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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r Play 인터뷰]뮤지컬 ‘호프’ 김지현·백형훈① “이 동네 미친년” “내가 너고 네가 나야” “다른 사람의 기준이 되기 위한 존재”

입력 2023-06-04 14:00

뮤지컬 호프 백형훈 김지현
뮤지컬 ‘호프’ K역의 백형훈(왼쪽)과 에바 호프 김지현(사진=이철준 기자)

 

“내 옆에 누구 한 사람만 있어도 살아간다고 하잖아요.”



뮤지컬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6월 11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이하 호프)에서 에바 호프(김선영·김지현·이혜경,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로 분하고 있는 김지현은 이렇게 말했다.


뮤지컬 ‘호프’는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미발표 유작 원고 반환소송 실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2019년 초·재연, 2020년 삼연에 이은 네 번째 시즌이다. 거장 요제프의 미발표 원고를 의인화한 K(조형균·김경수·백형훈)를 지키기 위해 30여년간 법정에서 고군분투해온 호프를 통해 오롯이 나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다룬다.

 

뮤지컬 호프 김지현
뮤지컬 ‘호프’ 에바 호프 김지현(사진=이철준 기자)

 

‘사랑’을 되찾기 위해 딸까지 제쳐주고 K에 광적으로 집착했던 엄마와 그런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발버둥쳤지만 결국 뭐라도 붙들고 살고자 K를 놓지 못하는 호프를 통해 지금 살아가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생존을 위한 선택 “이 동네 미친년, 에바 호프”

 

“정말 외로움에 찌든 그런 삶 속에서 호프가 살아가기 위해 유일하게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게 K, 사실 K였다기 보다 원고였던 것 같아요. 아마도 호프는 이 원고를 수십번은 읽지 않았을까 싶어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내용 안에서 자신의 삶을 찾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 동네 미친년, 에바 호프’의 삶을 일부러 만든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는 자신이 살아갈 방법이 없었을 것 같아요.”

김지현은 에바 호프의 수식어 ‘이 동네 미친년’에 대해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삶”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소설 속에서 찾아낸 인물 혹은 그를 연기하는 배우였을지도 모른다”고 부연했다.

“저는 호프가 굉장히 똑똑한 여자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미친년 호프’란 삶을 선택했죠.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정당성을 가지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원고에 집착하는 삶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어 김지현은 “후반부 재판에서 자신의 의지와 함께 나온 ‘뭐라도 붙들고 나 좀 살자’는 대사가 진심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호프가 집착하는 K에 대해 김지현은 “어쩌면 호프의 아바타와 같은, 자기 자신이 될 정도의 존재”라고 표현했다.

뮤지컬 호프 백형훈
뮤지컬 ‘호프’ K역의 백형훈(사진=이철준 기자)

 

김지현의 말처럼 에바 호프 자신이자 내면이며 꿈꾸는 삶일지도 모를 K 역의 백형훈은 “대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며 “호프 뿐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들이 튀려고 한다면 톱니바퀴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작품이어서 그래야 이 작품의 중요한 키워드인 ‘빛난다’처럼 더 빛이 나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대본에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삶을 되찾고 스스로를 지키길 바라는 마음으로 호프를 응원하고 싶었어요. 단계별로 응원의 메시지를 계속 보내는 데 좀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요. 평소에는 친한 친구 혹은 엄마와 아들처럼, 어떤 때는 오빠와 여동생 같다가도 인물의 주객이 전도돼 단호하게 말할 때는 말하면서.”

호프-7
뮤지컬 ‘호프’ K역의 백형훈(위)과 에바 호프 김지현(사진=이철준 기자)

배우로서 바라는 수식어에 대해 김지현은 “제가 일본 사계에서 같이 작업했던 지혜롭고 똑똑한 음악감독 친구가 저에게 어느 날 ‘김 선생님은 포기 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서 놀랐다”며 “저도 모르게 하는 행동들로 그들에게도 보여진다는 데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모두가 안될 것 같다고 했을 때도 저는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계속 바꿔가면서 보여주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는 배우’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쁘지 않았어요. 계속 그런 배우로 있고 싶어요.”

백형훈은 “어렸을 때는 ‘스타’라고 해야 할지, 그런 위치에 있는 배우들을 보고 꿈을 꿨다”며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좀 오래, 지금의 내 모습을 유지하면서 배우를 할 수 있는 게 중요해졌다”고 전했다.

“최근에 제 팬이 되셨다는 어떤 분께 편지를 받았어요. 저를 모르는 상태에서 작품을 보러 왔는데 그 후부터 자꾸 눈길이 가더니 다음 작품들을 찾게 됐다면서 ‘믿고 보는 배우가 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죠. 그냥 그 정도로만 계속 돼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곤 “잘하는, ‘믿고 보는 배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꼭 제 팬이 아니어도, 어떤 작품에서 제 이름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 않더라도, 굳이 찾아보진 않더라도 제가 있는 게 나쁘지 않은 정도의 배우여도 저는 충분하다”고 부연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캐스팅 변경이 정말 잦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도 저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저를 좋아하게 되는 게 아니라도 보러 와주실 정도의 배우만 돼도 너무 만족해요. 캐스팅이 변경됐을 때 울며 겨자 먹기로 왔는데 공연의 만족도가 좋았다는 게 사실 저에게는 최고죠. 내가 열심히 잘 하고 있구나 싶거든요. 그렇게 계속, 오래 배우가 하고 싶어요.”


1%의 어떤 것 “내가 너고 네가 나야”

 

뮤지컬 호프 김지현

뮤지컬 ‘호프’ 에바 호프 역의 김지현(사진=이철준 기자)

 

“호프는 정말 천한 취급을 받는 그런 존재잖아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상태에서 원고 하나를 지키겠다고 30년을 싸우죠. 내 건 이거 하나인데. 호프와 달리 원고는 호프를 비롯한 모두가 원하는 존재예요. 엄마에게, 연인에게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을 K라는 존재는 받고 있죠. ”

극 중 호프는 수도 없이 “내가 너고 네가 나야”를 외치곤 한다. 이에 대해 김지현은 “호프에게 K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해서 나한테서 가져가고 싶어 하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넌 나야’ ‘넌 내가 돼야 해’라는 의지가 아주 강해요. K와 떨어지면 난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삶을 선택한 거죠. 호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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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호프’ 공연 중인 김지현(사진제공=알앤디웍스)

김지현의 말에 백형훈은 “K에게 호프는 나를 소유했다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중 한명일 뿐이지만 가장 오랫동안, 그의 아픔을 지켜봐온 사람”이라고 호프와 K의 관계를 밝혔다


“K가 수호신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느낌은 있어요. 옆에 있어주고 바라만 볼 뿐 어떤 아픔을 겪지도, 이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도 없으니까요. K는 ‘내가 너고 네가 나야’라고 할 때마다 호프를 밀어내요. 저를 계속 가지고 있다면 호프는 불행해질 걸 알고 있으니까요. K는 그런 생각도 좀 가지고 있어요. 모든 일이 나 때문에 일어났다, 내가 차라리 없었으면…. 그래서 내가 필요 없을 정도로 호프가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싶죠.”

이렇게 전한 백형훈에 김지현은 “K는 호프에게 자신을 태우라고 할 정도로 그의 인생을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K는 호프 머릿속에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대상과 계속 대화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을 보탰다.

“K가 외치는 소리들은 어쩌면 호프가 자기 자신한테 던지는 소리예요. 결국 호프 혼자서 혼잣말을 계속하고 있는 거죠. 호프가 99%였고 K가 얘기하는 부분은 내 안에 있는, 내가 바라는 1%의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뒤로 갈수록 두 부분의 %가 바뀌면서 진정한 호프가 나오는 거죠.”

호프처럼 나다운 나로 서기까지 K처럼 내 모든 것을 지켜봐주며 때론 다독이고 때론 쓴소리도 하며 함께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곤 한다. 그런 존재를 김지현은 “신앙”이라고 했다. 

 

“그걸로 지금 현재 제가 존재하고 있거든요. 일본에 있을 때도 그랬고 그 신앙이 없었다면 아마 제 자신을 지킬 수 없을 수도 있었고 그 안에서 배운 것들로 제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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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호프’ 공연 중 백형훈(사진제공=알앤디웍스)

 

백형훈은 “어쨌든 가족”이라며 “굳이 말씀 드리자면 제 와이프가 될 수도 있는데 약간 독특하게 응원을 해준다”고 털어놓았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잘 될 거야’ 꼭 성공할 거야’ 이룰 거야 라고 안해요. ‘힘들면 그만 둬 내가 먹여 살릴게’ 이렇게 응원해줘요. 아내가 봤을 때는 저희들이 하는 일이 정말 힘들어 보이나 봐요. ‘정말 너무 힘들면 내려놓고 우리 진짜 행복을 찾아 보자’고 해요.”

 

백형훈은 “이 일을 하다 보면 모든 일이 그렇듯 좀 불합리한 경우도 겪게 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에 치이기도 하고 늘 평가 속에 있어야 하기도 한다”며 “주변에서 ‘잘 될 거야’하는 것도 진심을 담아 해주는 말이지만 저희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건네는 아내의 현실적인 위로가 오히려 힘이 됐다”고 말을 보탰다.

“사실 처음엔 서운했거든요. 그런데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니까 오히려 이 일이 좀 편해지더라고요. 호프가 K를 붙잡듯 ‘이 일이 아니면 안돼’ ‘지금까지 해온 게 이 일이고 잘하는 것도 이 뿐인데 이걸 안하면 내가 어떻게 살아’ 했을 때는 스트레스가 진짜 너무 많았어요. 와이프가 ‘언제든 떠나도 된다’고 해주니 오히려 더 편하게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 내 기준 “다른 사람의 기준이 되기 위한 존재”

뮤지컬 호프 백형훈
뮤지컬 ‘호프’ K역의 백형훈(사진=이철준 기자)
“극 중 호프는 스스로 선택한 거예요. 다른 사람의 기준이 돼 줘야겠다고.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벌을 준거죠. 솔직히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오히려 반대죠. ‘내로남불’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극 중 “다른 사람의 기준이 되기 위한 존재”라는 문장에 대해 김지현은 “누군가의 멘토가 될 만큼의 좋은 존재는 엄청남 모티베이션이 될 수 있지만 호프는 거꾸로 스스로 나쁜 기준이 되기를 선택했다”고 부연했다.

“그 원고 소유권을 두고 30년 동안 시달리면서 자신이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자신이 나쁜 기준이 돼주면 날 가만히 내버려두겠지 라는 생각에 선택한 그녀만의 생존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K가 ‘누군가의 기준이 되기 위해서 네 삶을 포기 하지마’라고 할 때 호프가 ‘네가 할 말은 아니다’라고 답해요. 너로 인해 (나쁜 기준이 돼주는) 이 길을 선택한 것이라는 말이 포함돼 있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기준이 되기 위한 존재’는 그녀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의미하는 문장이죠.”

백형훈은 “대부분 그렇듯 저 역시 일상을 포기하면서 살아가는데 그게 누구의 기준인지 모르겠다”며 “가끔 남탓도 하는데 알고 보면 ‘내 기준’일 때가 대부분”이라고 털어놓았다.

“제가 공연할 때 잘 안먹어요. 테크니컬적으로 불편해지는 부분도 있고 관리의 차원이기도 하죠. 누군가의 기준이 되기 위해 제 일상을, 먹고 싶은 걸 포기하면서 저 보다는 배우의 일상을 훨씬 더 챙기게 된달까요. 자기 편한 대로 다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한테 엄격하게 기준을 세우죠. 이 일을 하는 동안은 ‘다른 사람의 기준이 되기 위한 존재’라는 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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