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영화연극

[B그라운드] 여전히 지금과 연결된 ‘파우스트’…“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200년 후의 미래를 보여주는 작품”

입력 2023-03-23 19:0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연극 파우스트
연극 ‘파우스트’ 연습현장(사진=허미선 기자)

 

“파우스트, 메피스토, 그레첸 등을 통해 인간 본질이 갖고 있는 원형의 아이러니, 모순적인 부분들을 잘 짚어낸 작품이 ‘파우스트’라고 생각합니다. 200여년 전 쓰여진 작품이지만 그 이전 시대의 인간과 당시의 인간 그리고 20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특히 메피스토의 대사들은 악마임에도 현대인들의 마음인 것 같아요. 그래선지 특별히 악마라고 느껴지기 보다는 지금을 살아야하는 현실의 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극 ‘파우스트’(3월 31~4월 29일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 연습실 공개 현장에서 만난 양정웅 연출은 극 중 인물들을 “지금의 우리”라 표현하며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 속을 꿰뚫고 있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연극 파우스트
연극 ‘파우스트’ 연실실 공개 현장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양정웅 연출(왼쪽부터), 노년의 파우스트 역의 유인촌, 메피스토 박해수, 젊은 파우스트 박은석, 그레첸 원진아(사진=허미선 기자)

 

“그렇게 ‘파우스트’는 여전히 현재와 연결돼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든, 현재든 인간의 욕망이라는 건 한번 질주하기 시작하면 브레이크 없이 계속 달리게 되거든요. 수많은 유혹에 노출돼 있는 부분에서 아주 인간적인 모습들을 잘 그려내고 있죠. 괴테가 메피스토 대사들에 현대인의 고민을 현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년의 파우스트를 연기하는 유인촌 역시 “저는 ‘파우스트’ 뿐 아니라 연극은 시대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며 “어쩌면 ‘파우스트’도 우리 시대를 그대로 반영해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동의를 표했다.
 

연극 파우스트
연극 ‘파우스트’ 연습 현장(사진=허미선 기자)

 

“괴테가 이 작품을 썼을 때도 과거 얘기를 끌고와 당시를 비췄던 거잖아요. 결국 미래를 보여주는 연극이죠. 250년 전에 쓴 작품이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200년 후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도록 쓰여진 작품입니다.”

연극 ‘파우스트’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동명 고전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이번 ‘파우스트’는 ‘비극 파트1’까지를 다룬다. 지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도 배움에 대한 욕망이 사그라지지 않는 노년의 파우스트(유인촌)가 악마 메피스토(박해수)와의 영혼을 건 내기를 받아들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메피스토의 부추김으로 현세의 욕망과 쾌락에 사로잡힌 젊은 파우스트(박은석)와 그가 첫눈에 빠져든 그레첸(원진아)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욕망,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연극 파우스트
연극 ‘파우스트’ 주요 출연진. 왼쪽부터 메피스토 역의 박해수, 크레첸 원진아, 젊은 파우스트 박은석, 노년의 파우스트 유인촌(사진=허미선 기자)
‘낫심’ 이후 5년 만에 메피스토로 연극 무대에 오르는 박해수는 “오랫만의 무대 연습이라 낯선 부분도 없지 않았는데 (양정웅 연출의) 극단 여행자 분들께서 첫날부터 홀딱 벗고 연기하는 것처럼 연기할 수 있게 대해 주셨다”고 털어놓았다.

“악함 보다는 악의 평범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하나하나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악한 인물들도 시초에는 악의 씨앗이 뿌려졌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고민하며 준비했습니다. 메피스토에 대한 고민은 지금까지도 계속 하고 있죠.”

1997년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를 연기한 유인촌은 박해수의 메피스토에 대해 “이 현재의 살아 있는 인물”이라고 귀띔했다.

“굉장히 현대적인 메피스토죠. 이 시대에 맞게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 과거의 경험은 전혀 도움이 안돼요. 기본적이고 포괄적인 부분에 대해 서로 조언하고 도움 되는 말은 하지만 박해수 배우 자체가 노력과 분석에 의해 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박해수는 “처음에 (유인촌) 선배님께서 메피스토에 대해 간단하게, 포괄적으로 말씀해주신 게 있는데 연습하면서 그 접점을 만날 때가 있다”며 “선생님께서는 파우스트로서 지치지 않고 같이 뛰어주시고 대사를 맞춰 주신다”고 전했다. 이에 유인촌은 “같이 보고 느끼면서 서로 에너지를 주고 받는다”며 “내가 없는 에너지를 받고 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나눠주면서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메피스토를 연기할 때는 파우스트가 고통스럽다고 생각 못했는데 이제는 느끼고 있어요. 인간으로서 최상인데도 뭔가를 더 얻으려고 하면서도 격이 떨어져서는 안돼서 수도 없이 고민 중이죠. 인간으로서 가장 많은 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기로 표현하기가 고통스러워요. 이제는 많이 비웠는데도 쉽지 않습니다.”

연극 파우스트
연극 ‘파우스트’ 메피스토 역의 박해수(왼쪽)와 젊은 파우스트 박은석(사진-허미선 기자)

 

젊은 파우스트 역의 박은석도 “(유인촌) 선생님이 1막을 끌어오시는데 2막에서 제가 단 된 밥에 코 빠뜨리면 안되니까 옆에서 많이 보고 시도하면서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선생님께서 다양한 시도를 하셔서 많이 따라가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놓았다.

 

“텍스트나 작품의 무게에서 많이 허우적 대고 있습니다. 고민하는 만큼 다른 해석이나 연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마지막까지 허우적대려고 합니다. 젊은 파우스트와 늙은 파우스트의 싱크를 맞추기 보다는 작품 안에서 파우스트가 하늘의 모든 지식을 원하는 것과 (젊어지면서) 지상의 모든 쾌락을 다 얻고 싶어하는 부분을 연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파우스트’의 그레첸으로 첫 연극 무대에 오르는 원진아는 “작품을 해오면서 좀 더 나은 배우,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은데 뜻대로 안되서 고민이 많았었다”며 “때마침 ‘파우스트’ 출연 제의를 주셔서 망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연극 파우스트
연극 ‘파우스트’ 그레첸 역의 원진아(왼쪽)와 젊은 파우스트 박은석(사진-허미선 기자)
“이 작품을 통해 제 스스로의 새로운 모습을 꺼내볼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 겁도 없이 덥석 잡았죠. 선배들, (양정웅) 연출님, 극단 여행자 단원들과 함께 하는 게 앞으로 연기를 계속 해도 된다는 것 같아서 벅찬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양정웅 연출은 무대에 대해 “어려서는 뭘 많이 채우는 걸 좋아했는데 이제 덜어내기 시작했다. 마녀도 만나고 속세를 돌아다니는 등 ‘파우스트’는 공간 변환이 굉장히 빠르고 많다”며 “리얼 세트 보다는 연극적 상상력을 펼쳐보이려고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초현실적이고 시공간이 뒤엉켜 있는, 상상과 현실, 판타지가 어우러진 그런 공간이죠. 블라디미르 스뱌토슬라비치Vladimir Sviatoslavich)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는데요. 코르크 흙 위에 파우스트의 서재가 놓여 있는 식입니다. 특이점은 아날로그 연극과 디지털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무대라는 겁니다. 8미터, 28미터의 거대한 XR LED 스크린을 들여와 컴퓨터 그래픽으로 초현실과 환상, 상상의 공간을 표현하죠. 리얼한 무대라기 보다는 예술적이면서 상상력이 발휘된 무대 연출을 계획 중입니다.”

2, 30대 젊은 관객들과의 공감대 형성에 대해 원진아는 “이번에 ‘파우스트’를 공부하면서 처음 느낀 건데 2, 30대가 방황하기 딱 좋은 나이”라며 “그렇게 방황, 고민 등을 겪는 시기에 ‘파우스트’를 보면 많은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젊은 나이에는 실수도, 방황도 하지만 그걸 바로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생각해요. 잠깐 실수라도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괴로움을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기 때문에 지금을 버티는 힘이 생긴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극 파우스트
연극 ‘파우스트’ 전체 출연진(사진=허미선 기자)

 

이어 원진아는 “내가 어떤 방황을 하고 실수를 하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했음에도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스스로 그걸 어떻게 인정하는지 혹은 외면하는지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부연했다.

 

박해수는 “20대, 30대, 40대 등 연령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이 가진 본질 안에서 욕망, 풋풋함에서 시작되는 사랑의 단계들 등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어딘가로 공연을 보러 온다는 건 누군가의 가치관을 경험하겠다는 거잖아요. 사실 지금은 그러지 못한, 제 가치관이 더 중요한 시대죠. 스스로 끄고 싶을 때 끌 수 있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시대지만 연극은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가 없잖아요. 우리가 만들어놓은 다른 누군가의 그 진심어린 가치관들에 동요해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