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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김광보 연출의 첫 체호프 연극 ‘벚꽃동산’…“다양한 인간 군상에 빗댄 저마다의 삶”

입력 2023-05-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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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벚꽃동산-기자간담회01
연극 ‘벚꽃동산’ 김광보 연출(왼쪽부터), 라네프스카야 역의 백지원, 로파힌 이승주(사진제공=국립극단)

 

“맨 마지막 ‘살긴 살았지만 도무지 산 것 같지가 않아. 아무 것도 없군. 에이 바보 같으니’라는 피르스(박상종)의 대사를 읽으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대사를 통해 인생을 성찰하는 모습이 저한테 느껴졌어요.”

김광보 국립극단장이자 예술감독은 스스로 “지금까지 체호프를 잘 몰랐고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면서도 연극 ‘벚꽃동산’(5월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을 연출하게 된 데 대해 이렇게 밝혔다.

“그저 서사가 분명하고 인물의 성격이 강한, 임팩트 있는 작품을 선호해 왔죠. 바꿔 말하면 ‘벚꽃동산’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피르스의 대사와 더불어 여기엔 굉장히 많은, 다양한 인물군상들이 나옵니다. 그 인물들에 저마다의 삶을 투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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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벚꽃동산’ 김광보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

연극 ‘벚꽃동산’은 러시아 사실주의 대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유작이자 그의 4개 희곡으로 꼽히는 대표작이다.

 

벚꽃동산을 둘러싸고 몰락한 귀족이자 지주 라네프스카야 류보비 안드레예브나(백지원)와 그 집 농노의 아들이었지만 신흥부자가 된 로파힌 예르볼라이 알렉세예비치(이승주), 로파힌과 결혼 얘기가 오가는 라네프스카야의 수양딸 바랴(정슬기), 라네프스카야의 딸 아냐(이다혜) 등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광보 연출은 라네프스카야를 연기하는 백지원에 대해 “제가 굉장히 신뢰하고 좋아하는, 어떤 작업을 하든 가장 먼저 떠올리는 배우”라며 “백지원 배우가 가진 큰 장점은 기본적으로 호흡이 굉장히 아래에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어떤 역할을 하든 관객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보이스죠. 마냥 천진난만한 인물이 아니라 어떤 무게감을 가진, 아픔이 있는 라네프스카야를 생각했기 때문에 대본을 읽자마자 백지원 배우에게 제안을 했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안나’ ‘레이스’ 등 드라마와 박서준·아이유 주연의 영화 ‘드림’ 등에서 주로 활동하다 ‘벚꽃동산’으로 5년만에 무대에 복귀한 백지원은 자신이 연기하는 라네프스카야에 대해 “5년만에 황폐해진 영혼을 가지고 (벚꽃동산으로) 돌아온 인물”이라고 밝혔다.

“위로와 위안, 치유를 받고 싶어서 돌아왔지만 결국 여기서도 떠나야하는, 개인적으로 제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죠. 라네프스카야가 저에게, 저도 라네프스카야에게 참 많이 다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무대를 생각하는 마음과 라노프스카야가 벚꽃동산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제가 배우로서 지키고 싶은 가치와 라노프스카야가 지키고 싶어하는 가치가 조금은 닮아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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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벚꽃동산’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

 

이어 백지원은 “라네프스카야는 벚꽃동산이 팔린다는 것도, 경매로 넘어간다는 것도, 나에게 돈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로파힌이 제시한 대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지도 않는다”며 ‘벚꽃동산’을 “돈이나 경제적인 부분으로 따질 수 없는, 내가 지키고 싶은 어떤 가치에 대한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처음 이 인물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라네프스카야는 사랑이 전부인, 사랑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이죠.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 오면 사랑이라는 것으로 도망치는 사람이라는 큰 줄기를 잡고 시작했어요. 이 공연에서 라네프스카야는 상대 배우들에 의해 만들어진 부분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해요. 로파힌이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 준다는 것도, 그의 진심도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그 진심을 따라주지 못하는 자책감을 가진 인물이죠.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미 알고 있음에도 어쩌지 못하는 그 지점을 연기해야 했어요.”

그리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은 동정에서 시작되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며 “이 인물이 가진 감정이나 상황에서 느껴지는 것들에 좀 더 충실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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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벚꽃동산’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

 

더불어 “너무 어이가 없거나 화가 나도 웃을 때가 있다. 어떤 현실에 부딪혔는데 그걸 도저히 생각할 틈이 없어서 다른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이처럼 극한에 몰렸을 때 감정들에 충실하게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을 보탰다.

 

“굉장히 사랑받으면서 연습을 했고 공연을 하는 과정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좀 행복해요. (공연기간은) 정해져 있고 날짜가 끝나가다 보니 이 행복을 제가 잘 보내줄 수 있을까, 이 상실감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불안감이 있어요. 늘 현실에서 외발로 서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계속 있죠. 그럼에도 이 아름다운 시간들을 잘 지내고 즐기고 기쁘게 받아들이고 싶어요.”

‘벚꽃동산’ 제의를 받고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백지원이 김광보 연출과 더불어 믿고 함께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게 한 이승주는 로파힌에 대해 “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과거에 얽매인 인물”이라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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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벚꽃동산’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

 

“할아버지 때부터 아버지까지 이 집안의 농노였고 저(로파힌)는 아버지한테 매나 맞던 아이였어요. 벚꽃동산을 차지함에도 라네프스카야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 그리고 그 사람이 베풀어준 것을 떠올리죠. 연출님이 로파힌에게 라네프스카야는 최초의 여성이라는 말씀을 주셨는데 굉장히 공감이 많이 됐어요. 최초의 여성이자 이성, 어떻게 보면 사랑을 준 최초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이어 이승주는 “그렇다고 라네프스카야가 굉장한 마음과 애정을 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번도 제대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이 친구가 처한 현실이나 환경이 너무나 척박하고 열악했기 때문에 작은 관심 하나가 이 사람에게 크게 각인됐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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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벚꽃동산’ 김광보 연출(왼쪽부터), 라네프스카야 역의 백지원, 로파힌 이승주(사진제공=국립극단)

 

“그에 대한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했고 벚꽃동산이 라네프스카야 소유가 아닌 것은 스스로도 인정이 안됐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이다 보니 경매가 끝나고 내 손에 (벚꽃동산이) 낙찰된 거죠. 사실 대본만 읽었을 때는 로파힌의 감정을 따라가기가 힘들었어요. ‘이렇게 해야 당신이 살 수 있어요’ ‘제발 좀 이렇게 하세요’라고 얘기하다 갑자기 ‘내가 샀어요’ 하거든요. 미안함에도 기분 좋은, 여러 가지가 섞인 감정들을 복합적으로 생각하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김광보 연출은 피르스 죽음의 순간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으로 극을 마무리 지은 데 대해 “이 장면은 판타지”라며 “비극으로 풀었다기 보다 희비극으로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피르스가 죽는 순간의 대사에서 인생을 성찰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겠다 싶었고 그 죽음의 의미를 더 강조하기 위해 벚꽃을 날렸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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