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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패왕별희’ 우희, ‘고집쟁이 딸’ 엄마 시몬…무대 위 이유 있는 ‘젠더프리’

[Culture Board]

입력 2023-11-08 18:00 | 신문게재 2023-11-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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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쟁이 달 패왕별희
희극발레 ‘고집쟁이 딸’의 엄마 시몬(왼쪽)과 창극 ‘패왕별희’ 우희(사진제공=국립발레단, 국립창극단)

 

무대 위 ‘젠더프리’(성별에 상관없이) 캐스팅은 주로 ‘여성’ 배우가 주체가 되곤 했다. 그간 ‘남성’ 배우들이 소화해오던 역할을 담당하거나 새로 창작되는 작품에서 굳이 성별을 구분짓지 않아도 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를 통해 남성 캐릭터의 성장이나 서사를 돕기 위한 기능으로 주로 활용되던 여성 캐릭터들은 극을 이끄는 주요 인물들로 창작되는가 하면 출연기회를 넓히는 ‘혁명’에 가까운 것이었다.

연극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 ‘광화문연가’의 월하, 연극 ‘언체인’ 마크·싱어, 뮤지컬 ‘데미안’의 데미안·싱클레어, 연극 ‘오펀스’의 해롤드·트릿·필립, 뮤지컬 ‘해적’의 모든 캐릭터 등을 비롯해 여성 캐릭터들로만 꾸린 ‘베르나르다 알바’ ‘리지’ ‘유진과 유진’ ‘브론테’ 등이 그렇다.

매우 드물지만 남성 배우가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경우들도 있다. 뮤지컬 ‘마틸다’의 빌런 트런치불 교장,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의 헬레네 그리고 국립발레단의 ‘고집쟁이 딸’(11월 8~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엄마 시몬과 창극 ‘패왕별희’(11월 11~18일 국립극장 해오름) 우희가 그렇다.  

 

고집쟁이 딸
국립발레단의 ‘고집쟁이 딸’(사진제공=국립발레단)

 

이들 중 11월 초에 두 작품이 개막한다. ‘고집쟁이 딸’(La Fille Mal Gardee)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막 발레로 1789년 장 베르셰 도베르발(Jean Berche D‘Oberval)이 유리가게 창문 너머에서 조우한 그림 ‘훈계’(le Reprimande)에서 모티프를 딴 작품이다.

시골의 작은 창고에서 무슨 이유인지 엄마에게 야단을 맞고 있는 딸과 그 뒤로 도망치는 청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그림에서 도베르발은 사랑스러운 연인 리즈와 콜라스, 자신의 딸을 순진한 부잣집 아들 알랭에게 시집보내기 위해 감금까지 하는 엄마 시몬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번에 개막하는 ‘고집쟁이 딸’은 영국 로열발레단의 창립 안무가 프레데릭 애슈턴(Frederick Ashton)이 안무한 영국 로얄발레단 버전으로 지난해 국립발레단이 초연한 데 이은 두 번째 시즌이다. 장기화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울하고 힘겨울 이들을 위해 공연되는 이 희극발레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남성 무용수가 연기하는 엄마 시몬이다.  

 

고집쟁이 딸
희극발레 ‘고집쟁이 딸’에서는 엄마 시몬을 남성 무용수가 연기한다(사진제공=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원인 발레리노 배민순과 김명규가 연기하는 풍요로운 농장의 소유주이자 미망인인 시몬은 외동딸 리즈를 부유한 포도밭 주인 토마스의 아들 알랭과 결혼시키기에 혈안이 된 인물이다. 하지만 이미 리즈에게는 한눈에 반해 사랑을 약속한 젊은 농부 콜라스가 있다. 이에 시몬은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리즈에게 밤새 춤을 추게 하거나 집안일을 시키더니 급기야 감금하기에 이른다.

여장을 한 남자 무용수가 연기하는 시몬은 딸과 그의 연인을 위협하지만 우스꽝스럽게 희화된 인물이다. 리즈와 콜라스 사랑의 장애물로 위협을 일삼는 이 인물을 남자 무용수가 연기하면서 연인의 고난은 험해지고 그 고난을 함께 이겨내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은 깊어진다. 더불어 다이내믹한 춤사위로 빌런으로서의 면모가 강화되는가 하면 우스꽝스러운 표현으로 큰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콜라스를 못만나게 하기 위해 리즈에게 춤을 추라며 마구잡이로 탬버린을 두드리다 잠들어 버리거나 리즈의 성화에 신발을 갈아 신고 추는 클로그 댄스(나막신 춤)는 ‘고집쟁이 딸’의 명장면 중 하나다. 클로그 댄스는 영국 민속무용에서 모티프를 딴 춤으로 코믹하면서도 다이내믹한 안무가 어우러지는 장면이다. 

 

고집쟁이 딸
희극발레 ‘고집쟁이 딸’ 중 리본을 활용한 리즈와 콜라스의 파드되(사진제공=국립발레단)

 

이와 더불어 리본을 활용한 1막 1장의 ‘파드되’(2인무), 도제니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선율을 사용한 음악에 리즈와 콜라스가 8명의 무용수들과 함께 선보이는 ‘파니 엘슬러 파드되’, 시골풍경을 연출하는 캐릭터 닭의 춤과 행진 등이 웃음을 선사한다.

고(故) 장국영(張國榮)의 대표영화로도 잘 알려진 ‘패왕별희’(霸王別熙)는 2019년 국립창극단이 중국의 동명 경극을 원작으로 풀어낸 창극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항우본기’를 근간으로 진말(秦末) 한초(漢初)의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패왕 항우와 한나라 황제 유방의 대립, 패전한 항우와 연인 우희의 이별 등을 담은 작품이다.  

 

국립창극단 패왕별희
창극 ‘패왕별희’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창극단)

 

대만의 경극배우이자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 수석무용수 출신으로 영화·연극·TV 등을 넘나들며 배우이자 연출가로 활동 중인 우싱궈와 한국의 소리꾼 이자람이 작창을 맡아 중국과 한국의 전통을 아우른 무대를 꾸린다. 더불어 태고답무단 예술총감독인 린슈웨이가 극본과 안무, 영화 ‘와호장룡’으로 제73회 아카데미 미술상을 수상한 예진텐이 의상디자인을 담당한다.

의상, 분장, 소품, 안무 등 시각적인 부분은 경극, 대사나 음악 등 청각적인 측면은 창극의 요소를 부각시킨 작품이다. 맹인 노파의 구슬픈 소리로 시작해 대표 장면인 항우와 우희의 이별을 담은 6장 ‘패왕별희’를 비롯해 패전의 원인이 된 ‘홍문연’, 중국 역사상 위대한 전투 중 하나인 ‘십면매복’, 항우의 마지막을 다룬 ‘오강에서 자결하다’까지가 2막 7장으로 펼쳐진다. 

 

국립창극단 패왕별희
국립창극단 ‘패왕별희’(사진제공=국립극장)

 

4년만에 돌아오면서 “출연진 보강, 악기편성 변화 등으로 정교하게 다듬었다”며 “판소리의 정수를 담아내고자 힘쓴 작품으로 원작 경극과는 달리 소리가 빚어내는 처량한 아름다움과 강한 생명력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는 우싱궈 연출의 설명처럼 2장 ‘홍문연’은 ‘적벽가’, 6장 ‘패왕별희’는 ‘춘향가’를 참고해 만들어졌다.

항우의 영웅성, 사마천이 ‘사기’ 집필 당시 전쟁에 패한 항우를 ‘제왕’ 편에 수록한 이유 등을 고심하던 우싱궈 연출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권력 다툼,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필요한 ‘어떤 상황에서도 정정당당하게 정면으로 맞붙는 기개’를 강조했다.

유방을 죽일 기회가 있음에도 공정한 승부가 아니라며 칼을 거둬 패전의 계기가 된 ‘홍문연’ 사건, 유방에 쫓겨 사면초가에 이르러서도 후일 도모 보다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 등을 강조하고 한신 이야기를 추가해 유방과 항우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그리는가 하면 눈이 아닌 마음과 영혼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맹인노파를 통해 전쟁의 허망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국립창극단 패왕별희
창극 ‘패왕별희’ 공연장면 중 이별하는 항우 정보권과 우희 김준수(사진제공=국립극장)

 

2019년 초연 후 4년만에 공연되는 ‘패왕별희’의 우희는 국립창극단의 젊은 소리꾼 김준수가 연기한다. 우싱궈 연출 전언에 따르면 “경극과 창극이 결합된 ‘패왕별희’를 만들면서 남자 배우가 여자 배역을 맡는 경극의 전통을 살려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기인한 선택이다.” 

 

부러 여성적인 목소리나 행동으로 우희를 표현하기 보다는 음역대에 맞는 작창을 바탕으로 섬세한 정가 등 음악적 요소, 검무 등을 활용해 여성성을 강조한다. 우희의 김준수를 비롯해 초나라 항우는 초연에 이어 정보권이 돌아오고 한나라의 개국 황제 유방으로는 이광복이 새로 합류했다.


극의 중요한 메시지를 품은 인물로 극을 진행하고 해설하는 도창 역할을 하는 맹인 노파는 김금미, 항우의 책사이자 멘토 범증은 허종열, 유방의 책사 장량은 유태평양, 중국 역사상 첫 황후 여치는 이연주가 연기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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