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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금]여성 ‘파우스트’부터 록뮤지컬, 치열했던 예술가와 ‘만세’를 불렀던 기생들까지

[즐금] 기울어진 운동장 다지기 나선 무대 위 여자들 ② 여성 ‘파우스트’부터 네 여자의 록뮤지컬 '리지', 배삼식 작가 신작 '화전가', 치열했던 예술가 '나, 혜석',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 명성황후 '잃어버린 얼굴 1895', ‘만세’를 불렀던 기생들 이야기 '향화'까지

입력 2020-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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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공연계는 여성 서사극, 젠더프리 등의 경향이 심화될 전망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화전가’, ‘잃어버린 얼굴 1895’ ‘리지’ ‘마리 퀴리’, 내년 초 서울예술단이 첫선을 보일 ‘향화’(가제)의 실존 인물 김향화, 서울시극단이 9월 무대에 올릴 ‘나, 혜석’의 실존 인물 나혜석(사진제공=국립극단, 서울예술단, 라이브, 쇼노트, 수원시)

 

지난해 연말부터 올 초까지 국공립 극장 및 단체, 민간제작사, 공연장 등이 발표한 2020년 연극·뮤지컬 라인업에서 눈에 띄는 경향은 여성 서사 혹은 캐릭터의 부각이다. 불과 몇년 전까지 무대 위 여자들은 소유물, 지켜야할 존재였으며 남자들의 각성, 정의구현, 성장, 역사적 기여 등을 위한 ‘기능적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최근에도 쉴새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고 징징거리거나 결혼을 통해 반드시 남자에 속해야만 하고 보호받거나 전통적인 팜므 파탈 형 여자 캐릭터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그럼에도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줄리엣과 줄리엣’ 등 한송희 작가·이기쁨 연출이 함께 작업해온 연극들과 2018년 여배우 10명을 한 무대에 올렸던 ‘베르나르다 알바’, 2019년 절망 속에서도 연대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 연극 ‘메리 제인’ 등 매년 남다른 의미의 여성 서사극이 등장하거나 젠더프리로 다양성을 시도하는 극들이 늘고 있다.

2020년에도 서울시극단 연극 ‘나, 혜석’, 펑크록뮤지컬 ‘리지’, 서울시뮤지컬단의 ‘작은 아씨들’, 뮤지컬 ‘HOPE: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마리 퀴리’ 그리고 국립극단의 ‘화전가’ ‘파우스트’와 한강 원작의 ‘채식주의자’, 성 역할을 뒤집은 ‘말괄량이 길들이기’, 서울예술단의 ‘잃어버린 얼굴 1895’과 신작 ‘향화’(가제) 등이 관객을 만난다.


◇아홉 여자의 ‘화전가’부터 치열했던 예술가 이야기 ‘나, 혜석’까지

화전가
배삼식 작가의 신작 ‘화전가’(사진제공=국립극단)

“사회적으로 젠더이슈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는 특성이 공연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전한 이성열 예술감독이 이끄는 국립극단은 ‘동시대성’에 방점을 찍고 배삼식 작가가 꾸린 여성들의 이야기 ‘화전가’(2월 28~3월 22일 명동예술극장), 여성 파우스트를 내세운 ‘파우스트’(4월 3~5월 3일 명동예술극장)와 한강 원작의 ‘채식주의자’(5월 6~7일 소극장 판), 성 역할이 바뀐 ‘말괄량이 길들이기’(6월 2~6일 명동예술극장)를 연달아 선보인다.

배삼식 작가, 이성열 연출, 예수정·전국향 출연의 ‘화전가’는 창단 70주년을 맞은 국립극단 2020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제목 ‘화전가’는 여인들이 꽃잎 전을 부쳐 먹으며 즐기는 봄놀이에 대한 노래로 연극은 1950년 전쟁 직전을 배경으로 한 9명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룻밤 수다로 풀어낸다.

괴테의 동명소설을 조광화 각색·연출로 변주 중인 ‘파우스트’는 여성 파우스트 김성녀를 전면에 내세우는가 하면 셰익스피어 원작의 ‘말괄량이 글들이기’는 성 역할 뒤집기와 장애인 배우 캐스팅 등으로 남성중심적 사고, 편견 등을 비튼다.

쇼노트가 선보일 여성 펑크록 뮤지컬 ‘리지’(4월 2~6월 21일 드림아트센터 1관 에스비타운)는 1892년 미국 매사추세츠 폴 리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도끼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미국 범죄사상 역대급 미제사건으로 남은 이야기를 다루는 ‘리지’에 대해 임양혁 이사는 “리지를 포함한 네명의 인물들이 모두 주인공으로 팀워크가 핵심적인 동력”이라며 “라이브 록밴드가 함께 하는 음악, 빅토리안 시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스타일링 등이 매력적”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선과 악의 구분이나 어떤 교훈, 가르침, 정치적인 맥락을 강요하지 않아서 좋다. 다양한 면에서 규범을 따르지 않아 통쾌하다. 관객들에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 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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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공연될 펑크록뮤지컬 ‘리지’(왼쪽)와 연극 ‘나, 혜석’(사진제공=쇼노트, 세종문화회관)

 

한송희 작가, 이기쁨 연출의 ‘나, 혜석’(9월 11~27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은 화가이자 작가,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이자 여성 인권의 선두에 섰던 나혜석에 대한 이야기다. 한송희 작가는 “매정한 어머니며 불륜을 저지른 방탕한 여성으로 평가받는 나혜석, 만날 수 없는 자식을 그리워하고 가세가 기우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 애를 쓰고 가정이 깨지지 않게 남편에게서 수많은 다짐을 받아냈던 나혜석…하나의 모습으로 규정할 수 없는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나, 혜석’을 소개했다.

“한송희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하며 했던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이 이야기는 재미없을 것 같다’는 것이 첫 마디였죠.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나혜석은 신여성의 표본 같은 존재죠. 하지만 한송희 작가는 나혜석이 남긴 작품들과 그의 인생에서 오는 간극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대중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싫어하거나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곤 “하지만 전 오히려 더욱 흥미가 생겼다. 그 간극에서 생겨난 갈등으로 고민하는 하나의 인간, 나혜석이야말로 지금 시대의 우리라고 생각이 들었다”며 “말 그대로 정직하게 ‘나’를 찾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명성황후 ‘잃어버린 얼굴 1895’, 만세를 불렀던 기생들 이야기 ‘향화’ 그리고 ‘마리 퀴리’
 

잃어버린 얼굴
명성황후를 재조명한 ‘잃어버린 얼굴 1895’. 사진은 2013년 초연 장면(사진제공=서울예술단)

 

서울예술단은 명성황후를 재조명한 레퍼토리 ‘잃어버린 얼굴 1895’(7월 8~2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와 일제강점기 ‘만세’를 불렀던 기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신작 ‘향화’(2021년 1월 8~10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를 선보인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를 악녀 혹은 영웅이 아닌 비극적인 죽음에도 응어리진 여성으로서의 아픔과 슬픔, 인간으로서의 고민과 욕망 등을 풀어낸다. 2013년 초연된 후 2015년, 2016년에 공연된 후 4년만에 네 번째 시즌을 맞는다.

권호성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은 네 번째 시즌에서 변화되거나 강조되는 것으로 “실존했던 등장인물들의 기록과 사실에 의거해 좀 더 객관적으로 다가선 캐스팅”을 꼽으며 “개혁의 주체였던 김옥균과 비운의 군주 고종 역에 서울예술단 젊은 신예들이 출격한다”고 귀띔했다. 

 

김향화
김향화

2020시즌 마지막 작품으로 내년 초에 선보일 ‘향화’는 1919년 3월 29일 수원경찰서 정문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던 수원 권번 소속 일패기생 김향화(순이)와 33인의 기생 이야기다.

 

권 감독은 “기생들로 촉발된 만세 시위는 더욱 커지고 거대해졌고 이를 진압하려는 일본 역시 잔악해져 4월의 제암리 학살로 그 절정을 맞는다”며 “김향화는 징역 6개월을 선고받지만 그녀가 감옥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을지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징역 선고 기사 후 그녀의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본명이 순이였던 김향화가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혹은 감옥에서 시들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고 귀띔했다.

“100년 전에 여성들의 인권이 어디에 있었겠어요? 역사의 실존인물인 김향화와 33명 수원 기생들의 이야기는 기록으로 찾기가 매우 어렵고 제한적이에요. ‘조선미인도감’이라는 책 역시 여성을 호기심과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보고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의도가 보이죠. 남자도,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종교가 있어 종단에서 후사를 발굴해 보존하고 널리 알린 것도 아니었어요.”

이렇게 전한 권호성 예술감독은 “단지 천한 기생으로 치부되던 세상에 살았으니 자료가 남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가무극 ‘향화’는 여성서사를 미리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차별과 억압의 시대를 살았던 김향화(본명 김순이)를 우리가 사는 이 시대로 소환해 실종되고 굴절된 여인들의 역사를 조명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1919년 3월 29일 수원의 기생 33명은 왜 만세를 불렀을까? 무엇이 그녀들을 이끌어서 만세를 부르게 했을까? 이 작품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겁니다. 한국적 전통의 원형에 보다 충실하며 깊고 묵직한 울림을 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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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HOPE: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2018년 공연 장면(사진제공=알앤디웍스)

 

이들과 더불어 서울시뮤지컬단의 ‘작은 아씨들’(11월 24~20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뮤지컬 ‘HOPE: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11월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두번의 노벨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과학자 이야기를 다룬 ‘마리 퀴리’(2월 7~3월 29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등도 공연된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이자 두 번의 노벨상을 수상한 최초의 과학자인 마리 퀴리의 삶을 다루는 작품이다. 마리 퀴리(김소향·리사·정인지,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와 남편 피에르(김지휘·임별), 폴란드 출신의 라듐시계공장 언다크 직공 안느(김히어라·이봄소리), 언다크의 사장인 루벤(김찬호·양승리) 등이 라듐 발견의 명과 암, 위대한 업적과 이면을 두고 갈등하고 공감하고 고뇌하는 여정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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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간 서사를 강화한 뮤지컬 ‘마리 퀴리’사진제공=라이브)
동국대학교 산학협력단과 더뮤지컬이 참여하고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는 ‘신진 스토리 작가 육성 프로그램’의 일환인 2017년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2 선정작이자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이기도 했다.  

 

재연에 새로 합류한 김태형 연출은 ‘마리 퀴리’에 대해 “위대한 과학자인 마리퀴리의 삶을 들여다 보는 공연이다. 그 삶 중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자기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큰 테마”라며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해내는 인물의 이야기인데 이 고난과 역경이 대부분 여성, 이민자이기에 발생하는 문제들”이라고 소개했다.

 

“당연히 여성 중심 서사이고 여성의 성장과 극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리 퀴리는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위인이지만 그 삶을 더 들여다보면 더 극적인 부분이 있어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어마어마하게 붙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 수식어를 떼더라도 그의 노력과 인류애는 물론 엄청난 비난과 불리한 여론을 극복하고 살아간 사람으로서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어떻게 견뎌냈을까, 이겨냈을까를 고민했어요. 전 공연에 비해 여성간의 연대가 여성의 성장에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도록 했죠.”

 

이어 “주인공인 마리 퀴리의 주체적인 행동들이 부족했다는 평을 수용해 마리 퀴리의 고민과 선택, 행동들이 더 주동적일 수 있도록 이야기를 수정했다”며 “사실 기존공연의 큰 소재와 틀만 남기고 처음부터 작가, 작곡가님과 새로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메이 알코트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꾸린 뮤지컬로 ‘윤동주, 달을 쏘다’ ‘오이디푸스’ ‘영웅’ ‘신과함께-이승편’ 등의 한아름 작가와 ‘다윈영의 악의 기원’ ‘트레인스포팅’ 박천휘 작곡가가 의기투합한다.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작품상, 여우주연상(김선영) 등 주요상을 휩쓴 ‘호프’는 카프카의 미발표 유작을 둘러싼 실제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현대 문학 거장 요제프 클라인의 미발표 원고를 둘러싼 이스라엘 국립도서관과 78세 노파 에바 호프의 30년 간 이어진 재판을 통해 온전히 나로 살아가기에 대한 가치를 전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시리즈 # 즐거운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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