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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추억의 게임을 스크린으로 '볼 때', 내 손가락은?

[이희승 기자의 수확행] 더 넣을 동전이 없을때, 나가야 할 직장이 있을 때가 진정한 '게임의 맛'

입력 2022-02-15 18:30 | 신문게재 2022-02-1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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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버전은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페르시아의 왕자’라고 쓰고 ‘사랑의 게임’으로 읽는 추억의 게임.(사진=온라인 캡쳐)

 

지금도 선명한 국민학교(난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았다)의 기억 한 가지. 다들 눈을 감고 집에 자동차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 꽤 여러 가지 항목이 있었는데 당시 선생님은 “집에 TV 있는 사람 손들어” 혹은 “아빠가 자가용 끌고 다니는 사람 손들어” 정도를 물어봤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야만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으니 길게 말 않겠다. 당시 꽤 유복했던 나는 거의 모든 항목에 손을 들었는데 그렇다고 선생님게 총애를 받은 기억은 거의 없다.

 

대신 마음 속으로 몰래 좋아했던 남자친구를 집안에 들일(?) 수 있었다. PC가 귀했던 시절이었다. 집에는 286인가 386인가 기억도 가물가물한 컴퓨터가 있었고 나는 그저 명령어 몇 개만 겨우 치는 수준이었다. 내가 “컴퓨터 있는 사람”이라는 항목에 당당히 손을 들었던 그때 쉬는 시간이 되자 전학온 W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너 ‘페르시아의 왕자’ 할 줄 알아?”

 

또래보다 크고 남자아이들의 등짝을 때리는 재미로 학교를 다녔던 나에게 W는 처음으로 심각하게 분홍색 치마 혹은 머리띠를 하고 학교를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  존재였다. 아빠의 직장으로 인해 서울로 전학온 지방 촌놈(이라고 다들 놀렸다)이었지만 내가 아는 그 어떤 서울 남자아이보다 지적이고 차분했다. 아이들이 신나게 어제 TV에서 본 순악질 여사의 흉내를 내거나 운동장으로 뛰어나갈 때 W는 조용히 책을 읽는 타입이었다. 기억하건데 총 50명이 넘는 반 아이들중 W를 안 좋아하는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남성뿐이었다. 모든 여자아이들이 대놓고 좋아한 그 애는 담임선생님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여자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그런 W가 나에게 PC게임을 할 줄 아냐고 물어본 거였다.

 

동네만 강남이 아닐 뿐 교육열에 있어서 우리 엄마는 상위 1%에 드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아빠의 사업이 그때까지는 망하기 전이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지금은 ‘추억의 레전드 게임’으로 불리며 3D까지 나온 ‘페르시아의 왕자’는 그 때만 해도 흑백이었다. 녹색화면에 플레이되는 왕자는 회복물약을 먹다가 갑자기 죽기도 하고 각종 함정에 빠지며 힘들게 공주를 구한다. 시간도 정해져 있어서 그 안에 모든 걸 클리어해야 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IMF가 까마득히 멀었던 1980년대 후반 SKC 5.25” 2D 디스크 두 장에 담겨있는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을 W가 다시 전학가기 전까지 즐겼다. 채 6개월도 이어지지 못한 짧은 로맨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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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건너온 이 게임은 유독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는 카더라가 존재한다.(사진=온라인 캡쳐)

 

어른이 되기 전까지 내 인생의 게임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너구리가 아닐까 싶다. 동전을 넣고 하는 아케이드 게임을 모아놓은 오락실에서 내 '최애'는 언제나 익숙한 음악으로 반겨줬다. 갤러그와 팩맨 사이에 자리잡고 있던 너구리의 자리는 언제나 한가로웠다. 아마도 뱀과 곤충을 피해 다니며 압정을 점프로 뛰어넘고 화면 상에 있는 과일을 모두 먹으면 끝나는 룰이 너무 쉬워서도 있다. 5년 전 꽤 거금을 들여 레트로 오락기를 집에 들였는데 200개가 넘는 오락기 게임 속 유일하게 하는 게임이 아직도 너구리와 보글보글 뿐이다. 

 

20대에는 학교 수업을 빼먹게 만든 게임도 있었다. 집을 꾸미거나 이웃과 의사소통을 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심즈’ 시리즈다. 주인공을 정한 뒤 직업과 결혼, 각종 취미까지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도시를 만들 수 있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게임이었다.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다양한 감정표현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됐고 세심한 건축·인테리어가 가능해 당시에는 ‘심즈폐인’이라는 말도 등장할 정도였다. 여기에는 치트키도 있어서 돈을 벌지 않고 대리만족으로 으리으리한 집을 짓거나 별자리 코드가 맞으면 반려자가 있어도 또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등 의외의 상황이 연출돼 재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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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성향에 맞춰 친구와 이웃을 사귀는 게임인 ‘심즈’. 하나의 도시를 만들 수 있어 유저가 신이 된 착각으로 많은 폐인들을 양산했다.(사진제공=일렉트로닉 아츠(EA))

  

나는 당시에 브리트니 스피어스 스킨을 받아 집을 짓고 갑자기 울리는 전화를 받아 구인광고를 통해 직장을 얻었다. 게임 속 직업은 야간간호사, 벽돌 수리공, 수의사 등 수백 가지가 넘는다. 게임이었지만 남들이 잘 때 쉬고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은 직업은 생활이 되지 않는 건 현실과 똑같았다. 경력이 없으면 파트타임만 해야 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정직원이 되거나 다른데 스카우트가 되는 수준이 되는데 당시엔 이 게임의 규칙들이 실제 인생과 비슷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수입이 쌓이지 않으면 신문을 구독하고 다른 직업을 구한다. 청소를 안 하거나 목욕을 안하면 우울지수가 올라가고 출근도 하지 않게된다. 간혹 입양을 권하는 전화가 오고 화면이 바뀌어 아기가 생기기도 한다. 여성과 남성이 아니어도 사랑에 빠지고 나이에 상관없이 결혼을 할 수도 있었는데 몇몇 나라에서는 그런 설정으로 출시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리는걸 보니 역시나 쉽지 않는 세상이다. 어쨌거나 심즈를 할 수록  또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미니미가 생긴 느낌이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한때 즐겨하던 게임이 영화화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솔직히 그동안 실사화된 작품들은 실망감이 없지않다. 하지만 앞으로 공개될 2편은 기대하고 있다. 세계최초로 게임을 실사화한 영화를 가진 닌텐도는 올해 말 개봉을 목표로 ‘슈퍼마리오’의 캐스팅 보드에 크리스 프랫, 잭 블랙, 세스 로겐, 안야 테일러 조이 등 쟁쟁한 배우진의 이름을 올려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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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차티드’.(사진제공=소니픽처스 코리아)

 

오는 16일에는 2007년 처음 선보인 이후 6개 시리즈를 통틀어 44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동명 액션 어드벤쳐 게임을 영화화한 ‘언차티드’가 베일을 벗는다. 주연을 맡은 톰 홀랜드가 ‘스파이더맨: 홈커밍’ 촬영 당시 쉬는 시간에 이 게임을 했을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그렇고 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했던 적이 언제인가 싶다. 가장 재미있는 게임은 더 넣을 동전도 없고 정해진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나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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