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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천원을 경영하라> 박정부

입력 2022-11-2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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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

 

‘국민가게’ 다이소의 창업주 박정부 회장이 들려주는 실패와 성공의 자서전이다. 마흔 다섯의 늦깎이 창업자가 어떻게 1000원 짜리 물건을 팔아 연 매출 3조 원 대 기업을 일굴 수 있었는지 알게 해 주는 책이다. 1000원의 가격보다 최소 2배의 품질이 나와야 매장에 물건을 내놓았다는 그의 집요한 품질경영 마인드는 큰 귀감이 된다. 그의 소박한 꿈은 ‘한 번 온 고객이 다시 방문하는 것’이다. “영원히 1000원짜리 상품을 팔겠다”는 박 회장은, 야외에 온 가족이 함께 다이소 제품을 경험할 수 있는 ‘가족쇼핑공간’을 만드는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


* 1000원의 ‘힘’ - 저자는 ‘1000원’의 특별함을 얘기한다. 많이 사용하다 보니 다른 지폐에 비해 너덜너덜하고 험한 꼴을 많이 보는 지폐지만, 마치 굳은 살이 박이고 손일 많이 하신 어머니의 주름진 손과 같다며 애정을 드러낸다. 천 원이야 말로 성실함이 무엇인지, 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에게 천 원이란 매 순간 흘려야 하는 땀방울이고, 그 땀방울이 만든 성실함이자 정직함이란다. 기술이나 요행으로 되는 일이 아니며, 정직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다면 절대 얻을 수 없는 성취라는 것이다.

* 가장 정직한 돈 ‘1000원’ - 저자는 “고객의 입에서 ‘이게 어떻게 1000원이지’하는 탄성이 절로 흘러나올 때 비로소 회사의 가치가 구현된다”고 말한다. 행인에게 1000원과 신상품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만일 1000원을 선택하면 그 상품은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보고 원점에서 다시 개발한다고 한다. 놀라운 가치로 고객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것이 저자가 추구하는 다이소의 진짜 모습이다. 현재 다이소에선 1000원 상품이 51%에 달한다. 그 돈으로 1만 5000개 상품을 살 수 있다. 2000원 이하는 80%다. 2만 4000여 가지 물건을 살 수 있다. 아무리 비싸도 5000원을 넘지 않는다. 오늘날 3조 원의 매출을 지탱해 주고, 1500여 개 점포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000원 1장’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 가격은 지키고 품질은 올린다 - 다이소는 20년 넘게 면봉과 종이컵, 물병, 주방 고무장갑 등 주요 생필품의 가격을 1000원으로 유지하고 있다. 500원과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등 가격은 딱 6가지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아무리 원부자재 값이 올라도 균일가를 유지하며 품질은 더 좋게 개선했다. 저자는 “인플레이션으로 1000원이 100원 가치도 안된다 해도, 그 가치에 맞는 상품을 계속 개발하는 것이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며 “균일가는 아성다이소의 핵심 사명”이라고 말한다. 원가가 올랐다고 상품 가격을 덩달아 올리기보다는 유통과정의 거품을 없애고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자신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마진 최소화를 통한 박리다매 전략으로 어려운 인플레이션 시대를 이겨가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 ‘마진’이 아니라 ‘만족’이 먼저다 - 다이소의 초창기 마진률은 1~2%였다. 대부분 기업이 제품 원가에 적정 이윤을 붙여 판매가를 결정했지만, 반대로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판매가격을 먼저 결정한 후 상품을 개발했다. ‘싸고 좋으면 고객은 반드시 온다’는 확신이 있었다. 복잡함을 빼고 소비자가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속성만 남기고는 원가를 높이는 불필요한 것을 제거했다. 제조업체 공장을 찾아가 생산 단계 축소나 라인 신설 등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았다. 가격보다 최소 2배 이상의 가치를 갖는 제품을 만들어줄 곳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루미낙’이라는 고품질 브랜드의 프랑스 ‘아크’사를 찾아가 유리잔을 30센트에 맞춰달라고 해 ‘메이드 인 프랑스’만 표기해 팔기도 했다. 다이소의 목표는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고객만족 극대화’다.

* 마흔 다섯에 창업전선에 뛰어들다 - 저자는 1980년대 중반에 불어닥쳤던 민주화 열풍에 ‘선의의 피해자’였다. 저자가 다니던 공장에 노조가 결성되고 투쟁과 파업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생산 책임자였던 그에게 모든 책임이 부과됐다. 견디기 힘든 모멸감을 참다 못해 마흔 다섯의 나이에 사표를 썼다. 마침 동생이 하던 일본 해외연수 사업을 돕다가 아성다이소의 전신인 ‘한일맨파워’를 설립하게 된다. 대기업의 일본 연수를 돕는 일이었으나, 일본을 속속 경험하면서 점차 자신이 젊었을 때 꿈꿨던 ‘무역상’의 희망을 되살리게 된다.

* 첫 납품 불량에서 얻은 일생의 교훈 - 연수사업과 무역을 병행하다 일본의 한 주류 도매업체로부터 첫 주문을 받았다. 고객 사은품으로 제공할 유리 재떨이 5000개였다. 우여곡절 끝에 납품을 마쳤으나 담배 불에 재떨이가 깨지는 불량이 나왔다. 후공정 열차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가격만 생각하다가 품질을 마지막까지 체크하지 못한 실수였다. 몇 푼 아끼려다 불량이 나왔고, 그로 인해 전량 폐기라는 결과가 빚어졌다. 첫 거래에서 단단히 신고식을 치른 그는 다시 한번 ‘작은 것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작은 실수와 무식함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 “열정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 일본에 100엔숍이 생기던 당시, 저자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엔 대부분 주문상품을 한꺼번에 현지 창고에 배달했는데, 저자는 직원을 일본에 상주시켜 직접 통관 후 각 매장까지 일일이 배달해 주었다. 그러면서 주문했던 상품에 문제는 없었는지, 소비자 반응은 어땠는지를 꼼꼼히 체크했다. 사업 시작 후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드디어 단독으로 컨테이너 1대를 채울 만큼의 물량을 확보했다. 자식과 가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박감, 여기서 실패하면 끝이라는 생각들이 앞에 놓인 일에 초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는 “내게 열정이란 간절함이었고,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이의 초집중 같은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간절하기만 하다면, 열정에는 만기도 유효기간도 없다”고 말한다.

* 한국 최초의 균일가숍을 구상하다 - 저자는 당시 우리보다 월등히 국민소득이 높은 일본이, 우리 돈 1000원에 불과한 100엔짜리 상품으로 알뜰소비를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내 미국 스페인 등에서 이미 균일가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일상 소모품은 저렴하고 알뜰하게 구매하는 합리적 실용적 소비문화가 형성된 덕분이었다. 외형이나 자존심보다는 가격 대비 품질과 실속을 훨씬 중시하는 현명한 소비자들이 급증하는 추세였다. 자연스럽게 저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균일가숍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1992년에 ‘아성산업’을 설립한다. 어머니가 지어준 아성(亞成)은 ‘아시아에서 성공하라’는 뜻이었다. 뒤늦게 창업한 아들이 성공하길 바라는 어머니의 기원과 염려가 담긴 사명이었다.

* 야노 회장과의 운명의 만남 - 저자는 한일맨파워 설립 후 1년 정도 후인 1988년에 오사카에서 열린 100엔숍 연합회 행사장에서 야노 히로타케 다이소산교 회장을 처음 만났다. 당시만 해도 일본 다이소는 큰 회사가 아니었다. 야노 회장은 7번의 사업을 실패하고 8번째 좌판부터 다시 시작해 재기 중이었다. 그는 “또다시 실패하면 할복자살하고 말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닐 정도로 지독한 사람이었다. 특히 물건 보는 눈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다행히 그의 요청으로 아성산업이 다이소에 물품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다이소도 무섭게 성장한다. 1991년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며 ‘잃어버린 10년’의 장기불황이 시작된 것도 일본 소비자들이 저가 생활용품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 독점공급 요청… 헷징으로 선택한 한국 출점 - 다른 업체들이 100엔이라는 판매가에 맞추려 더 싼 제품을 찾아 다닐 때, 저자는 더 좋은 제품을 찾아 세계를 누볐다. 덕분에 품질만큼은 어디에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덕분에 야노 회장과의 협업도 25년이나 가능했다. 야노 회장이 견디기 힘든 몹쓸 소리를 할 때도 저자는 ‘언젠가 일본 다이소보다 더 나은 균일가숍을 내겠다’며 스스로를 담금질했다. 다이소산교와 거래를 시작하고 5년쯤 되었을 때부터 야노 회장은 아성 제품을 다이소에 독점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배타적 거래를 요구할 만큼 제품력을 믿는다는 얘기였지만, 거래가 깨졌을 때의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최소한의 비상대책이 필요했다. 저자는 헷징책의 하나로 드디어 한국에 균일가숍을 차리는 방안을 찾게 된다.

* 조기 성공 한국형 균일가숍 - 1997년 천호동에 문을 연 13평 규모의 아스코이븐프라자가 한국형 균일가숍의 시작이었다. 일본 경험 덕분에 성공 자신감도 컸다. 1호점을 낸 지 4년만인 2001년 초 100호점을 돌파했다. 그 과정에서 야노 회장의 지분투자도 받게 된다. 당초 독점 공급을 요청받았을 때 최소한의 안전 장치로 한국 균일가숍에 대한 지분투자를 요청했던 것이 3년이 지나 성사된 것이다. 다이소산교는 아성산업에 4억 엔을 투자해 34% 지분을 얻었다. 그리고 양 측은 아스코이븐프라자라는 어려운 이름 대신 ‘다이소’ 브랜드를 쓰기로 한다. 나중에 저자는 “100호점이나 낸 브랜드를 다이소로 덜컥 변경한 것은 성급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고 토로한다. 그 만큼 이 이름 때문에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 “아성다이소는 일본기업이 아닙니다” - 2013년쯤 ‘다케시마 후원기업’이라는 리스트가 돌면서 아성다이소는 일본 국적 기업 논란에 휩싸인다. 논란을 잠재우려 독도사랑운동본부와 후원계약을 맺었더니 이번에는 일본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났다. 저자는 “다이소산교는 단지 전략적 사업 파트너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다이소’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한 것이 오해를 불렀다고 설명한다. 다이소산교가 지분을 이유로 경영에 참여하거나 매장운영에 관여한 일이 전혀 없다고 항변한다. 브랜드 사용료 지불도 없고, 한국의 ‘아성다이소’에 대한 의장등록도 아성산업이 갖고 있다고 말한다. 주요주주이기에 판매수익금 배당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3회 정도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투자를 받은 후 10여 년은 고작 1~2% 이익을 남기다 보니 배당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 ‘1000원’을 위한 ‘1000억원’의 투자 - 아성다이소는 2000년 초 100개 안팎이던 매장 수가 2008년에는 500개를 돌파할 정도로 성장을 지속했다. 하지만 물류비용 증가로 영업이익률이 1%대로 떨어졌다. 1000원대 가격 유지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저자는 역발상으로 1200억을 투자해 용인시 남사읍에 연면적 3만 2000평, 축구장 15개 크기의 초대형 최첨단 물류창고를 짓기로 경정한다. 초기엔 애물단지였다. 땅을 파다 바위층이 발견되어 공사기간이 늘어 비용이 추가됐다. 완공 후에는 운영 시스템을 몰라 물류대란까지 야기했고 덕분에 2013년에 26억의 영업손실을 냈다. 실적이 안 좋은 직영점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덕분에 가까스로 다시 매출 성장세가 이어졌다. 그리고 4년 후 저자는 2025년까지 물류역량을 확보한다는 목표 아래, 수출까지 고려해 부산에 남사 보다 2배 많은 2500억을 들여 부산 물류허브센터를 추가 건립키로 결정한다. 축구장 20개 크기로 처리물량도 남사의 최대 2배다.

* ‘마진’ 보다 ‘업의 본질’에 충실한 역주행 회사 - 아성다이소는 가격을 먼저 정하고 상품을 구현한다. 마진을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반대이기에 ‘역주행 기업’이라 불린다. 1997년 첫 매장 오픈 후 연평균 20~30%씩 성장했다. 남사물류센터 완공 이듬해인 2014년에 매출이 1조원을 넘었고 2018년에 2조원, 2021년에는 3조원을 달성했다. 매월 600개 이상의 신상품을 개발하고 전국 150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성공 요인을 균일가 가격정책, 상품개발능력, 물류센터 등으로 흔히 설명하지만 저자는 “‘생활용품 균일가숍’이라는 업의 본질에 충실했던 것이 가장 핵심 성공요인”이라고 말한다. 균일가 사업의 핵심은 상품과 가격이며, 늘 고객을 중심에 놓고 어떤 상품과 가격으로 고객을 만족시킬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 일본에 건전지를 반 값에 팔다 - 일본 편의점과 100엔솝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 중 하나가 건전지였다. 편의점에서 1개에 100엔, 100엔솝에선 2개 묶음으로 100엔에 팔렸다. 저자는 국산 건전지를 한 묶음에 4개씩 100엔에 팔기로 한다. ‘썬파워’(현재 벡셀)가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으나 함께 공장과 현장을 돌며 머리를 맞댄 끝에 단가를 맞췄다. 문제는 품질이었다. 일본 건전지시험연구소에 성능 분석을 의뢰해 보니 대부분 일제보다 수치가 낮았다. 추가 품질 보완을 거쳐 만족스러운 품질을 얻자 곧바로 100만 세트를 발주했다. 한국 건전지가 처음 일본에 수출된 것이다. 일본 소매시장에서는 난리가 났다. 특히 편의점은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갑자기 폭발 등 석연치 않은 품질 문제가 불거졌다. 특허 소송까지 휘말리며 한 동안 제품 생산이 멈추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도 건전지는 다이소의 효자상품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 상품에 ‘혼’을 담아라 - 소비자들은 균일가와 저가를 동일시한다. ‘저가는 곧 싸구려’라는 인식이다. 저자는 “아성다이소의 모토는 고객에게 놀라운 가치로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렴한 가격에 신뢰할 수 있는 품질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뒷받침한다. 늘 “상품에 혼을 담으라”고 강조한다. 상품 하나 하나에 정성을 들여야 원하는 상품이 나오지, 대충 만들면 쓰레기밖에 안된다고 말한다. 집중과 몰입이 없으면, 즉 혼을 불어넣지 않으면 불량품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 번도 이 상품을 팔아 얼마를 넘겨야지 하는 생각으로 설계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좋은 물건을 볼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품을 1000원에 팔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철저한 품질관리와 디자인 관리가 그래서 필수다. 특별히 광고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상품력으로 승부를 건다. 가격 할인이나 끼워 팔기, 판촉 행사도 없다. 그저 입소문이 최고의 광고라고 생각한다. 매장이 곧 광고다.

* ‘다이소 팬덤’을 만들어내다 - 다이소 쇼핑의 재미에 푹 빠진 이들을 ‘다이소족’이라고 부른다. 다이소만 보면 무작정 들어가 매장을 배회하는 ‘다이소 증후군’,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다이소 개미지옥’이라는 말도 생겼다. ‘다이소 털이범’이란 커뮤니티도 생겼다. 3000원짜리 미니 세탁기 장난감을 소주와 맥주를 섞어 폭탄주를 만드는 ‘소맥 제조기’로 활용하는 고객도 있다. 어린이를 위한 기획 상품이 창의적으고 능동적인 고객들 덕분에 ‘다이소 팬덤’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다이소 고객의 30%는 20대다. 30대가 25%, 10대와 40대가 각각 20%다. 50대 이상은 5% 정도다. 젊은 세대는 다이소를 ‘탕진잼(탕진과 재미)의 최고 성지’로 받아들인다. 적은 돈으로 맘껏 쇼핑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푼다. 다이소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와 인지도가 가장 높은 MZ세대는 다이소를 ‘굿즈 맛집’으로 여긴다. 다이소는 10대 알파세대의 천국이기도 하다. 용돈으로 구매할 상품이 넘치기 때문이다.

* 건설업 외도, 그 실패의 값진 교훈 - 2000년대 초반 물류창고 부지가 개발 계획에 의해 수용되고 대토로 상업용지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자 엉뚱한 욕심에, 손 쉽게 돈 버는 주변을 보고는 팔자에도 없는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고민하던 차에, 사업 다각화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시행사를 만들어 아파트를 짓고 직접 분양까지 했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간신히 분양은 마쳤지만 상가 미분양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 동안 벌어뒀던 돈을 다 까먹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저자는 그후 건설 관련 사업은 모두 정리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 단 한번의 외도와 실패를 통해 ‘한 눈 팔지 않고,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게 된다. 이것이 곧 그의 좌우명이 되었다. M&A 등으로 몸집을 불리는 것도 경영전략의 하나겠지만, 핵심사명을 한 순간도 잊지 않는 ‘본질 경영’의 중요성을 체득한 큰 계기가 되었다.

* 문제도, 해법도 항상 ‘매장’에 있다 - 13년 동안 생산현장의 책임자로 지냈기에 저자는 누구보다 현장의 중요성을 잘 안다. 그래서 늘 현장을 챙기라고 말한다. 상품개발도, 물류배송도 모두 현장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장이 알려주는 사소한 징후나 전조증상을 방치할 때 문제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때문에 그가 자주 하는 매장 순회는 순회 건강검진과 같다. 그는 매장을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나운 개가 지키는 주막에는 손님이 없어 술이 시어진다’는 구맹주산(拘猛酒酸) 고사성어를 언급한다. 불친절한 직원, 무관심한 직원이 모두 손님을 몰아낸다는 것이다. 물류센터에 세차시설을 갖춰 무료로 세차하라고 한다. 다이소 브랜드를 달고 다니는 동안은 다이소의 얼굴이니, 늘 깨끗하고 청결하라는 주문이다. 매장도 매일 갈고 닦으라고 채근한다. 상품 진열과 정리정돈, 서비스 등 기본이 잘 지켜지는 매장이 고객이 자주 가고 싶은 매장이라는 것이다.

* 상품 1개 불량은 고객에게 100% 불량이다 - 제조업체는 대량생산 과정에서 불량 하나 정도는 으레 나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저자는 “1000원짜리 상품은 있지만 1000원짜리 품질은 없다”고 말한다. ‘싸기 때문에 품질이 나빠도 된다’는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구매한 상품 1개가 불량이면 고객에게는 100% 불량이라는 것이다. 비싼 제품이 불량이면 고쳐서 쓰지만, 싼 제품이 불량이면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고 말한다. 특히 회사 전체의 신뢰를 무너트리는 일이라고 질타한다. 매장은 품질이 고객에게 전달되는 최후 관문이라며, 매일 아침 매장 담당자들이 ‘최후의 품질 검사원’이 되어 철저히 불량품을 골라내라고 독려한다. 저자는 “우리 균일가 업의 철학은 ‘하나’를 파는 것”이라며 “우리는 그 하나가 불량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검사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가성비 가심비를 뛰어넘는 ‘체감품질’ - 다이소는 2016년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가성비’와 ‘상품구성’에선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디자인에서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즉시 저자는 그 해를 ‘디자인 원년’으로 선포하고, 트렌디한 컬러를 보강하고 상품 패키지를 좀 더 직관적으로 디자인하는 변신을 꾀했다. 특히 고객이 모양이나 기능, 사용법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패키지에서부터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디자이너가 상품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며, 상품개발부와 디자인부서를 같은 공간에서 일하도록 했다. 저자는 “품질이란 가성비와 가심비가 모두 충족된 상태”라고 말한다. 패키지 하나에도 고객이 감동할 고객 체감 품질, 고객 감동 품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품질이란 가격에 비해 최소한 2배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 그래서 한번 온 고객이 다시 방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판매품질의 향상이야 말로 아성다이소의 지속가능한 원동력”이라고 자부한다.

* “M&A 보다는 중기와의 상생협력” - 저자는 고객의 요구와 직원 및 협력업체가 모두 만족할 때 비로소 ‘품질’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중요시한다. 협력업체가 실수했을 때 거래 중단이 가장 손쉬운 해법이지만, 오히려 머리를 맞대고 문제 핵심을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찾도록 노력한다. 그에게 제조업체는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동료이자 파트너’다. 다이소 상품이 저가라 대부분 중국산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은 국내 협력업체 제품이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업체당 연평균 거래액이 2017년 기준으로 10억 1000만 원에 이른다. 다이소가 성장할수록 국내 중소기업도 동반성장하는 구조다. 어느 거래처보다 많은 물량을 구매해주고, 창업 이후 변함없이 100% 현금결제해 준다. 거래 국내 제조업체만 900곳이 넘는다. 그래서 아성다이소는 그 흔한 인수합병도 생각하지 않는다. 고마운 중소기업들과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 “보이게 일하고 소통하라” - 다이소에선 소통과 협력이 필수다. 앞 뒤 공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로 보이게 일해야 누구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지 알 수 있다. 저자는 “보이게 일하는 것이야말로 소통과 협력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다이소 본사 사무실에는 파티션이 없다. 회장실과 대표이사실 외엔 임원실도 없다. 회장실도 문이 늘 열려있다. 보이게 일하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으로 저자는 ‘주변에게 느끼게 일하는 것’을 꼽는다. 서로를 보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라면, 상대의 일과 고민을 느끼는 것은 협력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또 직원들에게 “이유를 답으로 말하지 말라”고 말한다. 안 되는 이유는 넘치도록 많기 때문이란다. 이유를 대면서 문제가 생긴 순간을 넘어가려는 것은 일을 안 하겠다는 것과 같다며 책망한다. 그는 “일의 답은 문제해결이고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 ‘국민가게’, 다음은 ‘가족 복합쇼핑몰’ - ‘국민가게 다이소’는 고객이 지어준 이름이다. 꼭 필요한 생활용품처럼 꼭 필요한 국민가게가 되라는 의미였다. 아성다이소 임직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고객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행복산업’이라고 믿는다. 힘들어 하는 국민들에게 다이소가 힘이 되어주는 가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저자가 꿈꾸는 미래의 다이소는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건전한 쇼핑 공간이다. 교외 넓은 매장에서 그동안 개발한 모든 상품을 진열해놓고 마음껏 취향대로 고를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동안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상품들도 너무 많고, 무엇보다 나들이의 즐거움과 휴식을 한 번에 해결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 쇼핑을 레저처럼 즐길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단다. 건강하고 기성비 높은 라이프스타일을 가족 모두에게 제공하는 그런 복합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저자의 작은 소망이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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