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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역시 '갓병헌'이라 불릴만 하다!

[人더컬처] 영화 '비상선언'의 이병헌, 평범한 부성애 스크린에 녹여내
코로나19 팬데믹 전 받은 시나리오, 두 번의 개봉 연기 후 관객 만나
"함께한 훌륭한 배우들 존경스러워"

입력 2022-08-01 18:30 | 신문게재 2022-08-0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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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개봉을 준비하던 ‘비상선언’은 두 차례의 개봉 연기 후 8월 3일 관객과 만난다.(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시나리오를 받은 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발견되기 전, 무려 3년 전인 2019년이었다. 폐쇄된 공간, 그것도 비행기 안에서 퍼진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승객들의 이야기를 그린 ‘비상선언’은 이병헌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글로벌 대세가 된 K컨텐츠 속에서 이병헌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강수연이 해외 영화제의 포문을 열었고 박중훈이 할리우드에 진출한 첫 한국인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알렸다면 그는 국제적인 명성과 더불어 대중성을 확보한 존재로 꼽힌다.

그의 할리우드 데뷔작 ‘지.아이 조’ 시리즈에서 이병헌이 맡은 ‘스톰 셰도우’는 원래 복면을 쓴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의 남다른 존재감에 감명받은 할리우드 제작진이 분량을 늘리고 얼굴을 공개한 일화는 유명하다. 한국에서 다져진 성실함과 특유의 친화력에 콧대 높은 스타들이 이병헌을 다르게 본 이유는 딱 하나. 자국의 스타덤을 믿고 잰체했던 다른 배우들과 달리 초심으로 돌아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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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2013), ‘더 킹’(2017)의 한재림 감독이 연출한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항공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와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비상선언은’ 항공 테러로 무조건 착륙해야 하는 재난 상황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리얼리티 항공 재난 드라마다. 이병헌은 비행공포증을 앓고 있지만 딸아이의 치료를 위해 비행기에 오른 탑승객 재혁 역을 맡았다. 

 

“극 중 재혁이 느끼는 비행공포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의 공황장애는 저 역시 과거에 겪어봤던 일이에요. 호흡이 어떤지, 어떤 공포를 느끼는지 경험이 있기에 좀 더 디테일하게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출연 결심은 역시나 시나리오의 힘이죠. 한재림 감독님과는 여러 번 함께 할 기회가 있었는데 스케줄상 불발되다 드디어 ‘비상선언’으로 뭉친거죠.”

손에 든 순간부터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까지 흡사 ‘비상선언’이 보여주는 비행속도만큼이나 휘리릭 읽혔단다. 개봉을 앞두고 코로나19를 직접 겪어보니 이미 촬영이 끝난 작품임에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다. 개봉 조율 중 칸 국제영화제의 부름을 받은 건 운명이었다. 

 

당시 영화제 역시 전쟁도 아닌 바이러스로 개최시기를 변경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칸의 여왕’ 전도연과 그 해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송강호, 가장 ‘핫’한 영화산업의 메카인 아카데미에서 아시아 배우 최초로 시상자로 초대된 이병헌의 조합은 당시 가장 시의적절하고 생존에 대한 원초적인 감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황금종려상에 비견될 만한 화제를 모으기도. 

제74회 칸영화제에서 최초 공개 당시 극장 안에서 네 번의 박수가 쏟아질 정도였다. 극 초반부터 끝까지 아역 김보민과 부녀로 호흡을 맞추며 재난 상황 속에서 트라우마와 맞서는 모습, 뜨거운 부성애 등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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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훌륭한 배우분들이 함께 해서 자신감도 있었고, 의지도 됐다”며 함께한 동료들에게 공을 돌리는 모습이었다.(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시기적으로 ‘남산의 부장들’ 이후 관객분들과 만난게 3년 만이에요. 무대인사와 시사회 반응이 피부로 와 닿는 요즘이 정말 행복합니다. 실제로 아들을 둔 아버지이기에 더욱 확신을 갖고 연기에 임했습니다. 재미있는 게 ‘백두산’에서 제 딸로 나온 배우가 ‘비상선언’의 딸과 자매 사이거든요. 엄청난 클리셰(캐릭터의 유형)를 가진 배우들이라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더라고요. 어떻게 저렇게 어린 나이에 쿨한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정말 쿨한 연기를 해서 어머님에게도 ‘이 친구들은 정말 좋은 배우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죠.”

 

아들의 나이와 똑같은 수준으로 놀아주자 주의라는 이병헌은 ‘비상선언’을 위해 딸을 가진 지인들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며 다른 연기톤을 소화했다. 그는 “전 주로 육체적인 힘이 많이 드는 육아인데 딸 가진 아빠들은 말로 조곤조곤 육아를 하더라. 되게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육아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아들을 대할 때와 딸을 대할 때의 눈빛, 터치, 말투 등이 달랐다”고 미소지었다.

‘비상선언’의 또 다른 장점은 실제 비행기 안에서 겪는 공포가 사실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대형 비행기 세트장이 들어선 촬영장은 이병헌에게도 감정이입에 큰 도움이 됐다. 할리우드에서 공수한 대형 모형에 국내 기술진이 360도 회전 짐벌을 달아 100여명의 배우들이 한 공간에서 실감 나게 연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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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인 이민정은 지난 25일 ‘비상선언’ VIP 시사회에 참석해 특급 내조를 펼쳤다. 이병헌은 “서로 문자도 확인 못할 만큼 바빴는데 끝나고 나서 ‘다음날 촬영 있는데 눈 퉁퉁 부어서 어쩔 거냐’고 투정 문자가 와 있더라”며 가쁨을 감추지 못했다.(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원래는 짐벌도 할리우드에서 공수하려 했는데 팬데믹으로 불투명하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가 제작하게 됐는데 할리우드에서도 이런 도전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겁도 나지만 뿌듯하기도 해서 ‘비상선언’을 본 관객들에게 시그니처 장면으로 각인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쨌거나 이병헌은 사실상 ‘비상선언’의 원톱 주인공이다. 배우들끼리는 공중전과 지상전으로 나뉠 만큼 각자의 활동영역이 달랐지만 그만큼 서로의 ‘공조’가 영화를 살린다. 

승객으로 나오는 배우들 조차 연극계에서 오래 갈고 닦은 실력파들이 긴 오디션 끝에 합류했기에 이병헌으로서도 존경심을 가지고 매순간 배우기의 연속이었다고. 

“매순간 감동이었어요. 정말 좋은 배우들과 이 공간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늘 긴장하면서 호흡을 맞췄지만 리얼한 연기를 하는 그 분들을 보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실 영화를 찍을 때 ‘이 캐릭터가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하는데 이 영화만큼은 정말 대답을 못하겠어요. 완성작을 보니 다들 정말 많이 고생했구나 싶어 울컥했어요.”

 

이병헌은 ‘비상선언’을 한 마디로 정의해 달라는 말에는 긴 시간 침묵을 지켰다. 작은 희생이 필수불가결하다는 냉정함과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묵직하게 오고가는 작품의 주제를 누구 보다 더 알기 때문일 터. 

“저는 이 영화가 롤러코스터 같다는 생각을 해요. 재난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 거니까요. 차기작이요? 이런 시기에 질보다 양으로 승부를 보려고 한다면 또 다른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좀 더 신중하게 좋은 작품으로 만나길 희망합니다. 기다려주세요.(웃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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