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여행

돌담길 걷던 연인들은 모두 이별했을까…

[은밀한 서울 투어] ④ 정동길
연인과 함께 걷고 수능날 추위 떨던 개인들의 추억이 깃든 곳

입력 2014-11-06 11:55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정동길22

“여기서 데이트하면 이별한다잖아.”


삼삼오오 몰려가는 중년여성들이 소녀처럼 까르르 거린다. 식상하지만 그래도 걸어서 좋은 ‘덕수궁 돌담길’ 혹은 ‘정동길’이다.

우거진 녹음, 선명한 단풍, 눈 덮인 풍경, 어느 계절에나 추억으로 가는 길을 기꺼이 열어주는 곳이다. 개인의 추억 뿐 아니다. 한국가톨릭수도원 첫 자리였고 구 러시아공사관 자리였던 정동근린공원, 1980년 언론 통폐합의 아픔을 간직한 신아기념관, ‘광화문연가’ 작곡가 故이영훈과 노랫말 속 조그만 교회당, 덕수궁 등 대한민국의 희로애락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 은행잎이 흐드러진 이화여고의 추억

“식상하지만 이곳에 대한 느낌을 설명하는데 ‘사색’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조용히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 자주 오는 편이에요. 1990년에 여기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수능을 치렀는데….”
 

정동길1-2

 

노란 은행잎이 흐드러진 이화여고 앞에서 만난 임명선(45)씨는 이곳에 올 때마다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게 하던 수능일을 떠올리곤 한다. 살을 에는 추위와 3년 간 노고를 쏟아낸 후의 허탈감에도 아랑곳없이 예뻤던 풍경이 생생하기만 하다.

임씨의 친구 안미경(42)씨는 “자주는 아니지만 특별한 날, 가을 단풍이 떨어지거나 눈이 오는 날 이곳을 찾는다”고 보탠다.

“그때는 수능일이 왜 그렇게 추웠는지….” 또 다시 추억에 빠져드는 그녀들이다.


◇ 어디서 시작하든 만나는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길 산책로로 가는 잘 알려진 입구는 세 군데다. 시청 앞 덕수궁에서 시작하는 길과 광화문 경향신문사 골목, 그리고 광화문 에스타워와 오피시아(Officia) 뒤편에 자리 잡은 서울 덕수초등학교, 구세군중앙회관, 덕수궁 후문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어디서 시작하는지에 따라 정동길은 다양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산책로다.

  

 

정동길건물들
정동길 산책로로 가는 잘 알려진 입구는 세 군데다. 어디서 시작하는지에 따라 정동길은 다양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산책로다. 서로 맞닿는 산책코스기도 한 이 세 길이 만나는 지점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있다.

 


서로 맞닿는 산책코스기도 한 이 세 길이 만나는 지점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있다. 옛 대법원 터에 지어진 미술관으로 누구에게나 열린 정원과 유명 화가의 전시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현재는 ‘SeMA 비엔날레 미디어 시티 서울 2014’ 기간으로 박찬욱 감독의 형으로 알려진 유명 설치미술가 박찬경이 기획·연출한 ‘귀신 간첩 할머니’가 전시 중이다. 11월 23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점에 위치한 숨은 공원

고요한 혹은 은밀한 휴식을 만끽하고 싶다면 정동 상림원아파트로 통하는 길에 위치한 작은 공원을 찾아도 좋다. 아는 사람만 찾는 공원으로 광화문 대로변 시티은행과 LG광화문빌딩 골목을 들어서면 보이는 계단을 오르면 만날 수 있다.

혼자 사색에 잠기기도 연인과 밀어를 속삭이기도 좋은 공간이다. 그곳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점도 만날 수 있다. 이 공원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구 러시아 대사관 터, 정동근린공원을 만날 수 있다.

정동길

◇ 32년만에 한국을 찾은 이들도 그리운 덕수궁돌담길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걷는 이들을 위해 차량을 통제하는 이 길에는 많은 것들이 생겨났다. 크리스마스 꽃으로 불리는 포인세티아가 늘어섰고 누구든 앉아서 쉴 수 있는 야외 파라솔이 설치됐다. 주말이면 아기자기한 액세서리와 먹거리를 파는 장이 서기도 한다.

농협에 근무하다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32년 만에 한국을 찾은 최인길(70)·유선자(60)씨 부부는 “친척 결혼식 때문에 한국에 왔는데 제일 먼저 덕수궁 돌담길을 찾았다”고 털어놓는다.

캘리포니아에 살다 은퇴 후 애너하임으로 이사했다는 최씨는 ‘덕수궁 돌담길’이라는 책을 출간한 캘리포니아를 위해 정동길 구석구석을 사진기에 담고 있었다. 그의 아내 유씨는 “없던 가게도 생기고 건물이 들어서 조금씩 변하긴 했지만 따뜻한 정서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감회를 전한다.

그렇게 정동길은 언제나 걸어도, 30여년만에 고국땅을 밟은 이들이 찾아도 마냥 좋은 곳이다. 

 

문화-정동지도-수정

 

 


허미선·김동민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