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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나만의 인생드라마를 만나기까지…

[이희승 기자의 수확행] '인생 드라마' 주인공들에게 보내는 찬가
2016년 '디어 마이 프렌즈' 뒤늦게 정주행
누구보다 현역인 배우들의 근황 보는 재미 쏠쏠

입력 2022-03-29 18:30 | 신문게재 2022-03-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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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행
찰떡 호흡을 보여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출연진들.(사진제공=tvN)

 

“자기 자랑 아니면 신세한탄. 남욕이나 하고 내일모레 돌아가실 거라고 세상이 아주 지 맘대로야?”-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중 박완 

다시 봐도 시대를 내다본 캐스팅이다. 6년 전 ‘이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의 근황을 살펴보자면 한명은 한국인 최초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또 다른 배우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에서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그들의 절친으로 나온 한 배우는 “누가 보겠냐”는 우려의 시선으로 시작한 노년의 돌싱 합가 프로젝트인 관찰 프로그램을 시즌 3까지 이끌고 있다. 극 중 아흔 살의 노모로 나왔던 배우 역시 65년 연기인생 최초로 주연을 맡은 영화가 곧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그야말로 대세배우의 풋풋했던(?) 모습을 기대할 만하다.

방송 전 화제성은 고현정과 조인성의 캐스팅이었다. 이들은 SBS 드라마 ‘봄날’ 이후 11년 만에 조우했고 이들이 뜨겁게 입 맞추는 모습이 예고편에 등장해 시선을 모았다. 연기 경험으로 치자면 도합 500년에 가까운 김혜자, 고두심, 나문희, 윤여정, 박원숙, 신구, 주현, 김영옥의 출연은 그저 ‘거들뿐’으로 보였다. 

라스트세션
최근 건강문제로 연극 ‘라스트 세션’의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신구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공연인 3월 19일에는 관객과의 약속을 지켜 많은 박수를 받았다.(사진제공=파크컴퍼니)

 

하지만 뚜껑을 연 드라마는 기대 이상이었다. 주로 주인공의 부모 역할을 맡았던 이들의 캐스팅은 당시 방송을 담당한 tvN 표현에 의하면 시니어벤저스 (시니어+어벤저스)였다. 현존하는 중장년층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고 노희경 작가의 필력이 더해져 평균 시청률 7%대의 인기를 모았다.
최근에야 우연히 이 드라마를 넷플릭스를 통해 정주행했는데 그 어떤 작품보다 와 닿는걸 보니 ‘꼰대’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아니, 이제야 인생을 알아가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극중 화자인 작가 완(고현정)은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다.(배우는 나보다 연상인데, 설정도 외모도 나보다 어리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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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빛나는 순간’은 대한민국 연기대상 최다 수상자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고두심에게 첫 해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이다.(사진제공=명필름)

 

시골 초등학교 동창들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엄마(고두심) 덕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았고 그만큼 뒤치닥거리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우리 완’ ‘시집 안간 작가 딸’ ‘엄마 등꼴 빼먹고 유학까지 간 년’이란 극과 극의 호칭으로 주인공을 부른다. 50년 지기 이들은 나이도 생김새도 성격도 모두 다르지만 나름의 끈끈함으로 이어져있다.

절친과 바람난 남편을 둔 엄마 난희(고두심)는 그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친구 영원(박원숙)이 미국에서 돌아오자 문전박대한다. 중졸 컴플렉스를 지닌 상남자 석균(신구)의 비위를 맞추며 살고 있는 정아(나문희)는 친정엄마를 요양원에 모시느라 세 딸의 가사도우미를 자처한다. 소녀감성이 죽지 않는 희자(김혜자)는 남편이 벽장에서 죽는 바람에 “굶겨 죽였다”는 소문에 시달린다. 돈 복은 따르지만 평생 혼자 살며 친인척들을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충남(윤여정)은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호구인 줄도 모른 채 최대한 ‘젊은것들’과 어울리려 애쓴다. 평생 맞고 산 난희의 엄마 쌍분(김영옥)은 늙어 기운이 빠진 할아버지를 구박하는 맛에 살아간다. 

나오는 배우들의 수만큼이나 이들의 이야기는 매회 버라이어티하다. 오롯이 희생하고 순종적인 부모의 모습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는 완에게 “젊은 것들과 늙은 것들의 전쟁”이라고 일갈한다. 화룡정점은 11화인 ‘복수의 칼날을 갈며-2’편인데 드라마를 안 본 사람이라면 이 에피소드만은 정주행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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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은 작품성 위주의 독립영화에 노개런티로 출연하며 영화인들과의 교감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의 포스터.(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

 

이들은 딸이자 조카인 완이의 새 책 인터뷰를 빌미로 모이는데 중구난방과 자기만의 이야기만 해대는 탓에 완이는 5분 만에 토할 것 같은 충동을 느낀다. 책의 완성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그는 “책이 잘 팔리게 예쁜 어른으로 포장해 주겠다”고 설득하지만 이들의 대답은 상상 이상이다. 

“인생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굳이 정의하자면 자식과 부모 간의 전쟁”이라고 일갈하면서 결국 “인생은 막장이야”고 입을 모은다. 완이는 알고 있다. 이들의 인생이 신세한탄과 잔혹동화 같은 일상임을. 독자들에게 부모로서의 희생, 연륜 넘치는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전달하고자 한다는 완에게 그들은 “이게 늙은이들의 인생이고 원래 막장이 재미있는 거 아니냐”고 되묻는다. 이들 중 자식없는 영원과 충남은 입을 닫자고 하지만 추임새로 넣는 촌철살인이야말로 할 말은 하고 보는 요즘 MZ세대를 연상시켜 재미를 더한다.

USA ACADEMY AWARDS 2022
28일 오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은 유엔난민기구(UNHCR)의 난민 캠페인을 지지하는 의미의 ‘#WithRefugees’(난민과 함께)‘ 파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등장했다

 

어쨌거나 출연진들의 일상은 여전히 ‘~ing’ 중이다. 되려 젊은 스타배우들이 가뭄에 콩나듯 보이는 캐스팅 기사보다 더 현역같다. 윤여정은 28일(한국시간) 진행된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해 특유의 입담을 발휘했다. 지난해 시상식에서 자신의 이름이 잘못 발음되는 데 불평한 것을 짚으며 올해 후보 이름을 서툴게 발음하게 될 처지에 놓이자 “어머니가 뿌린 대로 거둔다더라”는 말로 할리우드 별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또한 그가 무대에서 보여준 배려는 외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청각장애인 배우 트로이 코처를 호명할 때는 수어로, 그가 수어로 소감을 말할 때는 양손을 쓸 수 있게 트로피를 들어줬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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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였던 과거를 숨기고 억척스러운 시장 할머니로 살아가는 옥분(나문희)의 도전을 다룬 영화는 327만 관객을 불러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각종 상을 휩쓸었다. 주연인 나문희는 더 서울어워즈, 영평상, 청룡영화상,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여성영화인상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사진제공=명필름)

 

나문희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통해 영어에 도전해 여우주연상 7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조금의 쉼도 없었던 것은 새로운 장르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지금까지 안 해본 액션 연기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밝혔을 정도로 ‘오!문희’를 통해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투혼을 선보였다. 고두심은 33살 연하의 지현우와 펼친 멜로연기를 펼친 ‘빛나는 순간’으로 데뷔 후 첫 해외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그는 브릿지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나이가 든다고 해도 여자라는 건 못 놓겠다. 놔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극 중 진옥도 해녀로 힘들게 살아왔지만 여자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청년과 교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며 멜로 장르에 대한 목마름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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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은 지난 24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확진 여파로 30일 열리는 ‘말임씨를 부탁해’ 시사회는 예정대로 진행되나 간담회는 취소됐다.(사진제공=씨네필운)

 

김영옥은 ‘말임씨를 부탁해’를 통해 65년 연기 인생 첫 주연이자 스크린 현역 최고령 주연 배우로 등극했다. 효자 코스프레하는 아들과 가족 코스프레하는 요양보호사 사이에 낀 85세 정말임 여사의 선택을 그린 휴먼 가족 드라마다. 연기 활동 외에도 예능 프로그램 ‘진격의 할매’ ‘뜨거운 씽어즈’ ‘조립식 가족’ 등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박원숙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화려했던 전성기를 지나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 중인 혼자 사는 중년 스타들의 동거 생활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사진제공=KBS)

 

드라마에서 만인의 연인이자 스타로 나온 박원숙은 영화보다 안방을 공략하는 모양새다. 그의 이름을 딴  KBS2 ‘같이 삽시다3’를 통해 인생 후반전을 맞이한 출연진들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펼쳐낸다. 방송계에서 ‘배려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유느님(유재석+하느님)같은 진행솜씨는 아니지만 맏언니다운 든든함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누구나 ‘인생 드라마’가 한 편은 있는 법. 그리고 나는 곧 ‘디어 마이 프렌즈’의 주인공들과 같은 나이가 될테고 그동안 내 마음속에는 영원히 늙지않을 이들이 있기에 행복하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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