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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리차드 3세: 미친왕 이야기’ 2020년 공연장면(사진제공=아트로버컴퍼니) |
“리처드는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왕위 계승자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왕족의 피를 이어받은 계승자예요. 신체적 결함으로 왕위 계승이라는 당연한 권리로부터 배척당했다는 점은 시대를 현대로 옮겨놓고 생각해보면 일부 장애인 뿐 아니라 다양한 소외계층이 겪는 불합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차드 3세’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리차드 3세: 미친왕 이야기’(9월 4일까지 CJ아지트 대학로)의 정찬수 작·작사·연출은 작품에 대해 “내면의 불구성에 주목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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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리차드 3세: 미친왕 이야기’ 2020년 공연장면(사진제공=아트로버컴퍼니) |
“리처드 3세 하면 떠오르는 ‘악의 화신’ ‘공포의 대상’으로 상징되는 신체적 장애 뿐 아니라 ‘내면의 불구성’에 주목했습니다. 이를 통해 소외계층에 대한 불합리에서 현대인의 ‘마음’ ‘자존감’을 생각해보는 이야기로 확장되기를 바라며 작업했죠.”
잉글랜드 요크왕조의 마지막 왕 리처드 3세는 태어나면서부터 뒤틀린 몸을 가졌다. 누구보다 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췄지만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왕위계승자임에도 왕위 다툼에서 일찌감치 밀려난 인물이다. 이에 뛰어난 언변, 권모술수, 리더십, 교묘한 심리전, 유머감각 등으로 무장한 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왕좌까지 내달리는 과정에서 그의 내면은 뒤틀린 몸만큼이나 병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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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리차드 3세: 미친왕 이야기’ 2020년 공연장면(사진제공=아트로버컴퍼니) |
‘리차드 3세: 미친왕 이야기’는 형과 어린 조카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피를 제물 삼아 왕좌에 올랐지만 그 마지막 순간 자신의 신체보다 더 뒤틀린 내면을 대면한 리처드 3세의 이야기다.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젊은 예술가 지원 사업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차세대 열전 2019’에 선정돼 초연된 작품으로 ‘엔딩노트’ ‘테레즈라캥’ ‘머더러’ 등의 정찬수 작·연출과 한혜신 작곡·음악감독의 콤비작이다.
왕관을 차지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왕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더욱 악독해진 리처드는 오롯이 홀로 남아 최후의 순간을 기다린다. 죽음 직전 흉측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한 리처드 3세(박정원·최호중, 이하 가나다 순)가 마냥 외롭고 울분했던 어린시절의 자신(김민강·김영현·김지웅) 그리고 자유롭고 솔직한 그 시절의 친구(김리현·류동휘)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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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리차드 3세: 미친왕 이야기’ 2020년 공연장면(사진제공=아트로버컴퍼니) |
정찬수 작·연출은 ‘리차드 3세: 미친왕 이야기’에 대해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리차드 3세’에 등장하는 인물과 일부 장면을 차용하고 있다”며 “특히 원작에서 표현된 리처드의 죽음을 암시하는 ‘예언’은 여신(이태은)을 통해 ‘운명’으로 치환했고 리처드가 다양한 권모술수로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조리,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결과는 그대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작가적 상상력으로 리처드 최후의 날을 펼쳐 보입니다. 궁전에 홀로 남겨진 리처드가 어둠 속에서 두려움을 직면하면서 오히려 내면에 집중하게 되는 방식으로 서사구조를 확장했죠. 그렇게 스스로의 나약함을 마주하며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마지막을 향해 스스로 일어 설 수 있는 힘을 얻어가는 리처드의 여정을 관객분들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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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리차드 3세: 미친왕 이야기’ 2020년 공연장면(사진제공=아트로버컴퍼니) |
그 여정은 부조리, 불평등, 편견 등으로 점철된 지금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오롯이 나 자신으로 서기 위해 애쓰는 현대인의 삶과 다르지 않다. 정찬수 작·연출은 “리처드 3세는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지금 ‘우리’ 모두를 상징하고 있다”면서도 “이 작품을 통해 행복한 삶을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다고 제안하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다.
“리처드의 마지막 순간처럼 땅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두 다리가 필요해요. 스스로의 두 다리로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내면의 두려움에 맞설, 스스로 준비된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온전히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서는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거든요. 그 누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자세를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무대 위 리처드처럼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