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Pair Play 인터뷰] 뮤지컬 ‘난설’ 정성일·최석진의 지음 “너는 늘 그 사람과, 나와 함께였는데…아니었느냐?”

입력 2020-08-26 18:30

최석진 정성일
뮤지컬 ‘난설’ 허균 역의 최석진(왼쪽)과 이달 정성일(사진=이철준 기자)

 

“아직 할 말이 있다. 허균 선생이 죽을 때 가장 많이 했다는 이 말을 우리 극으로 끌고 오면 관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난설’ 첫 장면에 ‘할 말 있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들어가요. 나 허균이 이렇게 살아오게 된 데 대해 ‘할 말이 있다’죠.”



뮤지컬 ‘난설’(9월 6일까지 콘텐츠그라운드)에서 허균(최석진·유현석·최호승, 이하 관람배우·시즌합류·가나다 순)으로 분하고 있는 최석진은 “우리가 알고 있는 허균이 그런 기록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고, 그런 일들을 할 수 있게끔 된 이유가 우리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일종의 프리퀄”이라고 소개했다.

뮤지컬 ‘난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허균이 역모죄로 처형되기 전날 밤 그를 찾아온 누이 허초희(정인지·김려원·안유진)와 스승 이달(정성일·안재영·양승리)의 이야기다. 남매이자 스승이며 서로의 지음(知音)이기도 한 세 사람의 이야기가 허난설헌의 실제 시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 ‘견흥’(遣興), ‘상봉행’(相逢行), ‘가객사’(賈客詞), ‘죽지사’(竹枝詞), ‘유선사’(遊仙詞) 등에 변주돼 실린다.


◇허초희에서 허균으로, 허균에서 이달로
 

최석진
뮤지컬 ‘난설’ 허균 역의 최석진(사진=이철준 기자)
“공연 안에서 배우들의 목적이 뚜렷했어요.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기도 하죠. 내 자극이나 서사도 필요하지만 초희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야했거든요.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균이의 서사에도 넘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극에서 중요한 건 ‘허균이 어떻게’가 아니라 ‘초희와 함께 있음으로서 균이 얼마나 바뀌는지’였어요.”

이어 “제가 했던 모든 작품 중 연습 과정이 가장 나이스하고 순탄하게 흘러갔다”고 전한 최석진은 “세상을 등지고 모든 걸 경계하는 균의 변화도, 모든 정서들도 누나 초희로 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균이 안에서 초희가 더 커지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는 최석진은 “균의 감정이 초희에게도, 이달에게도 영향을 주는 편이라 한 가지 감정만으로 극이 흘러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기에는 할 얘기가 너무 많은 극이거든요. 누이를 잃은 슬픔과 이달을 보면 화가 나는 단순한 감정으로 극이 흘러가기 보다는 복잡한 감정을 계속 쓰려고 했죠. 연습 때부터 끝나고 나면 (정)성일이 형한테 부탁을 했어요. ‘내가 너무 화를 내는 것 같으면 얘기를 해달라’고. 화를 내거나 소리를 침으로 해서 그냥 후루룩 흘러가 버리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런 쉬운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어 “뭔가 말을 안하더라도 혹은 차분히 말하거나 눈빛만으로 복합적인 감정들을 표현하려다 보니 좀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달 역의 정성일도 “이 작품은 허초희라는 인물 이야기”라며 “이달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세우고 표현해야할지 고민했고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을 보탰다.

“이달은 명확한 사실이나 정보도 없이 균이에 의해서 전해져 내려온 사람이에요. 실존 인물이지만 ‘스승’이라는 것 말고는 정보가 별로 없죠. 옷도 깔끔하게 입지 않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던 사람이라는 실존 인물의 면모를 바탕으로 극 중 인물에 집중했어요. 더구나 이 극 안에서의 이달은 균이 죽기 전 떠올리는 스승, 균이가 고민하고 돌아보는 시간 중 한 텀 같은 느낌이거든요.”

정성일
뮤지컬 ‘난설’ 이달 역의 정성일(사진=이철준 기자)

 

정성일의 말처럼 ‘난설’에서 이달은 “무대 위에서 직접적으로 서사와 감정을 보여주기 보다는 균이 생각하는 자아 안에서의 모습이 대부분”인 인물이다. “무대 위에 오래 있는 극들을 주로 하다가 오랜만에 분장실에 오래 있어 본다” 웃는 정성일은 “감정과 서사의 연결이 쉽지는 않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저는 ‘유령존’이라고 부르는데 죽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이달은 균에 의해서 떠올려지고 이야기되는 굉장히 복잡한 인물이죠. 그래서 균이의 감정을 많이 받아서 들어가는 편이에요. 균이 초희에게 영향을 받는다면 저(이달)는 균의 감정을 서포트하는 느낌이랄까요.” 

 

NansulChohee
뮤지컬 '난설' 허초희 역의 정인지(왼쪽)와 김려원(사진제공=콘텐츠플래닝)

이어 허초희에 대한 모호한 감정의 결에 대해 “지난 시즌 공연을 보고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는 ‘사랑’과 ‘존경’의 경계가 좀 헷갈리기는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옥경선) 작가와 (이기쁨) 연출이 완전 배제를 했어요. (초희와 이달이) 남녀의 만남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죠. 초희를 만났을 때도, 균을 만났을 때도 스승과 제자로서의 만남 자체가 보이길 원했죠.”


◇균의 ‘또 다른 세상’, 이달의 ‘불완전하였으나 완전했던’ 허초희

 

최석진 정성일
뮤지컬 ‘난설’ 허균 역의 최석진(왼쪽)과 이달 정성일(사진=이철준 기자)
“극 중 균이에게 얘기하듯 이달에게 초희는 ‘불완전하였으나 완전했던 사람’ ‘시 한수로 지상과 천상을 넘나들었던 사람’ 같아요. 초희가 스승이라고 부르지만 저보다 더 행할 수 있고 진취적이고 더 넓은 세상을 가진, 실질적으로 저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으로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이야기의 중심인 초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정성일은 “초희를 붙잡지 않는 데 대한 균의 원망에 ‘내가 바라는 세상, 그 사람이 바라는 세상은 나 같은 사람이 있어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고 하는 이유도 그래서다”라고 덧붙였다.

“제(이달)가 생각만 했다면 초희는 행할 수 있고, 불합리한 세상에 대고 말할 수 있고, 말해보자고 권할 수 있는 사람이죠. 제가 갇힌 세계에서 문을 열고 앞으로 조금씩 나올 수 있게 해줬던, 오히려 스승인 사람이요.”

극 중 이달은 얼자로 “감히 형님이라 부를 수 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당해도 그저 웃어넘기며 세상에 벽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허균 역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방에서 나가지 못하고 스스로를 가둔 채 살아가고 있다. 최석진은 “저희 엄마가 얘기해주셔서 새로 깨달은 것이 있다”며 “제(허균)가 생각했던 것보다 누이라는 존재가 더 컸다”고 말을 보탰다.

“균이랑 초희가 싸우는 장면에서 저는 단순히 ‘위험하니 말려야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저희 엄마는 ‘너무 슬펐다’고 하시더라고요. ‘초희가 나가버리면 균이는 또 혼자잖아’라고 하시는데 균이는 누이를 통해 세상을 봤잖아요. 그 사람이 없어져 버리면 엄청 커다란 세상, 또 다른 세상이 없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최석진의 말에 정성일은 “목표의 기준치가 다른 사람 같다. 그 시대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정말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동의를 표했다.

“작품을, 인물들을 알아가면서 더 슬플 때가 있어요. 백스테이지에서 제가 해야할 것들을 하려고 무대를 보면서 밑도 끝도 없이 울컥해질 때가 있어요. 그게 이 작품, 인물들의 매력이죠.”


◇울컥하게 하는 허초희의 한복 그리고 ‘견흥’

20200731-IMG_0589
뮤지컬 ‘난설’ 허균 역의 최석(사진=이철준 기자)


“그렇다고 방에 틀어박혀 머리나 땋고 앉아서 수나 놓고 있으란 말이냐?”

허균 역의 최석진은 극 중 허초희의 이 반문을 “객석에서 볼 때도 가슴 아팠는데 배우로 무대에 올라서도 울컥하게 되는 대사”라고 꼽았다.

“무대에서는 어떤 대사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데 특히 이 대사는 캐릭터성을 확실하게 하는 것 같아요. 이 대사가 초희는 ‘저런 사람’임이 단번에 다가왔고 그래서 처음 한복을 입은 누이가 등장했을 때가 너무 슬펐어요. 결국 저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가장 슬펐던 것 같아요.”

 

이어 최석진은 지난해 공연을 보고 초희 역의 정인지와 나눴던 대화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는 “초희가 처음 한복을 입고 나오는 장면들에서 울컥했다는 얘기를 했더니 (정)인지 누나도 그랬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2020난설_공연사진_9_안유진 [제공=콘텐츠플래닝]
최석진과 정성일은 한복을 입고 처음 등장하는 허초희를 가장 강렬한 장면으로 꼽았다(사진제공=콘텐츠플래닝)

 

“인지 누나랑 ‘테레즈 라캥’을 같이 할 때였어요. 인지 누나는 자신이 연기할 때는 몰랐는데 다른 배우의 드레스 리허설을 보고는 ‘내 캐릭터인데도 울컥했다’고 하더라고요. 의상이 주는 힘이 무엇보다 대단한 장면 같아요. 대사도 없이 그냥 힘들게 나오는 그 장면이 100마디 말이나 그 어떤 촘촘한 서사보다 슬프고 강한 인상을 주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이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곤 “초희 누나들이 한복을 입고 나올 때 수치스러워하는 느낌을 받는다”며 “의상만으로 보면 한복이 더 예쁘겠지만 누나들이 그 단정하고 쪽진 모습을 수치스러워하는 기운이 느껴져 아프다”고 덧붙였다. 정성일은 이 장면과 더불어 허초희가 자신의 시를 태우며 ‘난설’을 읊은 후 허균과 함께 부르는 막바지의 ‘견흥’을 가장 좋아하는 넘버로 꼽았다. 

 

“한복을 입고 등장하는 초희 장면은 출연 전에도, 무대에서도 강렬한 장면이라면 ‘견흥’은 무대에서 함께 하면서 더 가슴에 와닿는 것 같아요. 초희가 ‘난설’을 부르고 나서 ‘견흥’을 부를 때 미칠 것 같아요. 그 몸짓 하나, 손짓 하나, 노래 하나가….”


◇최석진의 ‘광한전백옥루상량문’, 정성일의 ‘검고 검은 붓으로 낮을 그렸다’


20200731-IMG_0555
뮤지컬 ‘난설’ 이달 역의 정성일(사진=이철준 기자)

“초희와 균이 함께 부르는 넘버 ‘광한전백옥루상량문’과 대사들이 너무 좋아요. 이 넘버를 부르고 나서 누이가 ‘이 이야기가 그리 좋으냐’고 묻고 ‘저 문 너머 끝없이 펼쳐진 세상이 싫을 때 누이가 지은 다른 세상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소’라는 대사까지.”


이렇게 전한 최석진은 “우리 극이 말하고자 하는 ‘이게 진짜 세상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세상 이야기를 들으면 저 밖 세상이 정말 그럴 것만 같다”고 말을 보탰다. 정성일은 “겁이 났다. 나도 너처럼 겁이 났어”를 가장 와닿는 대사라고 털어놓았다.

“인간적인 나약함이 느껴졌거든요. 이달을 늘 나약한 사람, 항상 결핍인 상태에서도 무언가를 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리고 싶은 이달을 대표하는 대사는 ‘검고 검은 붓으로 낮을 그렸다’예요. 가진 게 없어도, 우리가 가진 것 안에서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 것을 찾는 사람, 그게 제가 그리고 싶은 이달 같아요.”

그리곤 “이 작품이 좋았던 이유는 ‘서로의 지음’이었다”며 “자신의 옆에 있는 누군가 중 내 지음이 돼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당신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난설’은 그 메시지를 ‘지음’이라는 명확한 단어로 던지고 있죠. ‘너는 늘 그 사람과, 나와 함께였는데…아니었느냐?’라는 질문을 들으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고픈 말 1000가지, 그 중 ‘지음’

20200731-IMG_0516
뮤지컬 ‘난설’ 이달 역의 정성일과 허균 최석진(사진=이철준 기자)

 

“저희가 ‘난설’을 통해 말하고자하는 건 너무 많아요. ‘이건 꼭 알아가면 좋겠다’는 게 1000가지는 되거든요. 저희들이 무대 위에서 관객들께 보내는 기운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못느끼셔도 괜찮아요. 그저 위로 받으시거나 슬퍼만 해주셔도 돼요. 저처럼 억울하게 느끼시거나 초희가 기뻐하는 모습에 같이 기뻐하신다면…그대로도 좋을 것 같아요.”

최석진의 “하고 싶은 말이 1000가지도 넘는다”는 토로에 정성일은 “1000가지 중 제가 꼽는 하나는 역시 지음”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매 공연 무대에 오르면서 생각해요. 주위의 누군가를 돌아볼 여유를 가지기를. 옆 사람에게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내가 되면 좋겠다고. ‘난설’을 보시면서 관객분들도 자신이 외롭지만은 않음을, 분명 본인들 옆에는 손내밀어줄 누군가 한명이라도 있음을 아셨으면 좋겠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