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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자연기록가 전소영 작가…“풀 한포기에 세상이 담겨있어요”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연남천 풀다발’, ‘적당한 거리’ 저자

입력 2020-09-28 07:25 | 신문게재 2020-09-2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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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상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저서 ‘월든, 혹은 숲속의 생활(Walden, or Life in the Woods)’에서 “하루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아주 사소한 부분들까지도 숭고하고 소중한 시간에 음미해볼 가치가 있도록 만들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 직면해보기 위해’ 숲 속에 통나무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았다.

벼가 익어가며 황금색 물결이 일렁이고 아름다운 임진강이 흐르는 파주 문산읍에서 만난 전소영 작가도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특히 그의 작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자연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 요즘 우리에게 ‘그리운 초록’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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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영 작가 (출처=전소영)

 


◇ “자연의 존재를 기록해요”

전 작가는 지난 2008년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작가활동을 해오고 있다. 다수의 단체전을 비롯해 올해 당진에 있는 아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직접 그리고 쓴 ‘연남천 풀다발’(2018)과 ‘적당한 거리’(2019)는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북토크와 라이브강연을 통해서도 독자를 만나고 있다.

작가가 된 계기에 대해 그는 “아주 어려서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어요. 뒤돌아보니 좋아서 가장 오래 한 일이 그림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데 가장 편하고 적당해서 이 길을 걷고 있는 거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풀, 나무 등 자연의 풍경은 그의 작업의 단골 소재다. 그는 “자연 속에서 사고가 확장하고 자유로워지면서 가장 생각이 많아지고, 어떤 깨달음이라고 할까. 그런 것들을 많이 얻어요. 자연은 우리를 가르치려 들지 않죠. 정화시키고 서로 보완하며 큰 흐름에 따라 존재할 뿐”이라며 “그 존재함을 기록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수양과도 같은 과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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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에서 개최한 전시 ‘아마의 작가들’ (출처=전소영)

 


◇ “전원생활은 영감의 원천”

전 작가는 도시에서 살 때도 자연을 벗 삼아 작업을 해왔지만,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의 마음과 해결되지 않는 원초적인 그리움 느꼈다고 한다. “점점 더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버겁게 느껴져 마음을 먹게 됐죠. 문산 쪽으로 오게 된 건 정말 예상 못했어요.”

그에게 자연 속에서 살며 그것들이 변하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는 것은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는 “벼가 커가는 것과 임진강의 아름다움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참 좋아요. 자연은 단 한순간도 같지 않아 늘 제게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줘요”라며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삶이 주는 풍족함을 전했다. 요즘은 한 평의 화단을 가꾸는 재미에 푹 빠졌다. 며칠 전에는 집 옥상에서 올빼미도 봤다며 미소 짓는 작가의 얼굴에서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여유로운 행복이 엿보였다.

그는 “우리는 위험하고 복잡한 시대에 살고 있어요. 자기중심을 잡고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으려 노력해야 하고, 깨어있기 위해서는 자연을 곁에 두고 깊게 관찰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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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천 풀다발 (출처=전소영)

 


◇ “풀의 생명력에 늘 감동받아요”

대표적인 저서 ‘연남천 풀다발’은 힘든 시기를 딛고 태어난 책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먹고 사는 일이 바빠 그림 그릴 시간이 빠듯했던 시기였다. 서울 연남동에 있는 작은 빌라에서 살며 매일 홍제천을 산책하다가, 눈에 띄는 풀들을 데려와 식탁에서 하나 둘 그리기 시작했던 게 이 책의 탄생비화다. 그는 “사실 처음에는 이걸로 책이든 전시든 해보려 계획하고 그린 것이 아니라 ‘뭐든 그리려고’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필연인 셈이다. 그는 “풀을 좋아했어요”라며 “평소에도 풀 다발을 들고 집으로 돌아올 때가 많았거든요. 한번은 평소처럼 산책길에 풀 다발을 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다가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너는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였어요”라며 웃었다.

왜 하필 풀이냐고 묻는 질문엔 “글쎄요. 어떤 분은 ‘민초 같은’ 이란 표현도 쓰시더라고요. 삶에 대한 어떤 끈질김 그리고 어디에나 있는 보편성 때문이겠죠. 실제로 도시에서 아무 곳에서나, 버려진 화분이나 아스팔트 틈새, 그게 어디든 가리지 않고 뿌리를 내리고 마는 모습에서 어떤 동질감을 느껴요”라고 답했다.

그는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살아가는 풀의 생명력에 감동을 받는다고 전했다. “주목받지 않아도 고개를 돌리면 어디서든 묵묵히 자라고 있는 그런 모습이요.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모여 세상을 이루니까요. 어느 날 날아다니는 박주가리 씨앗을 그리고 있는데, ‘아 여기에 세상이 모두 들어있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이것을 되도록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책으로 엮게 된 거죠.”

‘연남천 풀다발’은 2020 예테보리 국제도서전과 모스크바 국제도서전에 소개되기도 했다.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하면서 약 50권의 그림책 중 하나로 선정됐다. 모스크바 국제 도서전은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 형식으로 개최, 온라인 플랫폼에서 아카이브 영상 등으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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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거리 (출처=전소영)


◇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수”

두 번째로 출간한 ‘적당한 거리’는 평소 식물을 키우며 늘 생각해 왔던 것들을 옮긴 작업이다. 화초 키우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면 식물을 잘 키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조금 더 깊이 되물어 본 것이 계기다.

그는 “식물을 잘 키우려면 당연히 물도 잘 주고 해도 잘 보여주면 된다고 알고 있는데, 그 정도가 애매해요. 사실 식물마다 좋아하는 환경이 모두 다르거든요. 그러니까 모든 것은 ‘적당해야’ 한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적당함의 바탕에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눈여겨봄, 그리하여 뒤 따라 오는 이해가 있어야 해요. 어떤 식물은 해와 물, 바람을 모두 좋아하고 어떤 식물은 이미 물을 많이 머금고 있어 오히려 자주 주면 녹아버려요. 직사광선을 좋아하는 식물도 있고, 반 음지를 좋아하는 식물도 있고요. 때가 오면 분갈이를 해줘야 하고, 필요하면 가지치기도 해야 하고요. 이런 끊임없는 돌봄과 실패 그리고 노력이 어떠한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나의 기준으로 옮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우리 모두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내 주변의 가족, 동료, 그리고 나와의 관계에서도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한발자국 물러서 봐야 한다는 것. 전소영 작가가 그의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행복의 비결이다.

홍보영 기자 by.hong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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