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오피니언 > 브릿지칼럼

[브릿지 칼럼] 소비자의 수리할 권리

입력 2024-04-10 14:09 | 신문게재 2024-04-11 19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정책연구실 이경아 실장 사진
이경아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실장·경영학 박사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인류에게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하고자 만든 것이 바로 ‘기후위기시계’다. 국내에서는 지난 2022년 처음 설치를 시작해 현재는 대전, 부산 등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시계는 산업화 이전에 비해 지구의 평균기온이 1.5도 상승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디지털 형태로 보여주는데, 겨우 5년 3개월 남짓 남았다. 이제는 정말로 쓰고 버리는 ‘소비주의가 강한 사회(throw-away society)’에서 벗어나 환경과 자원의 효율성에 방점을 둔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사회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순환경제란 지속가능성과 이익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 하는 경제 모델이다. 2021년 제정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2022.3.25.시행)’에는 순환경제를 ‘제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버려지는 자원의 순환망을 구축해 투입되는 자원과 에너지를 최소화함으로써, 생태계의 보전과 온실가스 감축을 동시에 구현하기 위한 친환경 경제체계’라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제품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재사용, 재활용, 수리를 들 수 있는데, 이러한 방식을 활용한 제품이 더 많이 순환될수록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자원과 에너지에서 더 많은 가치가 창출된다는 논리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원의 재사용·재활용 관련 시스템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리 방식은 이제 막 출발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순환경제사회법, 2024.1.1.시행)’상 수리에 필요한 예비부품 확보 의무 등은 포함돼 있지만, 의무 부과를 위한 제품 범위 등을 확정하는 하위 법령 마련은 아직 진행 중이다. 또한 ‘소비자기본법’ 개정(2023.12.21.시행) 에 따라 부품보유기간에 대한 정보제공 근거는 마련됐으나, 개정 내용을 뒷받침할 고시 개정 소식은 아직 없다.

유럽연합(EU)은 2020년 발표한 ‘순환경제 행동계획(action plan)’에서 ‘소비자 수리권(right to repair)’을 강조한 바 있으며, 올해 2월에는 EU 의회 및 이사회에서 소비자 수리권 법안에 잠정 합의했다.

그렇다면 수리 관련 정책 추진에 있어 소비자의 수리권 보장이 왜 중요할까. 소비자가 제품을 수리하고 오래 사용함으로써 순환경제에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 사용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수리는 폐기 후 이루어지는 재활용과 달리 복잡한 회수와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에 순환경제의 본질적 의의에 더 부합한다. 따라서 수리권 보장은 소비자의 기본적인 권리 강화 뿐 아니라, 자원순환을 통한 환경 보호, 수리 서비스 시장의 활성화와 공정경쟁 보장에도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다만 수리권은 제품의 수리 시점만이 아닌 순환경제의 전 단계를 통해 보장될 수 있어야 실효성 있는 권리로 기능할 수 있다. 때문에 소비자의 수리권 보장은 순환경제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핵심 요소라 하겠다. 이제는 정부, 소비자, 기업 모두 소비자의 수리권 보장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다.

 

이경아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실장·경영학 박사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