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파가니니’(사진제공=HJ컬쳐) |
“예술가에 대한 찬사, 질투, 경외 등을 다룬 작품들과는 다르게 ‘파가니니’는 그가 악마로 불린 데서 출발했습니다.”
뮤지컬 ‘파가니니’(3월 31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의 김은영 작곡가·연출은 기획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파가니니’는 슈만, 라흐마니노프, 리스트, 차이콥스키 등에 영감을 주었고 사람들을 흔드는 연주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렸던 니콜로 파가니니의 삶을 따르는 작품이다.
파격적인 연주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괴소문의 주인공이 된 파가니니(콘 KoN, 본명 이일근), 그를 이용해 돈을 벌려 온갖 음모를 꾸미는 콜랭 보네르(이준혁·서승원, 이하 관람배우 우선), 바티칸에서 전설의 ‘악마 사냥꾼’으로 불리던 사제 루치오 아모스(김경수) 등이 엮어 가는 이야기다.
뮤지컬 ‘파가니니’ 김은영 작곡가·연출(사진제공=HJ컬쳐) |
이 같은 의도는 악마임을 인정하라고 총을 겨누는 루치오 아모스에게 파가니니가 외치는 대사에 잘 담겨 있다.
“나는 악마입니다” 그리고 “당신이야말로 사제의 가면을 쓴 악마가 아닌지!”
이에 대해 파가니니 역의 콘은 “소문에 시달리며 난도질을 당하던 파가니니가 사제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관객들까지)에게 반격하는 장면이다. ‘날 마음대로 만들어 생각하는 너희들이야말로 잘못됐다는 걸 몰라’ 라고. 그래서 작품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대사인 동시에 뮤지컬의 주제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뮤지컬 ‘파가니니’는 옛날이야기지만 타인에 의해 실제 모습이 왜곡되는 것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 대사를 할 때면 남에 대해 평가하고 단정 짓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나는 과연 상대방을 진짜로 알고 말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죠.”
이어 콘은 “파가니니는 이런 진중한 메시지를 그 시절뿐 아니라 현대의 사람들에게까지 남기고 있다”며 “이 대사를 할 때면 한 가지 감정이 아니라 억울함, 냉철함, 분노, 덧없음, 허무함 등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다. 그날그날 더 부각되는 감정들이 달라지는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뮤지컬 ‘파가니니’(사진제공=HJ컬쳐) |
“이 장면에서 저는 파가니니에게 고백을 받아내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며 등장합니다. 다시는 악마에 눈이 멀지 않으리라, 올바른 사제로서의 길을 가리라, 온전한 방법으로 악마를 처단하리라 다짐했지만 루치오는 콜랭의 계략에 빠져 결국 자신의 신념이 모두 무너진 상태였어요. 파가니니를 죽이고 자신도 죽음을 선택하려했죠.”
이렇게 설명한 루치오 아모스 역의 김경수는 “루치오가 끝까지 믿고 의지하는 사실은 파가니니가 사람들을, 무엇보다 신앙을 흔들었다는 것”이라며 “그것이 루치오마저 흔들었고 더더욱 잘못된 신념을 가지게 했다”고 덧붙였다.
“조롱하는 듯한 뉘앙스로 스스로 악마라는 파가니니의 고백도, 파가니니가 루치오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에요. 루치오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을, 파가니니가 외치는 ‘사제의 가면을 쓴 악마’라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