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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인터뷰] ESG경영 소재분야 강소기업 (주)대진에스엔티 성두기 대표

"중소기업 ESG경영 선택 아닌 생존 문제"
ESG경영 도입 후 글로벌 시장서 두각

입력 2023-04-1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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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에스앤티 대표와 이사
대진에스앤티 성두기 대표(왼쪽)과 김병탁 이사(오른쪽)이 창업스토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진일 기자)
한국의 경제를 성장시킨 직물-섬유로 이어지는 주력 수출산업은 세계 최대 생산지로 군림하며 세계시장을 석권했었다. 제2차 석유파동을 시작으로 임금인상, 보호무역주의 강화, IMF외환위기를 거치며 내리막길을 걸었고 신발 산업의 본거지인 부산시조차 100년 역사를 뒤로하고 쇠퇴 일로를 걸었다. 값싼 중국산 제품에 왕좌를 내어주자 국내 직물·섬유업체들은 부도를 면치 못했고 사양 산업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경남 김해시 진례면에 위치한 (주)대진에스앤티는 쇠퇴의 말로에서 ESG혁신경영을 통해 세계시장에 도전하며 경쟁력을 다져온 이례적인 회사이다. 나이키, 랄프로렌, 아식스, 아디다스, 보스, 디씨슈즈, 삼성, 기아차 등 국내외 유명기업의 선택을 받으며 명망을 높이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잃은 한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세계적인 브랜드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2005년 창업 이래 19년간 세계시장을 무대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현장을 이끌어온 대진에스앤티 성두기 대표를 직접 만나 물었다. “특별한 것이 있겠느냐”는 첫마디부터 깊은 고뇌와 미래를 향한 고민이 느껴졌다.

“ESG경영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결정이었다”

소재개발 부문은 2000년대 초반부터 부분적인 환경 규제가 시작됐다. 소재 생산에 사용하면 안되는 규제 물질들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나이키의 경우 2004년부터 소재 납품 거래처들에게 환경 기준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는 글로벌 기업들의 주도로 친환경 제품 기준에 충족하는 업체들만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 최대 의류 패션 기업인 VF사의 움직임이 환경규제 속도를 더 높였다. VF사는 노스페이스를 시작으로 노티카, 잔스포츠, 이스트팩, 키플링, 팀버랜드, 슈프림, 반스 등 30여개의 브랜드를 지배하는 그룹사다. VF사의 지배를 받는 브랜드 제품 생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VF시설규규정준수감사를 받아 적격통과 돼야 한다. VF시설규정준수감사는 환경 문제에 그치지 않고 안전, 노동, 복지 문제에 대한 기준도 제시하고 있어 더 까다롭다.

환경규제는 글로벌 공룡 기업뿐 아니라 자체감사를 수행할 여건이 없는 브랜드사도 참여하고 있다. 섬유, 자동차, 내장제, 화학 산업군에서는 주로 RCS(Recycleld Claim Standard)인증제도를 이용한다. RCS인증은 재활용 원료 함유량이 5% 이상이면 인증을 획득할 수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두 가지 인증으로 구분된다. 재활용 원료 함유량이 95% 미만일 경우 ‘RCS Blended’ 등급 마크를 부여하고, 95% 이상일 경우 ‘RCS 100’ 등급 마크를 부여한다.

환경규제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소재 납품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중소기업에게 기업자체감사나 인증을 획득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지만 미래를 내다보면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본격적인 고민은 2017년부터 시작하게 됐다. 합성피혁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현지화된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들과 가격 경쟁을 할 수 없게 됐다. 한국에서 소재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친환경 특수 소재를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세계적인 환경규제의 흐름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으로 과감한 투자와 연구를 시작했다. 2018년 김해사 생림면에 제2공장을 새로 설립해 수성 가공 공법을 적용했고 친환경 소재 개발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생림 공장을 새로 설립한 이유는 공장 이원화를 위해서였다. 환경감사나 인증은 모두 공정과정부터 추적관리하기 때문에 환경규제기준을 충족하는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을 한 공장에서 동시에 생산할 수 없었다. 친환경제품만을 생산하는 공장이 필요했다. 이런 노력 끝에 나이키, VF, RCS 등의 환경 기준을 충족할 수 있게 됐다. 연구의 성과도 서서히 나오기 시작해 친환경 공정과 업사이클 소재 개발도 성공하게 됐다.

대진애스앤티의 친환경 공정과 친환경 소재에 대해 궁금하다.

대진에스앤티의 친환경 공정은 원단 소재를 제작하는 원재료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존 폴리에스터는 석유에서 추출해 제작하지만 대진에스앤티는 폐패트병을 녹여 원사를 만들고 최종 폴리에스터로 제작하게 되는데 이것을 rPET이라고 한다. 기존 폴리에스터보다 생산단가가 비싸긴 하지만 지속가능한 제품을 요구하는 흐름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rPET을 이용해 자체 개발해 특허 받은 원단 제품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진에스앤티 발수성
C0발수처리로 가공한 빈티지캔버스 원단의 발수성 테스트를 하고 있다. (사진=김진일 기자)
생산공정에도 친환경 기술을 도입했다. 특히 기능성 소재에 대한 규제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많은 제조사들이 발수처리를 위해 폴리우레탄 소재 녹여 원단에 코팅한다. 폴리우레탄을 녹일 수 있는 유기용제로 많은 제조사들이 솔벤트를 사용하고 있고, 예전 제조사들의 경우 지금은 독성물질로 분류된 DMF를 사용하기도 했었다. 세탁소에서 드라이클리닝을 할 때에도 솔벤트가 쓰인다. 드라이클리닝 후 세탁된 옷에서 석유냄새가 났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솔벤트가 유성이다보니 휘발성이 강해 가공 공정 중 유해가스 형태로 공기 중에 유출될 가능성이 높고 발암물질이 나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솔벤트를 이용한 공정은 불소 등 인체에 유해한 독성물질이 나올 수 있어 시·도청 등 공공기관에서도 높은 기준으로 관리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대진에스엔티는 솔벤트와 같은 유성 유기용제를 사용하지 않고 수성공법을 이용해 발수 가공공정을 진행한다. 증류수를 사용해 폴리우레탄 등의 합성피혁을 용해해 원단을 코팅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공정이 바로 비불소·수성 발수처리 기술로 특허를 받은 ‘C0발수처리’이다.

대진애스앤티의 주력 제품 소개를 부탁드린다.

전체 매출에 상당한 양을 차지하는 것은 자동차 내장재이다. 많은 차량에 파노라마 선루프가 장착되고 있는데, 문제는 햇빛이 운전자의 차량운행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루프 롤블라인드 원단에 햇빛을 차단할 수 있는 특수 코팅 기술을 개발해 차광막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 헤드라인(천장)에 사용되는 원단을 친환경 소재인 수성 제품으로 제작했고 기아자동차는 K8모델 생산에 사용하고 있다.

대진에스앤티 열처리
김병탁 이사가 ‘빈티지캔버스’ 원단의 열처리 우수성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김진일 기자)
그 다음이 신발용 특수소재이다. 기존업체들은 신발용 소재에 빈티지효과를 위한 왁스처리를 하는데 오일과 파라핀을 사용했었다. 오일과 파라핀을 사용한 빈티지 원단은 열에 약하고 후가공후 접착이 어렵거나 발수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빈티지캔버스’ 원단을 개발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친환경소재인 rPET을 사용했고 수성 공법을 이용해 오일과 파라핀 없이도 더 뛰어난 성능의 원단을 만들어냈다. 최근엔 주로 나이키에 판매를 하고 있고 1년에 약 400만 족을 생산할 수 있는 원단을 제공하고 있다. 폐패트병을 사용한 원단이라는 점이 거래처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업계에서 재생원단 비율이 20%이상 넘어가면 지속가능한 원단이라고 본다. 대진에스앤티는 재생원단 비율을 100%까지 높여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발주처의 요구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신발의 형태를 유지하는 에코바운스라는 소재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부직포의 한계를 뛰어넘은 부직포’라고도 불리는데 얇지만 복원력이 뛰어나 신발의 앞코가 잘 눌리지 않아서 신발이 항상 예쁜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새신발을 살펴보면 신발 안쪽에 종이를 구겨넣어 모양을 살리곤 했었다. 신발의 앞코의 모양을 살리기 위한 노력들이었는데 에코바운스 소재의 탄생으로 신발업체의 불필요한 종이 사용도 절감할 수 있게 했다.

한국에서 소부장 산업에 도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소재분야 창업을 하게된 계기가 궁금하다.

합성피혁을 제조한 1세대 회사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하는 직원으로 근무했었다. 그러다 2005년 초 회사의 경영난으로 부도를 맞았다. 40대 초반에 회사의 부도로 직장을 잃고나니 재취업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합성피혁을 해외에 판매할 자신은 있었고 죽기살기로 노력을 해보면 되지 않겠냐는 심정으로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합성피혁 시장이 나쁘지는 않았었다. 시작은 한림면에 트레이딩 오피스를 열어 자본금을 모으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제조공장 설립하게 됐다. 그 이후 사무실을 몇번이나 옮기면서 규모를 키우는 것에 집중했다. 부도가 난 회사에서 같이 봉급 생활을 하던 분들도 같이 창업에 힘을 모으다 보니 거창한 경영철학이나 이념, 청사진을 그려볼 여유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부도로 급하게 창업을 했다. 살기 위해 했다. 열심히 하자라는 생각뿐이었다.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업이 되자, 직원들 잘 건사하자 이 생각뿐이었다. 아직까지 사훈도 없는 회사이지만 직원 모두가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사훈은 짐작된다. 창업 당시 힘을 모았던 분들이 아직까지 근무를 하고 있다. 앞만 보고 살아가고 있다.

대진에스앤티 저노피
대한민국 전통 종이인 한지와 빈티지 캔버스 원단에 접목한 ‘저노피’ 원단으로 만든 앞치마 모습. (사진=김진일 기자)
미래에 대한 고민이 끊이질 않는 것 같다.

한국에서 중소기업이라 할지라도 소부장이 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소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외 저가 생산품의 공세 속에서 일반적인 소재를 만들어서는 경쟁하기 어렵다. 급여차이도 7~8배 이상 차이나고 사용 경비 또한 엄청난 차이가 난다.

대진에스앤티 개발제품
대진에스앤티에서 개발한 제품 모습. (사진=김진일 기자)
없던 시장을 만들어 내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개발이 완료돼 주문을 기다리고 있는 제품이 있다. 미국 미식축구를 보고 개발한 제품인데 우리나라 스포츠 경기와는 다르게 미식축구는 비가 많이 오더라도 경기를 중단하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 선수들이 경기를 할 때 물기가 묻은 공이 미끄러워 실수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한 장갑을 꼈는데도 빗물 때문에 공을 놓치는 선수들이 많았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현재 미식축구 선수용 장갑은 미끄럼 방지를 위한 소재로 실리콘을 채택해 사용하고 있지만 슈퍼그립 기능성을 살린 고무 소재를 적용하는 시도를 했다. 영하 80도에서도 버티는 유리섬유를 이용한 제품도 개발을 완료해 소재 채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 외에도 현재 개발 중인 제품들이 꽤 있다. 언뜻보면 아이디어를 발굴해 제품을 개발하기만 하면 쉽게 성공할 것 같지만, 없던 시장을 만들어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생각보다 피드백이나 성과 등의 결과가 안나오는 경우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시장 규모가 작더라도 남들을 놀래킬 수 있는 이펙트가 있는 제품을 계속 만들 생각이다. 변화하지 않는 중소기업의 내일은 없다.

ESG경영 도입을 성공시킨 선배로서 후배 기업가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린다.

우리가 창얼할 때만 해도 경기는 좋았다. 열심히만 하면 됐는데 없어진 산업도 많고 시장 자체가 많이 척박해졌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무언가를 만들어서 수출하기도 좋았었다. 시간이 지나 해외 현지 공장들이 생겨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은 생각조차 못하게 됐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품 중 4~5가지는 전세계에서 우리만 생산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 보기엔 쉬워보여도 카피할 수 있는 제품들이 아니다. 세상을 놀래킬 만큼의 물량을 생산해내는 것은 아니지만 틈새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도 생산할 수 있고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도 생산할 수 있는 제품으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것은 하지 말자.

김해=김진일 기자 beeco055@viva100.com, 박대성 기자 apnews501@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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