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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왜군을 맡을거라 생각했던 이 배우의 '반전 캐스팅'

[人더컬처] 거북선 만든 나대용 장군 연기한 박지환 "기뻐서 손이 떨리기 보다 부담감에 덜덜…"
500만 향해 달려가는 영화 '한산: 용의 출현', "구국영웅들 더 추앙못해 아쉬워"

입력 2022-08-08 18:00 | 신문게재 2022-08-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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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용의 출현’의 박지환. 그가 맡은 나대용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을 개발하고, 전라 좌수사 이순신 장군을 도와 한산도대첩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는 인물이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영화가 국뽕이라니요. 더 존경받아 마땅한 분들인데…”

영화 ‘봉오동 전투’가 끝난 직후 김한민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을 아냐고 물은 뒤 출연을 제의해왔다. 극 중 비열하고 잔인한 일본군 역할을 맡았던 박지환은 당연히 이번에도 ‘왜군이려니’ 하고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곳은 성웅 이순신에 대한 모든 것이 총망라된 공간이었다. 

그는 “이런 말 하면 안되지만 흡사 도깨비굴 같았다. 벽에 빼곡하게 모든 역사적 자료와 사진 등 장군님에 대한 정보가 가득차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지환은 지금도 김한민 감독에게 “왜 자신에게 거북선을 만든 역할을 맡겼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 그저 “‘봉오동 전투’를 보니 저 사람에게 나대용을 맡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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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용의 출현’ 스틸컷.(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이순신 장군의 한산해전을 그린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하:한산)’은 현재 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순항 중이다. 지난 3일 ‘비상선언’이 개봉하면서는 2위로 잠시 내려앉았지만 곧 정상의 자리를 탈환하며 화제성을 이어오고 있다. 극 중 박지환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영화의 오프닝과 더불어 마지막 히든카드로 제 몫을 다한다. 

올해 팬데믹 시대 첫 1000만 영화로 등극한 ‘범죄도시2’를 필모그래피에 두었고 국민 힐링 드라마로 떠오른 ‘우리들의 블루스’로 안방을 눈물로 적셨다. 그런 박지환에게 올해는 더 없이 기쁜 일만이 가득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광고를 찍고 받은 ‘목돈’의 활용도를 묻자 “통장을 아예 들여다 보지 않고 있다”며 남다른 재테크 비법을 밝혔다. “그저 날마다 그날의 점심과 커피 값을 낼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기름값이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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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용의 출현’의 박지환.(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나대용이란 분은 당시 너무 엄청난 인물이셨기에 흔쾌히 맡겠다는 말이 안나왔어요. 장군이면서 동시에 토목과 과학, 건축 등에 능통한 분이셨거든요. 여기저기 알아보니 과학의 날인 4월 21일에 후손들이 거북선을 만든 여수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하기에 바로 그 곳으로 내려갔죠.”

현장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박지환은 그 곳에서 문중사람들에게 때 아닌 견제를 받기도 했다. 자신이 이 역할을 맡는다는 사실조차 알리기가 조심스러워 “그저 존경스러운 분이라 만나 뵙고 싶었다”고 둘러댔다. 이후 나대용의 후손들이 전하는 여러 정보들을 섭렵하며 캐릭터를 구축해갔다. 이후 생가에 가서 앉아도 보고 왜군과 맞서 싸웠던 영산강 뚝방길을 걸으며 정작 거북선과는 무관한 엄청난 전율을 경험했다.

“한산도에 들어가서 2박 3일 바다를 바라보며 ‘장군님, 제발 꿈에라도 얼굴만 보여주세요!’ 빌기까지 했어요. 역할을 맡아 좋아서가 아니라 부담감에 손이 떨려서 간 거라 끝장을 보고 싶었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연기가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렇게 어느 새벽에 바닷가를 걷는데 당시 전투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거예요. 당시 나라를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뭉친 조선 해군의 모습은 왜군이 아닌 귀신부대 열개가 와도 못이기겠다는 비장함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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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나대용 역할을 맡은 그는 기쁨보다는 부담감과 고뇌가 더 깊어졌던 캐스팅 순간을 밝히며 한 달간 떠난 캐릭터 구축의 시간을 담담히 밝혔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가장 경계한 건 실존인물을 그린다는 강박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길은 무려 한 달간 이어졌다. 서울에서 만난 감독에게도 바로 하겠다고 하지 않고 “이제 좀 해 보려고 한다”는 말로 시간을 더 벌었다.

박지환은 악역 배우로 주로 소비됐지만 “내 안에는 내가 너무도 많다. 아쉽거나 힘들지 않고 악역 안에서도 끊임없이 변주하며 그게 언젠간 밭이 될 거란 생각으로 꾸준히 나를 심어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산’의 나대용은 배우이기 전에 한 개인으로서 한 없이 여운이 남는 영화다. 

“제 인생의 한 작품이기에 부끄러웠어요. 나란 인간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나 싶더라고요. 나라를 구하신 분이잖아요. 얼마든지 3절, 4절, 5절을 찬양해도 모자란 분 아닌가 싶어요. ‘국뽕’이라는 말은 만들어진 단어일 뿐이죠. 이런 분들은 더 찬양받고 칭송받으면 좀 어떤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더 못해드려서 죄송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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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브릿지경제와 만난 그는 “한산도에 머물던 어느날 새벽 바닷가를 걷는데 눈앞에서 전쟁하는 모습이 펄쳐졌다. 이 바다가 당시엔 모두 핏물이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돋았다.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지를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 같다”며 ‘한산’을 연기하기에 앞서 예의를 지키고 싶었던 다짐을 들려줬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여전히 바쁜 일상이지만 박지환에게 변한 건 별로 없다. 지난 3일 첫 방송을 시작한 tvN 예능 ‘텐트 밖은 유럽’에 고정출연하며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그는 “연달아 대박이 났다고 말씀해주신다면 저는 주인공 옆에서 정말 잠깐 종이 한장 들어준, 작은 일을 한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뭔가를 이뤘다는 것에 대한 세리머니보다 이것을 어떻게 좀 더 나누고 좋게 회전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고 특유의 진중한 대답을 내놨다.

10대 시절부터 김수영의 시에 심취하고 얼마전까지 건강을 위해 요가를 꾸준히 할 정도로 반전 매력을 지닌 박지환은 “최근에는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고 그저 저 자신을 위한 소소한 프로젝트에 치중하고 있다”며 특유의 비밀스런 일상을 슬쩍 흘린다. 그가 목표로 하는 배우상은 언제나 ‘4등’ 정도의 위치다. 최선을 다했지만 메달은 3등까지 가져가는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달리고픈 이유란다. 박지환의 4등이 요즘 세상에서 남다르게 다가오는 건 비단 그만의 소망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출전하는 경기를 늘 보고싶은 이유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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