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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이드] 연출 30주년 ‘순홍선생’ 권호성, 윤동주 시인 100세 탄신일과 기일에 시를 읊다

박영수·김도빈·조풍래, 신상언·강상준·김용한 등 출연 ‘윤동주, 달을 쏘다’‘윤동주, 달을 쏘다’ 권호성 연출이자 서울예술단 예술감독
2017년 윤동주 시인 탄생 100년엔 생일상 차리고 작년 기일엔 추모하며 시 읊기
연출 30주년 맞아 기념책 '순홍문집'(가칭), 15년만에 돌아오는 ‘블루사이공’ 공연 준비 중

입력 2019-03-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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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성
‘윤동주, 달을 쏘다’ 권호성 연출이자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사진=강시열 작가)

 

“생일날 미역국은 누가 끓여드리나….”

2017년 윤동주 시인의 탄신 100주년 공연, 문학의 밤, 심포지엄 등 거대 이벤트들이 준비되던 때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3월 17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의 권호성 연출이자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은 이 궁금증으로 지인들과 ‘윤동주 생일상 차리기’ 모임을 꾸렸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 달을 쏘다’ 4연이 마무리된 즈음이었다.

“100주년이니까 100명을 초대하자 했어요. 제 모임 중 디자이너, 공방 운영자, 출판 전문가, 오스트리아 대사관 사람 등 친분으로 놀러오는 사람들로 구성된 ‘지사모’(지극히 사적인 모임)의 성북동 지부 사람들과 ‘생일상 차리기’를 만들었죠.” 

 

지인이 부암동 산꼭대기, 군부대 앞 별장을 후원했고 미역국만 끓일 수 없어 떡을 맞추고 갈비를 구웠다. 겨울의 한가운데인 12월 30일, 초대한 사람들을 시내(?)에서 실어 나르기 위한 차량 4대가 마련됐고 뮤지컬 배우들 13명이 의전 자원봉사단으로 동원됐다.

2019 윤동주달을쏘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사진제공=서울예술단)

“초대받은 분들의 명찰도 일종의 이벤트였어요. 캘리스트가 그 인물에 맞는 시구를 써줬거든요. 눈이 펑펑 쏟아지는 데서 무용수, 성악가, 연주자들이 공연도 하고…정말 감동적이었죠. 기일(2월 16일)에는 ‘저희 집 앞에 있는 윤동주 시비 앞에 추모하고 싶은 사람은 모이세요’ 했는데 10명이 넘게 왔어요. 간단하게 추도식하고 시 몇편을 읊고 술 한잔씩 올리고 윤동주 시인이 베풀어주신 만찬(?)을 맛봤죠.”



◇시 대신 가사를 쓰다

“저는 시 보다 제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까를 고민하면서 가사를 많이 써요. ‘내 나이 마흔하고 아홉 살’이라는 가사집도 가지고 있죠.”

‘윤동주, 달을 쏘다’를 보고 나면 ‘시를 쓰고 싶어지지 않냐’는 질문에 권호성 연출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곤 가사집 중 가장 좋아하는 글로 소리꾼 박애리가 불렀던 ‘봄’을 꼽았다. 2011년 KSB ‘낭독의 발견’에서 소개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봄 향기 밟으며 꿈 따러 간다. 유달산 함박 핀 꽃 따러 간다…(중략)…두근두근 진달래 다 지기 전에 그 언저리 숨어 있을 당신 웃음 훔치러 간다. 이 노랫말은 5분만에 썼는데도 한자도 안고칠 정도로 만족스러워요. 얼마 전 ‘윤동주, 달을 쏘다’ OST를 녹음하다 잠시 쉬는 시간에 엔지니어에게 부탁해서 녹음하기도 했죠.”


◇공학도, 무대예술에 빠져들다

권호성
‘윤동주, 달을 쏘다’ 권호성 연출이자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사진=강시열 작가)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하고 책 읽고 음악 듣는 걸 좋아했어요.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었는데 저희 선생님이 미대에 보내야 한다고 부모님께 전화를 했을 정도였죠.”

그럼에도 기계공학을 전공하게 된 사연은 단순했다. 고등학교에서 문·이과를 나누는 과정에서 당시 시대적 방침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10반 중 2반만 문과였어요. 지망자가 두배 정도 되니 ‘뺑뺑이’를 돌렸죠. 저 뿐 아니라 저희 형도 그랬어요. 아버지는 되게 좋아하셨죠. 다행히 형은 적성이었는데 저는 너무 재미가 없었어요. 결국 2년 만에 아버지 몰래 연극영화과에 새로 입학했죠.”

그렇게 무대에 빠져들어 1989년 국립극장의 ‘반쪽이전’ 연출로 시작해 벌써 30년이다.

 

그가 작곡가·음악감독으로 참여해 1996년 초연한 ‘블루사이공’으로 백상예술대상 대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고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10년을 넘게, 현재 예술감독으로 몸담고 있는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는 7년 동안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소리꾼 박애리와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에서 ‘숙영낭자전을 읽다’ ‘몽연’으로 전석 매진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

“뮤지컬은 과학이라고 생각해요. 연극처럼 연출자의 미장센과 배우들의 충돌 에너지로 꾸리는 게 아니라 분초를 다투는 예술이죠. 4분 30초짜리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석해 조명과 배우, 무대 등을 어떻게 배치할까 설계도를 그리는 작업이죠.”

각 넘버는 물론, 장면, 극 전체를 잘게 쪼개 무대, 조명, 동작 및 안무, 연기 등을 반드시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뮤지컬 연출의 일이라던 그는 “극 흐름에서도 여기선 반드시 울려야 하고 또 여기선 반드시 버라이어티해야한다”며 “공학의 설계도 같다”고 표현했다.

“뮤지컬은 철저하게 협업 예술이에요. 과학이나 공학적이 아니라 개인예술로 접근하면 어려워지거든요. 제 개인성을 버리고 각 파트를 존중하며 최대한 조합해서 만드는 게 연출의 몫입니다. 협업에 대한 이해도를 비롯해 타이밍에 대한 계산, 음악에 대한 이해도 등이 진짜 중요한 예술이죠.”


◇새빨간 거짓말! 순홍 선생, 연출 30주년을 맞다
 

권호성
‘윤동주, 달을 쏘다’ 권호성 연출이자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사진=강시열 작가)
“10년 전에 소리꾼 박애리씨랑 에딘버러 페스티벌을 2년 연속 갔어요. 그 바쁘고 국립창극단에서 놔주지도 않는 사람을 ‘내가 정말 잘할게’ ‘시중 들고 짬짬이 투어도 시켜주고’ 하면서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겼죠.”

1년치 휴가를 몰아서 한달 동안 권호성 연출과 에딘버러 무대에 올랐던 소리꾼 박애리가 그때 지어준 호가 ‘순홍’(純紅)이다.

“두 번째 에든버러를 찾았던 때 거의 막바지에 ‘선생님의 호를 지어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순홍’ 선생이라고 부를게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꼬시더니 이렇게 고생시키냐’고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그 호 아주 잘 쓰고 있어요.”

그 후로 그는 박애리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순홍’ 선생으로 불린다. 연출 데뷔작 ‘반쪽이전’을 비롯한 ‘숙영낭자전을 읽다’ ‘숙영낭자전’ ‘몽연’ ‘황진이’ ‘서편제’ 등 그의 작품들은 전통예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 언어가 주는 말맛이 좋아요. ‘그러시게’ ‘그러하나’ ‘여보시오’ 등 요즘 쓰지 않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썼던 그 말체를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했어요. ‘왔는가’ ‘탁배기 한잔 하소’ 등 전라도에는 여전히 그 말맛이 살아 있어요.”

그 말들이 사라져 가고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현실이 못내 안타까워 “그런 작품들을 만나면 그런 말을 쓸 수 있어서”였단다.

“게다가 무대예술이 해야하는 책임 중 하나가 언어에 대한 표현을 다시금 되살려 정서를 전달해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복이 주는 아름다움, 몸의 동작이 주는 세련됨 등 옛말 뿐 아니라 시대를 담고 있는 것들이 너무 좋아요.”

“남은 건 빚과 프로그램 북 뿐”이라던 권호성 연출은 연출 30년을 맞아 다양한 행보를 준비 중이다.

“30주년 기념 책을 하나 내려고 해요. 가칭 ‘순홍문집’이죠. 각 작품별 연출의 변, 간단한 자료, 코멘트 등과 여행기, 썼던 글들을 모아 담으려고 해요. 저 뿐 아니라 저희 극단(모시는 사람들)도 30주년이에요. 30주년 기념작으로 오는 6월 ‘블루사이공’이 15년만에 돌아옵니다. 예전처럼은 못올라가요. 전 시즌에 출연했던 배우들과 함께 딱 4일만 할 거예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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