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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R&D 예산 이렇게 삭감한 채 국가 미래 말할 수 없다

입력 2024-04-21 14:42 | 신문게재 2024-04-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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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R&D) 예산 감축으로 연구현장 황폐화가 현실화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이 복원된다는 약속도, 어쩌면 역대 최대 규모를 넘을 거라는 전망도 바닥에 떨어진 사기를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2025년도 정부 예산안 편성 지침을 보고도 과학계는 반신반의한다. 20일 한국천문연구원을 시작으로 주말 개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정부 출연연구소도 잔뜩 침체돼 있다. 과학의 날(21일)이 과학기술로 희망찬 미래를 그리는 국민 축제의 날이 되기엔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어두운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우리나라가 아시아 최초로 호라이즌 유럽 가입을 목전에 두면서 글로벌 과학 위상이 한층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유럽연합(EU)이 2027년까지 955억 유로(약 138조 원)를 지원하는 다자 간 연구혁신 프로그램에 공동 연구 추진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R&D 기획·선정·평가 시스템을 내년부터 학습할 수 있다는 것도 가외의 성과다. 이렇게 글로벌 협력 R&D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 정작 국내 과학기술 분야의 R&D 예산의 숨통을 끊은 처사는 연구현장 파괴행위나 마찬가지다.

독자적인 선진 모형을 구축한 과학기술은 경제성장의 토대이며 전략물자이고 주권을 지키는 핵심적 자산이 된다. 이걸 포기하는 입으로 과학입국을 재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연구비 보릿고개’로 연구과제 지원서류를 새로 쓰느라 분주한 것이 연구원들의 현실이다. 한국에서 연구하기 힘들다고 판단될 때 우수 이공계 인력의 해외 유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의대 증원 이슈와도 맞물려 탈이공계는 심화할 상황이다. 장기 연구가 필요한 프로젝트는 전반적인 차질이 생겨 연구 현장이 혼란스럽다. 앞 정권 정책 뒤집기, 33년 만의 대폭 삭감 뒤 역대 최고 증액과 같은 고무줄 예산으로 국가 미래는 없다.

명확한 근거도 없이 카르텔 혁파와 예산 비효율 제거만 외치다가 방향성을 잃은 것이 지금의 허망한 모습이다. 정치와 과학 간 관계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한 과학기술인은 “(자녀에게) 아빠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과학자가 되지 말라는 게 지금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기고문에는 과학의 날을 하루 앞두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final straw)’라는 표현이 쓰였다. 연구원 자신이 하던 연구 자체가 의미 없는 것 아니냐는 자조가 섞이는 과학의 날은 두 번 다시 없어야 할 것이다. 2023년 기준 연구개발 예산을 ‘원상복구’ 수준 이상으로 전환해 R&D다운 R&D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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