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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바야흐로 반.려.악.기의 시대!

[이희승 기자의 수확행] 30년 만의 피아노 재도전기
영화 '팬덤 스레드'보며 성인강습 등록
아들 뻘 수강생의 놀림에도 "음표 기억하는 내 뇌에 감사할 뿐"

입력 2022-03-15 18:30 | 신문게재 2022-03-1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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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30년 만이다. 피아노를 다시 치게 되기까지. 당시에는 ‘여자라면’ 태권도 대신 피아노였고 중 2때까지는 나름 음악의 길(?)을 걸었다. 당시 엄마는 그저 남들이 다 가르치는 피아노 학원에 자식을 보냈을 뿐이었다. 리차드 클레이더만(Richard Clayderman)의 연주에 감동받아 어렵게 그의 사진을 구해 책상 위에 붙였더니 “외국 배우 좋아하면 날라리된다”고 떼버리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생각해 보면 콩쿠르을 자주 나가진 않았다. 그저 나가는 대회마다 운 좋게 은상 이상은 받았고 당시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두달 정도 대회 곡을 죽어라 연습하고 대회용 원피스를 사서 입은 뒤 각지에서 몰려온 아이들과 실력을 겨뤘다. 건반을 두드리며 선생님이 지적했던 부분, 리듬의 감정, 원곡의 느낌을 되새겼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머리는 백지상태에 어떻게 무대에 내려왔는지 기억이 전무하다.

콩쿠르가 끝나면 피아노 원장선생님(당시엔 ‘쌤’이라는 준말이 없었다)은 “너 그 부분 또 틀렸더라”는 식의 타박과 더불어 3등부터 부르는 이름에 두 손을 모았을 뿐이다. 그나마도 반에서 10등 밖으로 등수가 밀리자 속셈학원으로 갈아타는 바람에 음악인생은 종지부를 찍었다.

어쨌거나 체르니 50번을 마치고 모차르트와 베토벤, 쇼핑 등 음악가를 정해 초창기 작품부터 치는 게 관행이었던 때였다. 다른 건 몰라도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어디서든 칠 수 있는 실력은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마흔이 넘어서는 그나마도 희미해졌다. 그리고 세 딸이 모두 출가한 친정집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독일제 피아노는 구입 당시 집 한채 값에 준하는 우리집 보물 1호였지만 “치워만 주겠다”는 업자의 손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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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년 전 한일 대항 콩쿠르 대회에 참석했던 사진. 안국동 근처의 한국일보 사옥에서 열렸던 기억이 난다. (사진=이희승기자)

 

그 후 피아노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영화 ‘라라랜드’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때도 다시금 건반을 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2018년 영화 ‘팬덤스레드’의 주제곡인 ‘하우스 오브 우드코크’(House of Woodcock)를 듣고는 손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듣자마자 한필의 비단이 귀에 감기는 듯한 이 노래는 라디오헤드 출신의 작곡가 조니 그린우드의 작품이다.

어쨌거나 마흔의 나이가 다 되어 나는 다시 건반을 두드렸다. 성인 레슨으로 입소문난 위드 피아노를 통해서였다. 각 지점을 통해 편한 동선대로 강습을 받는 장점이 상당했다. 주로 원하는 곡을 하나 정해서 실용음악과 출신의 강사가 주 2회 강습해 주는 방식이었다. 대부분이 자신이 원하는 뉴에이지 계통의 곡이나 OST를 가져온다고 당시 나를 가르치던 20대의 젊은 스승님들은 말했다. 기교와 암기를 중점적으로 알려주는 알찬 시간이었지만 40대 제자인 나는 그 스킬을 따라가지 못했다. 

일단 집에 피아노가 없는 게 문제였다. 50분 정도 죽어라 배우고 와서 다음 주 수업에 가면 실력은 도돌이표였다. 역시나 디지털 피아노 밖에 답이 없었다. 아파트에 최적화된 콤팩트함이 필요했고 당연히 헤드폰을 끼고 칠 수 있어야 했으며 건반의 터치는 그랜드 피아노급이어야 하는 게 모든 피린이(피아노 어린이)들의 까다로운 입맛이다. 긴 시간 불꽃 검색을 통해 야마하의 YDP-164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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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년이 넘게 기다려 배송받은 야마하 피아노. 배송기사분이 직접 와서 20분간 설치 후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학원에 있는 실제 피아노와 별반 차이가 없는 완벽한 건반감을 자랑하고 가끔 헤드폰을 끼고 야간 연습을 즐기기에도 무척 편하다.(사진=이희승기자)

 

구매를 위해 접한 사실은 실로 놀라웠다. 이제는 ‘반려악기’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동물이나 식물처럼 삶에 위로와 행복을 주는 존재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울면서 배웠던, 하기 싫어도 의무적으로 쳤던 피아노가 아니었다. 많은 성인들이 기꺼이 시간을 내 연주를 배우며 즐기고 있었다. 요즘에는  좁은 공간에서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칼림바, 우쿨렐레 등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악기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문제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피아노에 사용되는 인도네시아 산 나무 수급이 힘들어지면서 긴 대기줄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는 것. 무려 1년의 긴 기다림 끝에 영롱한 화이트로 휘감은 내 인생 두 번째 피아노를 집에 들였다.

야마하뮤직코리아 건반영업팀 신형준 팀장은 “YDP-164는 가정용 모델이지만 야마하의 독보적 기술로 마치 어쿠스틱 악기를 연주하는 듯한 풍부한 사운드와 타건감을 느낄 수 있다”면서 “집에서 취미용, 학습용으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애플리케이션도 지원해 음악 연주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기교보다 기초였다. 당장 집에서 가장 가까운 피아노 교습소의 문을 두드렸다. 퇴근 후 두 번째 수업에서 한 아이가 “늙은 학생이 왔다”며 만학도를 놀렸지만 악보의 높은 음자리와 크레센도를 기억하는 기쁨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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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치고 있는 ‘형을 위한 노래’의 악보. (사진=이희승기자)

 

첫 번째 도전곡은 뉴에이지 그룹 시크릿 가든의 ‘송 프럼 어 시크릿 가든’(Songs from a Secret Garden)이었다. 샵(반올림표#) 하나 없는 쉬운 악보인데도 두 마디를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시간이 무수히 반복된 후에야 “왼쪽 새끼 손가락만 계속 안 누르고 있으면 다음 곡으로 넘어 갈 수 있겠다”는 칭찬도 받았다.

성인 강습의 경우 학생 스스로의 과도한 욕심이 독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브리즈음악교실의 백지연 원장은 “마음이 앞서 몇 시간씩 연습하는 분들은 금방 지치는 경우가 많다. 사실 피아노는 손가락으로 치지만 결국 엉덩이가 무거워야 잘 칠 수 있는 악기”라면서 “요즘엔 나이에 상관없이 CCM반주를 하고 싶다는 분과 좋아하는 드라마의 주제곡을 배우러 오는 성인들이 많다”고 귀끰했다.

나 역시 ‘사랑의 불시착’에서 리정혁(현빈)이 스위스 호숫가에서 연추한 ‘형을 위한 노래’를 즐겁게 연습 중이다. 뒤늦게 정주행한 드라마에서 이 곡은 두 사람이 ‘애초부터 이어진 인연’이었음을 확인하는 곡이다. 현실에서도 부부로 이어지는 걸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곡인지 한번 들어보시길 강력 추천한다. 스승님은 욕심부리지 말라고 했지만 다음 곡은 김광민의 ‘학교가는 길’로 이미 정해놨다. 실력은 거북이인데 치고 싶은 곡만 무려 12곡. 내 자신이 토끼의 게으름에 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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