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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가난 '맞짱' 뜨고 변호사 성공, "이젠 업계 새바람 일으켜야죠"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신태호 법무법인 한틀 대표 변호사

입력 2018-03-12 07:00 | 신문게재 2018-03-1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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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호 한틀 대표변호사

“제 인생이야 말로 열정이 있는 삶이란 주제와 딱 맞을 수도 있겠군요.”

‘법무법인 한틀’의 대표변호사 신태호씨는 자신의 자란 환경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대구의 시골마을,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슬하에서 3형제 중 막내로 어렵게 자랐습니다. 아버지 병구완으로 인해, 집에서 겨울철 따뜻한 불 한번 때보기 어려웠습니다. 공부는 일찌감치 접을 수밖에 없었고, 배움의 중요성을 가족 중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신태호 변호사의 소년 시절은 추위와 가난에 앞날이 깜깜했다. 

 

그런 그에게 배움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 준 것은 여느 때와 다름없던 수업시간이었다. 운 나쁘게 선생님에게 걸려 칠판 앞에 섰다. 공부에 재미를 붙일 새 없이 마음을 접었던 터라, 친구들이 기세 좋게 답을 써내려가는 것을 옆에서 볼 뿐이었다. 짧은 시간이 꼭 한나절 같았다. 고개는 절로 숙여졌고,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걸음을 멈추게 한 건 “니 어딜 들어가려 하노, 끝까지 함 해봐라”라는 선생님의 한 마디였다.

 

그는 공식도 몰랐다. 다만 옆에 친구들이 이미 써놓고 간 수식을 필사적으로 보고 베낄 수밖에 없었다. 식은땀이 등허리를 타고 흘렀고, 교실엔 침묵이 감돌았지만 누군가 내가 해낼 것을 믿어준다는 것에 가슴이 떨렸다.  

 

그동안 그에게 그런 기회를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답을 적고 분필을 내려놓았을 때 선생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봐라, 니는 지금이 아니더라도 공부하면 되겠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그 한 마디였다. 신 변호사는 “누군가를 믿어준다는 것이 그렇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고 밝혔다.  

 

문정 한틀 로고
한틀 외관 전경

가난한 자신의 현재가 아닌, 자신의 미래를 믿어준 선생님의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놓았던 책을 잡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가난으로부터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마음을 먹으니 자연스럽게 열정에 불이 붙었다. 공부는 재밌었고 성적은 점점 올라서, 전교에서 뒤에서 세는 게 빨랐던 성적은 전교 20등까지 수직 상승했다.


그는 “지금도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것의 힘을 믿습니다. 지금 함께 일하시는 변호사님들이 다섯 분 계시지만 늘 강조합니다. 스스로를 믿어라. 함께 하는 다른 변호사님들을 믿어라. 어려운 사건이면 함께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 늘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신태호 변호사에게 가난이란 것은 늘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갖은 노력 끝에 한양대학교 법학과(98학번)의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첫 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해야 했다. 학교에서 장학생이 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고 기숙사도 얻을 수 있었기에 더 노력했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고 여겼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도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지만, 그럴수록 더 오기가 생겼다. 체념하고 싶을 때마다, 선생님이 주신 믿음을 생각했고 결국 합격 이후에 지금에 이르게 됐다.

그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이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을 대하는 제 자세이기도 하고 나아가 법무법인 한틀의 모든 변호사들의 자세이기도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3개의 도시에 여러 사무실을 가진 법무법인 한틀이지만 처음 시작은 대표변호사 신태호가 직접 쓸고 닦던 의정부의 작은 개인 사무실로부터 시작됐다.

‘사람들이 쉽게 다가올 수 없는 사무실은 죽은 사무실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신 변호사는 ‘1층의 법무사 사무실, 2층의 변호사사무실’이라는 당시만 해도 많은 변호사들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뒤로 하고, 의뢰인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최초 사무실을 개업했다.

그는 사무실은 단순히 변호사들만의 업무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건이 지속되는 동안 계속 의뢰인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사건의 해결을 위해 함께 하는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의뢰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1층을 중심으로 사무실을 확장했고, 더불어 각 의정부, 부산, 문정동 동부 사무실을 개소할 당시 사무실의 분위기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러한 의뢰인과의 접점·신뢰를 중요시하는 부분이 신태호 변호사가 비교적 짧다면 짧은 기간에 1000건이상의 수임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사무실에는 사무장이 없다. 최초 상담과 수임부터 사건을 종결까지 의뢰인에게 신뢰를 주고 함께 하는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그 진실성을 알아주고 그런 사람들이 다른 의뢰인을 소개시켜줌으로써 자연히 회사 규모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신 변호사는 "실제 사무장이 없이도 기존 의뢰인의 80%정도가 자신의 다른 사건을 맡기거나, 다른 의뢰인을 소개시켜주십니다. 그것이 저희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여러 의뢰인의 소개를 통해 다양한 사건을 해결했다. 특히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제초제등을 먹인 ‘제초제 살인사건’과 SBS 방송 '그것이 알고 싶다'에도 방영된 ‘여우고개의 비극 의심과 증거사이’의 사건 등은 그가 자신의 변호사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됐다고 한다. 

수많은 사건을 하면서 자연히 사무소도 확장했고, 함께 하시는 변호사들의 수도 늘었다. 규모가 늘었지만 사무장을 고용하지 않는 그의 원칙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 함께 일하는 변호사들도 그의 이러한 원칙에 100% 동의하고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다. 

 

법무법인 한틀은 별산이 아닌 공산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즉, 하나의 사건에 있어 한틀 변호사 전부의 역량을 쏟아 부어 협업을 통해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는 체제인 것이다. 

의정부의 작은 반지하 사무실에서 시작해 의정부, 부산, 서울 동부지방법원 앞 문정동 등 3개의 사무실, 6명의 변호사가 함께 하는 규모로 키워낸 것은 결국 의뢰인과의 신뢰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그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성장환경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보수적인 변호사업계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려 한다. 

 

사무장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을 책임지고자 하는 진취적인 젊은 변호사들과 함께하는 법인, 이러한 변호사들을 통해서 합리적인 수임료 측정으로 법률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정말 필요한 법률서비스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저의 뜻을 함께 하는 변호사들과 함께 궁극적으로는 전국 주요법원이 있는 도시 어디에서든 같은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앞으로 한틀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채훈식 기자 ch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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