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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짜장면은 어떤 손으로 비벼야 제 맛일까?

[이희승의 영화 보다 요리] 황정민이 왼손으로 비비는 '전매특허 싸장면 흡입신' 군침 가득
수많은 작품에서 등장하는 서민음식, 50년간 50배 급등

입력 2022-11-24 18:30 | 신문게재 2022-11-2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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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동’의 한 장면. 짜장면을 먹으며 가출뒤의 허기짐과 외로움을 달래는 박정민. (사진제공=NEW)

 

죽으려고 한강에 뛰어 들었는데 눈을 뜨니 밤섬이다. 도시의 불빛이 코 앞인데 아무리 소리를 쳐도 소음에 묻힌다. 누군가 한가롭게 그 곳을 들여다 본다면 사람 하나쯤은 금방 발견할 위치인데도 서울의 삶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아서 일까. 자동차 경적과 덜컹거리는 철교를 정확하게 달리는 전철, 그 외 잡다한 소음과 각종 쓰레기로 뒤덮힌 무인도에서 남자는 점차 초췌해져 간다.

기회만 된다면 삶을 그만 살고 싶었던 그를 일으킨 건 아이러니하게도 짜장면 한 그릇이다. 정확히는 짜장 가루와 밀가루의 조합. 침 속 소화효소인 아밀라아제가 면의 탄수화물과 만나 짜장과 섞일 때의 단맛은 한국인에게 김치 이상으로 소울푸드니까. 그는 결국 새똥에 담겨있을 씨앗에 희망을 품고 밤섬 한 곁에 새똥을 모아 심는다. 기적처럼 그 곳에서 옥수수가 자라나고 그 열매를 모아 면을 만들기까지 주인공 김씨(정재영)는 그렇게 삶의 희망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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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만 해도 사건의 진범이 잡힐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배우들. 추궁과 고문을 멈추고 ‘수사반장’을 보는 짧은 신이 등장한다. (사진제공=CJ ENM)

 

‘살인의 추억’에서도 짜장면은 살아있는 낭만이다. 미제 성폭행 사건을 수사하다 말고 당시 인기 프로그램인 ‘수사반장’을 보는 시간에는 범인도 경찰도 없다. 짜장면을 비벼 먹는 형사와 동네에서 가장 만만한 바보이자 용의자가 “향숙이?”만을 외치다 말고 단무지를 씹는 장면은 ‘살인의 추억’이 가진 가장 따듯한 장면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먹방배우’로 하정우를 꼽지만 짜장면 만큼은 황정민을 따라오지 못한다.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검사외전’에서 왼손으로 척척 비벼먹는 연기는 그가 짜장면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준다. 비록 몇초에 그치지 않지만 그 짧은 시간에 대부분의 면이 입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 황정민이 촬영 당시 굉장히 허기졌거나 평소에도 짜장면을 즐겨먹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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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사외전'에서 짜장면을 먹는 황정민.

 

짜장면은 대표적인 서민음식이다. 오죽하면 한예슬을 스타덤에 올린 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상속녀가 처음으로 맛본 서민음식으로 나올까 싶다. 당시 “어린이들, 한번 지나간 짜장면은 다시 오지 않아” 같은 주옥같은 대사를 유행시키며 ‘나상실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한예슬은 이 작품을 통해 도도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벗고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가족 사이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녀의 말 못할 소원을 다룬 ‘나는 보리’에서도 짜장면은 특별한 음식이다. 어부인 아빠와 주부인 엄마, 초등학교 축구부이자 개구쟁이 남동생을 보면 보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불꽃놀이를 보러 가고 수박을 먹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건 모두 함께하지만 유일하게 친척들과 이웃의 전화를 받고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킬 때마다 보리는 소외감을 느낀다.

영화에서 보리는 “집에 있으면 혼자인 거 같고 엄마랑 아빠랑 정우(남동생)를 보고 있으면 되게 행복해 보여”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도 다른 가족처럼 소리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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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마동석은 전직 조직폭력배지만 신분을 감추고 중국집에서 면 뽑는 기술을 연마한다. (사진제공=NEW)

 

국내 짜장면의 역사는 약 130년 전인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3년 강제 개항된 인천항은 1890년대를 전후해 외국과의 무역이 대폭 늘어났다. 배에서 화물을 싣고 내리는 수많은 짐꾼과 인력거꾼도 급증했는데 이들은 별다른 재료 없이 춘장에 수타면을 비벼 즉석에서 간편하게 만든 ‘자지앙미옌’(炸醬麵)을 먹었다. 짠맛을 줄이고 캐러멜 소스로 단맛을 더해 한국인의 입맛에 더욱 맞게 변형된 건 1950년대에 들어서다.

짜장면 가격 변화는 물가를 가늠하는 대표적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전문 가격조사기관인 한국물가정보가 발간한 ‘종합물가총람’에 따르면 서민 음식 대표주자 격인 짜장면은 지난 50년간 50배 가까이 가격이 뛰었다. 1970년 한 그릇에 100원 수준이었으나 2020년에는 5000원 선을 돌파하더니 2022년에는 6000원 이하인 곳은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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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시표류기’는 개봉당시 주연을 맡은 정재영이 관객들에게 쏘는 짜장면 이벤트를 펼치기도 했다. (사진제공=시네마서비스)

 

삼선짜장이나 간짜장 같은, ‘기본 짜장’ 외에 더 맛있게 만들려고 애쓴 짜장면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경상도에서는 당연히 올려준다는 달걀프라이도 뭔가 ‘정석의 짜장면’과는 거리감이 있다. 계란의 단백질이 짜장면 특유의 맛을 덮는 듯한 느낌이랄까. 짜파게티나 짜슐랭같은 집에서 끓여먹는 것도 선호하지 않기에 당연히 짜파구리에도 별다른 매력을 못 느낀다.

하지만 누군가 비벼주는 짜장면에는 설렌다. 인기리에 종영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준완(정경호)이 친구 여동생인 익순(곽선영)에게 “엄마도 안 비벼준다”며 무심히 건네는 모습을 보며 다시금 불타오르는 연애세포를 느꼈다. 후배들이 썸녀에게 고백을 고민할 때마다 거창한 이벤트보다 이 방법을 적극 권하는 이유다. 그 중 두 쌍이 커플로 이어진 걸 보면 사랑의 기술 역시 클래식한 게 오래가는 법인 모양이다. 지금 나에게 짜장면은 아이들이 먹기 좋게 가위로 잘라 덜어내는 한끼 음식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가장 맛있는 짜장면은 이사하는 날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흡입하는 음식이다. 비닐을 벗기지 않은 채 슥슥 돌리면 자동적으로 비벼지는 짜장면이라면 더욱 좋다. 서울에 내 집이 생기기 전까지 ‘그 맛’은 여전히 지속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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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각배급사)

 

◆짜장면 맛있게 먹는법

▷개인의 취향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일단 짜장면은 짜장 소스가 부족하면 안된다.

간혹 젓가락을 양 손으로 나눠쥐고 면을 양쪽으로 섞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남자들이 당구장에서 불기 전, 한입에 ‘털어넣기’에 용이한 방법이다. 이렇게 비비면 면이 하나의 공처럼 동그랗게 말리기 때문.

아래에서 위로 섞는 방법은 양념이 면에 잘 묻고 나중에 건더기가 많이 남지않아 추천한다.

먹는 속도가 느리다면 면 안에 고춧가루를 섞는 것도 좋다. 짜장면에 넣으면 되려 깔끔한 매운맛을 내고 잘 불지 않는다.

간혹 비비는 시간을 놓쳤다면 짬뽕 국물을 몇 숟갈 넣는 것도 추천한다. 짬뽕의 기름기가 짜장소스를 더 윤기나게 해 잘 비벼지는 기적을 만든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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