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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고2 수학점수를 기억하시나요?

입력 2024-02-06 13:46 | 신문게재 2024-02-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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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문화부장

“고2 2학기 수학점수가 기억나시는 분 손 들어주세요.”

800여명 관객 중 단 한명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 좀 해보겠다고 얼음물로 세수도 해보고 커피도 들이켜고 했던 기억이 있으신 분들 손 들어보세요.”

이전 질문과는 달리 꽤 많은 이들이 손을 들었다. 가히 대한민국 멘탈 주치의라 할만하다. 지난 3일 ‘금쪽상담소’ ‘결혼지옥’ 등의 오은영 박사가 효성과 손잡은 8번째 컬처시리즈 ‘오은영의 토크콘서트 동행’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설명처럼 “우리는 결과 보다 과정을 기억한다.”

“우리가 학창시절 공부하는 이유는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며 “우리가 더 오래 간직하는 건 결과 보다는 열심히 했던 기억”이고 “그 기억으로 지금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모두의 학창시절은 어른들의 보호 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 ‘지금’에 충실하기 위해 애쓰는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최선을 다해야 했던 ‘배움’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지금은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이다.

한국 더 나아가 아시아인 성악가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클래식 명가 도이체 그라모폰(Deuts che Grammophon, DG)에서 음반을 발매한 소프라노 박혜상은 1, 2세기에 살았던 세이킬로스가 죽은 아내 에우르테르페를 추모하며 적어 내려간 비문에서 영감 받아 두 번째 정규앨범 ‘숨’(Breathe)을 발매했다. 

 

이 앨범을 위해 2년 반이라는 준비의 시간을 가진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고 자각몽을 통해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살아있음을 절실하게 깨닫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경험 그리고 그 경험에서 얻는 평안함과 치유를 음악 애호가들에게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 뮤직비디오와 앨범커버를 위한 수중촬영을 결정했다. 이를 위해 태국에서 프리다이빙 코스를 수료했고 공연을 위해 독일에 머물면서도 틈나는 대로 프리다이빙 코스를 밟으며 수중촬영을 했다. 뭘 이렇게까지 열심인가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에 온전히 발 딛고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는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다.

지금을 살아가면서 대부분은 ‘행복 중압감’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행복해야만, 모든 것이 좋아야만, 많이 쥐어야만, 성공해야만, 안정적이어야만 잘 살아낼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인간의 회복력도, 삶의 의지도 의외로 강력하다.

 

‘지금’ 잘 살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하고 도전하고 실천하는 삶의 ‘공부’는 반드시 성공하지 않더라도, 행복하지 않더라도, 완벽하지 않더라도 중요하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악보 중 곡 전체가 온전히 남아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한 ‘세이킬로스의 비문’은 그렇게 지금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2024년을 맞으며 계획을 세웠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음력설에 다시 새로운 마음을 다잡는 이들 모두의 ‘공부’에 대한 응원일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결코 그대 슬퍼하지 말라. 인생은 찰나와도 같으며. 시간은 마지막을 청할 테니.”

 

허미선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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