 타산지석인지 모를 상대의 눈초리를 감내하며 술자리에 불려 나가리라. 어딜가든 누구에게든 침착한 태도와 진중한 언사로 다음의 인연에 대비해야 한다. 반가운 전화벨 소리는 언제든 예측 못한 곳에서 날라들기 때문이다. 늘 자신있는 태도로 좌중을 휘어잡던 후배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주점의 벽에 “먹다 보니 주량이 두 배로 늘었어요!” 라는 카피가 적힌 간장약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렇지. 오십중반을 갓넘긴 그에겐 아직도 한두번의 고비가 따라다닐 것이다. 긴 인생 버티려면 간장도 보호해야 한다. 이제 겨우 딸하나를 치워낸 후배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조급해 말고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대답했다. 후배는 “로또라도 사야 일확천금을 꿈꾸지요!”라며 황망한 표정을 지우려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맞다. 세상에 마음만으로 이뤄지는 일은 없다. 장작을 패든 마늘을 썰든 머리에 든 그것을 꺼내 몸을 작동시켜야 무슨 일이든 벌어질 것이다.


영화 노리미트(No limit)는 수중 다이버 오드리 메스트레(Audrey Mestre) 실화를 다룬 영화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최고의 잠수 기록을 보유한 파스칼 고띠에를 만나 수중 다이빙의 세계로 빠져 든다. 놀라운 재능을 선보이며 기록을 갱신하던 그녀는 2002년 10월 세계 기록에 도전하다 도미니카의 바다 속에서 숨을 거둔다. 171m의 바닷속에서 그녀의 생명줄인 리프트 백(Lift Bag)이 팽창되지 않아 8분 넘게 심해에 잠기고 만 것이다. 다이빙을 전수해 준 고띠에가 고된 훈련을 힘들어 할 때마다 들려준 말은 “난 언제나 운명이 내게 날린 펀치까지 되돌려 줬었지”였다. 그 말은 지친 그녀의 의지를 되살려 냈다. 하지만 그런 열정이 그녀의 목숨까지 살려내진 못했다. 우리의 인생은 통제 불능의 사건과 사고로 가득하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세상은 나 없이도 늘 잘 돌아갔다. 그러니 쓸데없는 불평이나 불만, 집착은 부질없는 일이다. 수연무착(隨緣無著), 인연에 따라 응하되 들러붙지는 말아야 한다. 싫다고 떠나는 애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어봐야 모양만 빠질 뿐이다. 여래여거(如來如去), 인연이 오면 맞고, 인연이 다하면 손을 흔들면 된다. 그리고 우리에겐 늘 다음의 생이 기다린다. 그 걸위해 하나를 더 보탠다. 구체적인 이력과 경력을 준비하라는 말이다. 실의의 시간이 내게도 여러 번 있었다. 날 데려간 사람이 짤려서, 날 데려간 회사가 팔려서, 다른 사람의 대타로 희생됐다. 사람과 여행이 위로가 되주었다. 그러나 낙담의 늪에서 꺼내주고 신발끈을 다시 묶게 해 준 것은 평소에 쌓아 둔 자격증이었다. 정보경영학 박사 학위와 7년간의 칼럼 기고와 발상과 설득에 관한 네 권의 책이 그것이다. 범인을 잡는데도 노력을 보여주는데도 물증이 필요하다. 나부터 날 도와야 세상의 인연도 따라온다. 기회는 평소에 행동으로 준비하는 자에게 부여된다. 잊지 말라. 오드리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열정이 아니였다. 수면위로 몸을 밀어 올려줄 공기주머니, 리프트 백이었다.

 

김시래 동서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객원교수, 롯데자이언츠 마케팅자문위원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