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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망자 명의 금융계좌 개설 차단 못하나

입력 2024-02-05 14:32 | 신문게재 2024-02-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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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조선 후기의 백골징포(白骨徵布)는 조세제도가 지배층의 수탈도구로 전락했던 역사적 사실이다. 요즘도 사망한 사람에게 통신요금과 가산금이 붙는 허수회선이 발생하지만 대개는 데이터 불일치 등에 의한 ‘실수’다. 이번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는 성격이 다르다. 삼정의 문란에 비유하는 건 억지스럽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은행에서 금융거래가 일어난다면 금융질서 문란 행위다. 사망자 명의 계좌가 그것이다.

금융권과 소비자 어느 한쪽 이상의 고의성이 짙다. 최근 5년간(2018년 8월~2023년 7월) 국내은행 17곳을 전수조사했더니 세상을 떠난 사람 명의로 개설된 계좌가 1065건이나 된다. 실제 거래가 이뤄지고 비대면 대출 실행도 49건이 있다. 계좌·인증서 비밀번호 변경 등 제신고 거래는 6698건에 이른다. 은행을 방문해 사망확인서를 내거나 상속인 금융거래조회 서비스에 접속해 지급정지 신청을 해야 사망자로 간주하는 제도의 허점을 요리조리 파고든 것이다. 금감원이 들여다본 사망자 명의 예금 인출액은 7000억원에 육박한다. 실명 확인 및 관리 방안이 이렇게 허술하다.

소정의 절차가 선행돼도 계좌에서 돈이 나가는 것만 막히는 부분도 보완해야 한다. 은행의 비대면 실명 인증 절차로는 정확하게 본인을 확인하지 못한다. 탐욕에 의한 것이거나 부주의이거나 적법한 위임절차 없이 죽은 자의 이름만 빌려 이용하는 불법은 용인할 수 없다. 은행원의 실적 쌓기용 유인책으로 사망자 명의를 만들어주는 추가 사례가 없도록 은행은 자체 점검을 강화하고 적법 위임 절차를 안 거쳤으면 합당한 제재를 받게 해야 한다. 특히 사망일 이후의 계좌 개설은 철저히 막아야 할 것이다.

모바일뱅킹 이용 때 사망자의 신분증 사본을 활용하면 명의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은행 안면인식 시스템 도입 등 사망자 명의의 금융 거래 차단을 위한 제도적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사망자의 계좌가 활성 중인 것은 어떻게든 가족이 이용하거나 대포통장 등 금융범죄에도 악용된 것으로도 의심해볼 수 있다. 제3자가 적법한 위임절차 없이 예금을 찾거나 계좌를 금융사기 등에 이용하는 사례는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처벌할 형법, 전자금융거래법 등 관련 법령이 없는 것도 아니다. 비과세 혜택을 노리고 사망자 명의로 예금계좌를 개설하는 것이든 범죄 목적 악용이든 효과적으로 차단할 대책은 찾아야 한다. 금감원의 관리 감독 강화는 기본이다. 계좌 개설, 대출 등 사망자 명의의 금융계좌 사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야 한다. 그게 금융 거래 질서에도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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