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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서울투어] 도심속 '보물창고' 창신동 가보니… 어른도 아이가 되는 마법장터

[은밀한 서울 투어] (16) 창신동 완구거리

입력 2015-04-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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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거 이거”

 

“한 개만 더 산다고 했잖아.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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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의 얼굴마담이자 대표 가게인 ‘승진완구’ 입구.

서울 종로구 창신동 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랑이다. 

 

봄비가 세차가 내리는 날도 좁은 골목에는 우산을 이리저리 피하며 지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일요일에는 문을 안 연다는 정보(?)는 30% 정도만 사실이다. 

 

오후 3시나 되서야 셔터문을 여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설사 닫혀 있다 하더라도 달고나와 액세서리 좌판이 그 자릴 채운다. 

 

동심과 상술이 밀당을 하는, 어른도 향수에 젖게 만드는 묘한 곳이다.

 

 

◇ 더이상의 흥정은 그만… 시중보다 30% 저렴
 


결론부터 말하자면 창신동 완구거리에서 쓴 돈은 총 8만2000원.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바다 탐험대 옥토넛’ 모래 세트가 6만원이니 고작 장난감 2~3개 정도를 샀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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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키티 수첩부터 욕실 헤어 캡, 개구리 지우개 세트, 파워레인저 총과 가면, 말하는 고양이 토킹 톰 인형, 스파클링 펭귄 라이더를 비롯해 각종 포장지와 볼펜, 리본까지 양손에 든 쇼핑백에 한가득이다.

가장 마지막에 산 ‘바다 탐험대 옥토넛’은 직구 가격만 10만원이 넘는 꽤 큰 크기의 놀이세트다. 이 정도면 본전은 뽑은 셈이다.

대부분 문을 닫을 거라 생각하고 찾아간 일요일 오후지만 알짜배기 쇼핑타임은 의외로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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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부동의 인기인형인 엘사 캐릭터를 제친 소피아 공주.

이곳에서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한정은(21)씨는 “토요일에는 디스플레이된 상품이 거의 빠진다고 보면 된다. 일주일 중 가장 많은 매출이 일어나는 날이라 점심시간만 지나면 손님들 상대하느라 힘이 부친다. 그래서인지 일요일에는 상대적으로 더 친절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여기저기서 가격을 묻는 학부모부터 차곡차곡 정리해 쌓아놓은 장난감들만 골라 헤쳐 놓는 아이, 심지어 외국 관광객까지 일요일임에도 매장 안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인형은 디즈니 소피아 공주다. 부동의 판매 1위인 겨울왕국 엘사 인형을 제쳤다고 하니 그 인기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남자아이들의 구매목록 1위는 일본 반다이사의 요괴워치다. 워낙 다양한 종류로 장남감이 출시돼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시중 가격보다는 평균 30%는 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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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의 깍기 신공에 두손 두발 다든 ‘깜찍한 협박문’

도매가격임에도 아줌마들의 ‘에누리 신공’은 여지없이 발휘된다. 오죽했으면 계산대 옆에 ‘고객님께 드리는 말씀’이 다 붙어 있을까. 

 

워낙 싸게 팔기 때문에 더 이상의 DC는 없다는 귀여운 협박문이다.

완구골목에서 가장 큰 매장을 30년째 운영중인 송동호 승진완구 사장은 “예전에 이 거리는 사창가 골목이었는데 이제는 지방과 외국에서도 오는 장난감골목이 됐다”며 뿌듯해했다. 

 

그는 “영수증만 가져오면 100%교환, 환불된다. 간혹 포장을 뜯고 나서 바꿔달라는 이들도 있는데 그것만큼은 기사에 꼭 써 달라”고 부탁한다.



◇지방손님은 기본, 해외 관광객까지 북적… 어른마저 지갑 열게 만드는 마법 거리

창신동 완구거리에는 체육시간에 한 번쯤은 만져 봤을 법한 체육 용품부터 각종 포장 용품만 모아 파는 상점, 파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취급하는 전문점 등 다양한 가게들이 골목골목에 위치해 있다. 

 

새학기에는 노트부터 볼펜, 각종 과학세트를 사려는 학부모들이 몰린다는 한 문구용품 전문점에서 카드 몇 장을 집었다가 “낱개로는 팔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슬며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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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장사로 거의 ‘박스’수준으로 팔려나가는 문구류들.

계산대에 줄지어 있는 한 엄마가 ‘그것도 모르냐’는 눈빛을 보내 무안해지는 찰나, 한 중국인 관광객이 줄쳐진 수첩과 볼펜만 두 박스를 사는 것을 보며 ‘이곳은 도매시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번이 세 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앤디청(45)씨는 “과거에는 화장품을 주로 사 가 선물했는데 이제는 이곳에서 문구류를 사 간다. 워낙 질이 좋아 아이의 학교친구들에게 인기 만점”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다. A4 크기의 두꺼운 연습장이 1000원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일본 캐릭터 상품만 모아 놓고 파는 한 가게서 만난 60대 부부는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10개 정도만 챙겨 달라”며 사장에게 부탁한다. 

 

슬쩍 옆에서 보니 개당 1만2000원짜리가 1만원으로 둔갑해 포장된다. 이틈에 냉큼 하나를 집어 들지만 여지없이 정가를 받는 사장이 야속하기 그지없다.

그 모습을 본 어르신이 웃으며 자기 가게 명함을 건넨다. 

 

아뿔싸, 위치가 대구다. 정년퇴임 후 고향에서 장난감 가게를 열었다는 그는 “젊은층이 좋아하는 물건을 사려면 멀어도 이곳에 와야 한다. 알아서 챙겨주기 때문”이라며 “가격도 저렴하지만 최신 유행을 알 수 있어서 사업 시작 후 아직까지 손해 보진 않았다”며 웃어보인다.

창신동 완구거리의 장점은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데 있다. 

 

키덜트의 지갑을 여는 이곳에는 어린시절 사고 싶었던 각종 완구들이 세월의 흔적을 빗겨간 채 새것 그대로 장식돼 있다. 

 

훌라춤을 추는 인형, 펌프질을 해 달리게 만드는 말, 고무로 만든 장난감 병정, 추억의 못난이 삼형제 인형까지 안 파는 것이 없다.

빗줄기가 더 세차진 오후 4시가 되자 골목 한켠에 자리 잡은 달고나 코너가 인기다. 설탕을 녹여 별과 하트 모양을 찍어내는 모습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신기할 따름이다. 빗줄기에 실려 유난히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올망졸망 모여있는 저 아이들을 뚫고 왕년에 ‘뽑기 여왕’이었던 실력 좀 발휘해볼까. 순간의 유혹을 물리치고 낼 모래가 마흔이니 참기로 한다.

글·사진=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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